“차 50대로 번진 불, 잔해 피하려 4시간 바닷속에” 하와이 생존자가 참혹상

김태원 기자 2023. 8.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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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잿더미로 변한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AFP 연합뉴스
[서울경제]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휴양지 하와이가 산불이 휩쓴 화마에 초토화돼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특히 마우이섬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사흘째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에 주택과 건물들이 폭삭 내려앉아 잿더미로 변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리처드 비센 마우이 시장은 라하이나 마을의 중심부가 전소됐다고 밝혔다. 비센 시장은 "모든 것이 사라졌다"며 "아무것도 없다. 모두 불에 탔다"고 침통해했다.

국립공원관리청(NPS)에 따르면 라하이나는 한때 하와이 왕국의 수도로 포경선 선원과 선교사 등에게 사랑받았던 곳이며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라고 CNN은 보도했다. 라하이나는 국립 사적지로 등재돼 있으며, 이곳의 프런트 스트리트는 미국도시계획협회에서 '10대 거리' 중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조쉬 그린 하와이주지사는 약 1만2000명이 거주하는 라하이나의 많은 지역이 파괴돼 수백가구가 이재민이 됐다고 이날 밝혔다.

현지 주민 더스틴 칼레이오푸는 CNN에 "라하이나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며 "내가 알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 동료, 친구, 가족 등 우리는 모두 노숙자가 됐다"고 울먹였다.

라하이나의 유서 깊은 반얀트리가 불에 탄 모습. AFP 연합뉴스

현지 당국은 라하이나에서 270채가 넘는 건축물이 피해를 봤으며 그 중 상당수가 하와이의 명물 반얀트리(Banyantree) 근처에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는 1873년 인도에서 들여와 심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가 있어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돼 있었지만 이번에 모두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1830년대 주택인 볼드윈 홈 박물관 등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들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마우이섬에서는 이날 오후까지 산불 사망자가 최소 53명으로 집계됐다. 현지 당국은 실종자 수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택을 포함해 건물 1700여채가 불에 탔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종말(apocalypse)’ 등의 표현을 써가며 마우이섬을 집어삼킨 산불 피해 상황을 보도했다.

그린 주지사는 산불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CNN은 전했다. 민간 기상예보업체 아큐웨더는 화재로 인한 피해액을 80억달러(약 10조6000억원)에서 100억달러(13조2000억원)로 잠정 추산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등 악몽 같았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역 병원에는 화상과 연기 흡입 등으로 다친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피해를 본 이재민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고등학교 축구팀 코치인 딘 리카드는 현지 매체에 "라하이나 마을과 동네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고 이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며 "전쟁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부모와 형제, 아들, 딸의 집이 모두 파괴됐다면서 자기 집도 그 자리에 남아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무엘라 카와코아 부부는 AP통신에 여섯 살 아들과 함께 간신히 빠져나왔다면서 "마을이 잿더미로 변하는 걸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번 산불은 건조한 기후와 허리케인 '도라'의 강풍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번진 것으로 파악된다. WSJ는 "당국이 아직 마우이섬 산불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시속 60마일의 강풍으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전까지는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지역 주민은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마을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아비규환이었다. 불길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며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불길을 피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해안 경비대는 바다에서 14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한 남성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뛰어가는 것을 봤고 비명과 폭발음을 들었다.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미국 매체 더힐은 보도했다.

미국 캔자스주 출신의 티 댕은 지난 8일 오후 남편과 5?13?20세의 세 자녀와 함께 렌트카를 타고 라하이나 마을의 프런트 스트리트를 지나고 있었다고 했다. 도로는 댕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가득했다. 댕은 차 안에서 불길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봤고 결국 주변 차량으로 불이 번지자 차에서 내려 바다를 향해 달렸다.

그는 “우리는 바다로 가야만 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댕 가족들은 처음에는 해안 가까운 얕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이 확산하면서 인근 도로에 있던 차량 최소 50대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잔해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더 깊은 물로 들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댕은 “거의 4시간을 물 속에 있었다”고 떠올렸다.

상공에서 바라본 마우이섬 화재 현장. EPA 연합뉴스

1만1000명은 여전히 정전 상태로 지내고 있다. 마우이섬 카훌루이 공항에는 여행객 1400명이 밤새 머물다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갔다. 이번 화재는 마우이섬 관광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아큐웨더는 이번 산불로 하와이에 80억~100억달러(약 10조6200억~13조27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산불은 8일 오전 0시22분께 마우이섬 중부 쿨라 지역에서 처음 신고됐고, 이어 오전 6시 37분께 서부 해변 마을 라하이나 인근에서 또 다른 산불이 접수됐다. 라하이나에서 발생한 불은 한때 진압됐다가 허리케인이 몰고 온 강풍을 타고 오후에 다시 살아나 마을을 덮쳤다. 중부 쿨라 지역 인근 서쪽 해안인 키헤이에서도 추가로 산불이 일어나 마우이섬에서 모두 세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키헤이 지역의 화재 진압률은 70% 정도다.

한편 이번 마우이 화재로 인한 한국 관광객과 한인들의 피해는 현재까지 보고되지 않은 상태다. 주호놀룰루 총영사관에 따르면 라하이나 지역에서 거주하는 한인 가족 2명은 피해 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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