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목숨값으로 먹고자라?"…'유치원생 사망보험' 길 터주자는 의원들[김성훈의 디토비토]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 2025년 7월. 며칠째 이어진 집중호우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다.
김정훈 씨는 세 살배기 딸과 한 살배기 아들을 차량 뒷자리 카시트에 태우고 도시 외곽 한 지하터널 앞에 차를 세웠다. 터널은 빗물이 점점 빠른 속도로 흘러들어 이미 정강이 높이까지 차 있었다.
뉴스에서 침수 위험이 있다며 지하터널에 진입하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그는 차를 몰고 터널로 들어갔다.
터널 내부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차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차올랐다.
다행히 경찰이 순찰을 나왔다가 꼭대기까지 물에 잠긴 차량 선루프 위에 앉아 꺼이꺼이 울고 있는 김 씨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아직 차 안에 있어요." 김 씨는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은 황급히 아이들을 구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며칠 뒤 터널의 물이 빠지고 아이들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민안전배상보험을 들어둔 지자체는 김 씨에게 아이들의 사망보험금으로 1억원을 전달했다. 일각에서 김 씨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고의적으로 터널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서두의 '2025년'이란 말을 보고 눈치채셨겠지만, 이는 실제 일어나지 않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다만 현재 국회에서 추진 중인 방향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국회에는 유행처럼 줄줄이 발의된 법안이 있습니다. 바로 '15세 미만' 미성년자도 피보험자로 사망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법안입니다. 즉 '15세 미만'이 죽으면 그 가족 등 수익자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2022년10월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만 6개입니다.
현재 상법 732조는 '15세 미만'은 사망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판단 능력, 자기방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혹시 있을지 모를 보험사기 범행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반면 발의된 안들은 '15세 미만'의 사망보험 가입을 단체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안마다 허용하자는 사고의 범위는 조금씩 다른데 ▷모두 허용하는 방안 ▷재해, 천재지변, 감염병으로 사망하는 경우 허용하자는 방안 ▷학교 등의 단체활동으로 사망하는 경우 등에 대해 허용하자는 방안 등이 있습니다.
서두의 지어낸 사례처럼 천재지변을 위장해 보험사기를 벌이는 것이 과도한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저런 법안을 발의한 것은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15세 미만 사망보험 금지' 규정이 문제로 떠올라 지적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14세 미성년자 등 주민 10여명이 밀려든 빗물 때문에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다른 유족들은 모두 포항시가 가입한 보험에 따라 보험금을 받았는데, 오직 14세 미성년자의 유족만 '15세 미만 사망보험 금지' 규정 때문에 보험금을 못받았습니다. 이 일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바로잡기 위해 예외를 허용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같은 논란은 수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9살과 11살 탑승자가 같은 이유로 사망보험금을 못 받았고, 이에 15세 미만도 사망보험을 허용해주자는 법안이 제출됐으나 당시에는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주장의 핵심은 보험사기 가능성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억원 이상 사망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를 분석한 결과,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인 경우가 61.8%였습니다. 배우자를 상대로 한 범행이 44.1%로 가장 많고, 자녀를 상대로 한 것은 11.8%로 두번째입니다.
'이은해 사건', '만삭아내 사망 사건', '부사관 아내 사망사건', '니코틴 남편 사망 사건', '금오도 아내 사망사건', '동백항 여성 사망 사건' 등 무수한 가족 간 보험사기 의혹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사건들은 '살인'이 아닌 '사망'이라 이름 붙여야 할 정도로, 의심은 가지만 살인이 입증되지는 않은 일들이 다수입니다.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거액의 보험금을 챙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험에 과도하게 가입했다는 사실이 살인의 정황 증거로 제시돼도 살인을 입증하기 어려운 판에, 보험에 직접 가입하지 않아도 지자체 등이 가입해주는 단체보험이라면 범행이 입증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배우자 상대 사건이 가장 많지만, '15세 미만 사망보험'이 허용된다면 서두의 지어낸 사건처럼 자녀 상대 범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건 단지 기우일까요?
얼마 전 수원에서는 20대 배달기사가 아내 그리고 올해 2살인 자녀를 차에 태우고 수십차례 고의적으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1억6700만원을 타낸 일이 있었습니다. 2021년 광주에서는 생후 4개월밖에 안되는 자녀를 차에 태우고 고의적으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1670만원을 타낸 20대 부부가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또 같은 해에는 보험금을 타려고 중학생인 아들의 생살을 칼로 벤 40대 부부의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상해보험만으로도 이처럼 아이들이 보험사기 피해에 노출돼 있는 판에, 사망보험까지 허용해주면 더 끔찍한 아동학대로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보험사기 범죄를 밝혀내는 시스템, 사기범죄자에 대한 적절한 형량 등도 갖춰지지 않아 해마다 보험사기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사망보험사기의 먹잇감으로 노출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망보험'의 본래 목적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사망보험은 유족의 생계보장이 제 1목적입니다.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한순간에 가정이 무너지는 일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15세 미만 사망보험'은 그러한 역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사망보험 허용 연령이 '15세 이상'으로 정해진 것도 근로기준법상 '15세 이상'만 근로자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세 미만' 유족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다만 그 수단이 이러한 문제점을 무릅쓰고 사망보험을 허용하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물음표가 붙습니다.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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