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못 갚을 거 같은데” 인기 급증한 50년 만기 주담대…가계대출 확대 주범?[머니뭐니]

2023. 8. 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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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가계부채가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부실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출시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주거 사다리’ 마련 차원이라는 도입 의도와는 달리, ‘영끌족’의 무리한 대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 50년 만기 상품에 대해 나이 제한을 두는 등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50년 만기 주담대, 출시 한 달 만에 ‘1조3000억원’ 흥행 몰이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연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4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의 50년 만기 주담대 잔액은 전날(10일) 기준 1조2815억원으로 집계됐다. 해당 은행들이 모두 지난달 처음으로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은 것을 고려하면, 약 한 달 만에 1조3000억원에 달하는 돈이 몰린 셈이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5일 50년 만기 주담대를 도입하며,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판매를 시작했다. 그 뒤로는 7일 하나은행, 14일 국민은행, 26일 신한은행 등으로 관련 상품이 도입됐다. 우리은행 또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은행권 전체 주담대 잔액은 현재 800조원을 넘긴 상태로, 50년 만기 주담대의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지난달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잔액(512조8875억원)이 전월말과 비교해 1조4868억원(0.28%)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 달 만에 50년 만기 주담대에 1조원이 넘는 돈이 몰린 걸 고려하면, 해당 상품의 인기가 결코 적지 않은 셈이다.

서울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50년 만기 주담대가 흥행한 주요인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있다. 현재 은행 대출에 적용되는 DSR 규제는 40% 수준이다. 이에 따라 고객이 연간 은행에 내는 원리금은 연 소득의 40%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만기를 늘려 연 상환액이 줄어들면, DSR이 낮아져 추가 대출이 가능해진다. 은행이 같은 소비자에 더 큰 규모의 대출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연 5000만원의 소득을 벌고 기존 대출이 없는 소비자가 4%의 이자로 30년 만기의 원리금균등 주담대를 실행할 시 최대 대출 가능 금액은 약 3억4900만원 정도다. 그런데 같은 조건으로 50년 만기의 주담대를 실행할 시 대출 가능 금액은 4억3100만원으로 늘어난다.

DSR 우회로 ‘영끌족’ 자극 우려…금융당국도 실태조사 나서
서울 한 시중은행의 대출 안내문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

문제는 이같은 장점을 가진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가계대출 확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상품은 미래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젊은 층에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끌족’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피할 수 없다. 월 납부 원리금을 줄이면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DSR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무리한 대출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OECD 가입국 중 1위다. 심지어 고금리 추이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가계부채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증가했다. 특히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 주담대가 한 달 만에 6조원가량 늘어나며 확대를 견인했다.

서울 한 거리에 주요 시중은행의 ATM기기가 설치돼 있다.[연합]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 또한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계대출 증가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실태조사에 나섰다. 해당 상품에 대해 ‘나이 제한’을 두는 방침도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50년을 상환할 계획이 없으면서도, DSR 우회 수단으로의 활용을 막기 위해서다. 현재 주요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을 제외하고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이나 대출 규제를 고려했을 때 워낙 내 집 마련의 문턱이 높다 보니, 청년 ‘주거 사다리’ 지원방안 중 하나로 추진된 상품”이라면서도 “출시 당시부터 가계부채를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만큼, 취지에 적합한 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이 제한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결국 청년층의 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은 이어지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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