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도 못 보고 전관은 나눠 먹기…부실공사 수렁 빠진 위기의 LH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8. 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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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9일 경기 화성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현장을 방문해 현장 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사업지 가운데 철근이 누락된 무량판 구조 아파트가 20개 단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15곳에서 5곳이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이에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감 부족, 관리·감독 부실, 전관예우, 보고체계 상실 등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난맥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한준 LH 사장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적인 것조차 상실할 만큼 조직이 망가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모든 임원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자신의 거취도 임명권자에게 맡긴 채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 4월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의 무량판 구조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 LH는 곧바로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안전점검에 나섰다. 전수조사는 3개월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달 30일 LH는 조사 대상 91개 단지 중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철근 누락 단지들의 이름과 보수·보강 계획도 공지했다. 슬래브 보완과 기둥 신설, 철근콘크리트 강화, 상부 다지기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는 LH의 부실 조사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실제로 LH는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전수조사가 미비했다고 실토했다. 안전점검이 이뤄져야 했던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는 91개가 아니라 102개였다. 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감리 실태 점검을 위해 LH 단지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내부 보고가 아닌 다른 채널 제보를 통해 이 사장이 직접 확인했다.

LH의 업무 수행 능력 부족이 대대적으로 드러난 가운데 퇴직한 LH 직원이 재취업한 사업체들이 이번 철근 누락 단지의 설계·감리 용역을 싹쓸이하는 등 이권 나눠 먹기도 철근 누락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LH가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으로 강력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지난 2021년 6월 이후 올해 6월까지 2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은 LH 출신은 지난해 9명과 올해 12명 등 총 21명이었다. 이 중에서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퇴직자는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0명은 모두 취업이 승인됐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 적용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국민 신뢰를 잃은 LH는 외부 기관들의 수사·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직 혁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LH의 권한이 조직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자체적 판단에 의거해 알짜 업무 위주의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의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장은 “부실이 발견된 무량판 관련 담당 직원들은 수사 의뢰했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 카르텔 확인,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로 전면적 감사를 진행한다”며 “복수의 외부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인적·조직 쇄신을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시스템 및 조직개편이 필요한 것은 맞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오랫동안 쌓아온 LH의 노하우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신뢰 회복의 핵심은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 악순환을 끊어낼 것인지다”라며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존속할 수 있도록 재점검해야 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부실 공사 논란이 제도가 없어서 터진 것이 아닌 만큼 제도적 개선보다 실행 역량에 중점을 둬야 하는 시기”라며 “원론적이지만 원칙에 충실하도록 유도하고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의 패널티를 고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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