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후 신경통 등 ‘난치성 통증’, 만성 통증 안 되려면…
우리 몸에 조직 손상이나 염증 반응이 생기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생리적 현상이 발생한다.
통증은 바로 그 경고 신호로 보통 급성 통증 형태로 나타난다. 급성 통증은 원인 병소(病巢)가 치유되면 염증 반응과 함께 자연히 감소하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원인 병소가 좋아져도 오래 지속되는 통증이 있다. 이를 만성 통증이라고 하는데 이때 통증 전달 신호가 과하거나 통제되지 못하면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만성 통증은 조직 손상 등으로 통증 유발 물질이나 신경 전달 물질이 과다하게 생성돼 통증 자극의 전달이 증가하면 감작(신경이 예민하게 변함)이라는 과정에 의해 과잉 흥분 또는 통증 억제 이상이 발생하며 나타난다.
난치성 통증은 이처럼 많은 노력에도 치유되기 어려운 만성 통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암성 통증과 같이 1차적 원인 자체가 치료되기 어려울 때를 제외한 다른 질환에서 1차적 원인이 뚜렷하지 않거나 구조적인 원인이 아니거나, 1차적 원인이 치유됐지만 2차적으로 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난치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라면 원인 자체가 치료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적정 치료를 시기에 맞게 받지 못하거나 지연돼 발생할 때도 많아 초기부터 세밀한 진찰·진단을 통해 적절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원인 질환 치료 안 하면 만성 통증돼
난치성 통증의 원인 질환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대상포진 후 신경통, 섬유근육통, 삼차신경통, 환지통(유령통증), 척추수술후증후군, 암성통증 등이 꼽힌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주로 외상이나 수술 후 발생하는 만성 통증이다. 심한 통증뿐만 아니라 부종, 피부색 변화, 체온 변화, 땀 분비 변화, 이영양성(dystrophy) 변화, 운동 기능 저하, 관절 가동 범위 감소, 혈류 변화 등을 동반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대상포진에 의한 통증이 호전되지 않고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감염으로 발생하는데 피부와 신경이 손상을 받을 수 있다.
삼차신경통은 다섯 번째 뇌신경인 삼차신경(trigeminal nerve)에 발생하는 통증성 질환이다. 삼차신경은 얼굴 좌우 한 개씩 총 두 개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급격하고 강한 ‘찌르는 듯한’ 또는 ‘감전된 것 같은’ 안면의 발작적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섬유근육통은 비정상적인 피곤함과 함께 전신의 근육과 관절에 널리 퍼져있는 통증과 욱신거림, 뻣뻣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우울증, 불안 장애, 섭식 장애를 동반할 때가 많다.
근근막통증증후군은 보통 “담이 들었다” “근육이 뭉쳤다” 등으로 표현하는 흔한 질환이다. 근육의 과도한 사용이나 올바르지 못한 자세, 스트레스 등으로 근육에 통증 유발점(Trigger point)이 생기면서 통증을 초래한다.
장일 교수는 “난치성 통증 환자는 일반적으로 여러 진통제를 복용하고 불면·불안·우울증 같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을 동반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지극히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급성 통증은 초기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중추신경계 기능 이상으로 인한 신경병증, 즉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때 만성 통증은 여러 약물을 조합하더라도 만족할 만한 통증 감소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약물 치료 반응 없거나 부작용 많으면 시술·수술 고려
난치성 통증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다만 최초의 통증을 유발한 질환이 다양하고 각각 치료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급성 통증이 만성화되기 전에 이 악성 사이클이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 즉 초기에 잘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이자 예방법이다.
예를 들어 운동하다가 다리를 접질렀을 때 누구는 통증이 괜찮아질 때까지 참으면서 지켜보고, 또 누구는 적극적으로 냉찜질도 하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거나 스플린트(splint)나 압박대 같은 관절 움직임을 제한하는 치료를 받는다.
이때 전자의 경우 운이 좋으면 자연 치유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쉽게도 난치성 통증의 원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유는 급성 통증이 만성화하는 과정에서 척추신경과 뇌를 포함하는 중추신경계에 많은 기능적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난치성 통증을 진단을 위해서는 먼저 통증이 최초로 나타났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다쳤는지, 혹은 어떤 질환을 겪었는지부터 조사한다. 물론 외상이나 어떤 특정 질환을 어떻게 치료받았는지도 중요하다.
과거의 통증 원인과 현재의 증상이 파악된 후에는 근육 강도, 감각 이상, 심부건 반사 등 신경학적인 이학적 검사에 따라 진단을 내린다.
이후 필요에 따라 근전도나 신경전도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나 자기공명영상(MRI), 적외선 체열 검사와 같은 영상학적 진단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통증의 원인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신경을 직접 수술실에서 허리에 맞는 신경 차단 주사로 하는 시술이나 치료적인 진단이 이뤄진다.
장일 교수는 “난치성 통증은 수술적 치료에 앞서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거나 고농도 약물로 인한 부작용이 심해 치료 효과보다 부작용이 클 경우 시술이나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며 “최소한 6개월 이상 약물 치료와 신경차단술 등 통증 치료에도 효과가 없고 통증 점수가 7점 이상인 환자에 대해 수술적 치료가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다차원적 치료 접근 필요…감정 영역과도 밀접
난치성 통증을 치료하는 시술이나 수술로는 신경차단술(nerve block), 고주파신경중재술, 척수신경자극기삽입술, 뇌심부자극술(DBS) 등이 있다.
신경차단술은 통증 주사로 신경 기능을 단기간 동안 마비시키는 시술이다. 고주파신경중재술은 척추신경에서 뻗어 나오는 말초신경 초입부에 고주파 열에너지를 통해 통증이 유발되는 신경을 마비시켜 신경차단술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 이들 치료는 환자마다 치료 효과의 지속 시간이 짧게는 1주일에서 몇 달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존 통증이 재발한다.
척수신경자극기삽입술과 뇌심부자극술은 최근 들어 통증의 수술적 치료를 위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분야 중 하나다. 통증을 전달하는 척수의 특정 영역 또는 통증을 인지하는 뇌의 특정 영역에 미세한 자극기를 삽입하고 전기 자극을 가해 통증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뇌경색 후 신경통증, 팔이나 다리 절단 후 나타나는 유령통증(환지통·幻肢痛), 척추수술 후 통증증후군, 큰 사고로 인해 척추신경손상 후 나타나는 통증 등 다양한 난치성 통증에서 치료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같은 수술적 치료 이후 통증 개선 효과가 수술 전 대비 50% 이상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장일 교수는 “통증은 다차원적인 문제다. 즉 단순히 염증 수치를 낮춘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도, 진통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감정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며 “따라서 통증에 접근할 때는 필요하면 재활 치료로 근력을 키우고 만성 통증에 수반하는 우울증, 불면증 등에 대처하기 위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겸하는 것 외에도 급성 통증을 조기 치료하는 등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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