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새만금입니다!"
자,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새만금입니다. 세계 잼버리 대회를 말아먹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죠. 어차피 잼버리는 망쳤으니 염치 불고하고 이참에 제 소개나 좀 해볼까 합니다.
저는 1989년 11월, 새만금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 발표와 함께 '呱呱之聲'을 울렸습니다. 당시 노태우와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대선을 앞둔 후보 시절, 개발 낙후가 가장 심한 전라북도에 선물 하나 던져주자는 합의하에 탄생했죠. 지금은 환갑을 훌쩍 넘긴 배우 박상원 씨가 30대 나이의 한창 젊고 잘 나갔던 시절인 그때, 갑작스레 TV를 통해 중계됐던 '새만금 간척사업 축하쇼' 사회를 봤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애초 계획대로라면 저는 1991년 방조제 착공 이후 14년 후인 2004년에 모든 사업을 마무리하도록 설계됐습니다. 1998년까지 8년에 걸쳐 외곽공사를, 그리고 2004년까지 4년 안에 내부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역대 정권의 무한한 무관심 덕분에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저는 '현재 진행형' 사업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저 대신 이 글을 쓰는 이 친구가 과연 살아생전에 저의 완성품을 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건 앞으로도 27년 후인 2050년에서야 모든 사업이 완료될 예정이니까요. 이처럼 한없이 늘어지다 보니 전북 도민들에겐 '새만금'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이지만, 전북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새만금', '새만금' 하다 보니 이미 다 완성된 것으로 알고들 계시지요.
사상 최악의 잼버리로 인해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습니다. '새만금 잼버리'이다 보니 온갖 비난의 화살이 무방비 상태로 허허벌판인 저에게 날아와 꽂히고 있습니다. 물론 잘못했죠. 입지 선정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졌고 폭염에 대한 대비, 위생, 전기 통신 설비 등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욕먹어 싸죠. "세계 잼버리 대회 유치는 공항과 고속도로, 항만 등 새만금 개발을 위한 지자체의 사기극이고 탐욕이 빚어낸 결과"라며 정치인들이 튼튼한 잇몸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듯 말이죠. 네,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맞는 얘깁니다. 그런데 전라북도가 왜 이렇게 '탐욕'을 부렸을까요? 그건 아마도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제가 언제 완성될지 모른다는 조바심과 두려움이 제일 컸고, 이번 계기를 통해 '퀀텀 점프'를 해서 지긋지긋한 '낙후 전북'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자는 '어리석음'이 자리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낯 두꺼운 변명을 좀 더 이어가 보죠.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전북에 위치한 저에게 얼마나 관심을 보였나요? 제가 서울이나 수도권 등에서 진행되는 국책 사업이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무한정 늘어진 채로 남아있을까요? 만약 제때 예산이 투입돼 정해진 기간 내에 간척사업이 마무리됐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망가진 잼버리 대회로 치러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뻔뻔한 변명입니다만…
아울러 이번 잼버리에서도 드러났듯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대통령 지시 아래 예산을 쏟아부었는데, 왜 그 예산 미리 써서 대비하지 못했나요? 2017년 8월 새만금 잼버리 개최가 결정된 이후 무려 6년 동안 왜 저를 이렇게 방치하셨습니까? 여기에 이미 1년 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심각성이 제기됐고 폭염에 대비한 예산을 반영해 달라며 목청을 높였는데 기재부는 마이동풍이었죠. 국무총리부터 여가부 장관, 행안부 장관, 문체부 장관 등 관계부처 당국자들은 과연 잼버리를 앞두고 몇 번이나 저를 찾으셨나요? 그리고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문제 없도록 잘 준비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실행에 옮겼나요?
이제 잼버리는 떠났고 제겐 후폭풍만 남았습니다. 당연히 잼버리를 망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취해져야겠지요. 그런데 항간에 '전라북도 총대 프레임'이 나돌더군요. 당연히 폭망한 잼버리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또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겠지요. 물론 만만한 전라북도가 제격일 것이고요. 그런데 이미 문제가 수두룩한 판에 1년 남짓 동안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라북도지사를 희생양 삼는 것은 전라도 말로 "쪼까 거시기…" 합니다. 서울 중앙지검 간부들이 지방대 출신 검사에게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를 맡기면서 "만약에 일이 잘 안 풀려도 우리 쪽 라인도 없고, 지방대 출신이라 꼬리 자르기도 편하잖습니까?"라는 영화 '내부자들'의 한 대목이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피해망상인가요?
자, 2021년 발표된 '새만금 세계 잼버리 조직위원회 종합계획안'을 보면 잼버리 주최는 세계 스카우트 연맹과 한국 스카우트 연맹 공동 주최이고, 주관은 세계 잼버리 조직위원회라고 명백히 적혀져 있습니다. 당연히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움직이는 별도 법인기구이고요. 이 조직위원회 산하로 김관영 전라북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죠. 그런데 이 집행위원장이라는 명칭이 총대를 메기에 적합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적인 권한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질 않다는 것입니다. 잼버리 특별법에 나와 있는 규정을 놓고 봐도 집행위원회는 조직위 위원총회의 업무 효율성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일이라는 것이 사업계획서와 예산서 등 조직위원 총회에 부의할 사안들을 심의, 의결해 전달하는 역할에 그칩니다. 물론 전라북도인 부안 새만금에서 열리는 매머드급 세계 대회인 만큼, 굳이 권한을 따질 필요 없이 당연히 전라북도는 '내 일이려니' 하고 옷 소매를 걷어붙여야겠지요. 그런데 그런 전라북도에게 총대를 메게 한다고요?
요즘 정치권과 중앙 언론에서는 잼버리 예산 한 푼도 쓰지도 않았다는 부안군의 자체 해외 순방을 무슨 비리 집단인 양 연일 무차별 융단 폭격을 퍼붓더군요. 전라북도 공무원들 사이에선 "전라북도가 모든 권한을 행사했더다면 덜 억울하겠다"며 오히려 "감사든, 수사든 어서 진행해 달라"는 분위기마저 감지됩니다.
지금 전북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제 얘기를 하며 긴 한숨을 내뱉고 있습니다. "역시 전북은 안되는가 보네…"라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말입니다. 특히 어제 저는 새만금에서 전주 월드컵경기장으로, 다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겨서 치러진 K-팝 콘서트를 초점 없는 눈으로 멍때리면서 지켜봤습니다. '한숨에서 출발해 환호로 마무리됐다'는 보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에 양보할 것을 괜한 욕심을 부려서 '게'도 '그물'도 다 잃었거니와 '꿀'은 고사하고 '벌'만 허벌나게 쏘였네"라는…
구질구질하게 변명이 길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세계적인 행사 잼버리를 망쳐버렸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은 물론, 불볕더위에 분노 게이지를 올렸고, 또다시 전북 도민들에겐 열패감을 안겨줬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저는 새만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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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이균형 기자 balance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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