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잼버리, K팝이 구했다"…찬사 아깝지 않은 이유[르포]
지난 1일 시작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11일 폐영식과 'K-팝 슈퍼라이브'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글로벌 인기를 얻는 아이돌그룹이 다수 출연한 'K-팝 공연'이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하지만 11일 저녁 공연의 퍼포먼스나 행사자체의 완결성 등에 대한 칭찬은 이번 세계잼버리의 전 과정을 살펴봤을땐, 너무 단순한 '과소' 평가다.
우선 폭염과 태풍이라는 기상 환경은 잼버리대회 활동무대를 새만금에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으로 옮기게 한 악조건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행사 초기 무더위와 화장실 위생문제로 번진 논란 속에서도 중앙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잼버리장은 하루 이틀사이에 안정을 빨리 찾았지만, 태풍까지 겹치면서 조직위원회와 정부는 새만금 철수라는 불가피한 결정을 해야했다.
하지만 이는 '어른들'의 결정이었다. 실제 '아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이들은 덥더라도 최대한 다른 나라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새만금 캠프에 하루라도 더 머물길 원했다. 새만금의 악조건을 어려워한 청소년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대원들의 분위기는 서로 '같이' 과정활동을 하며 친교를 나누는 게 잼버리 활동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폭염과 힘든 야외 생활 속에서도 대원들은 어른스럽게 서로 금방 다가갔고 인사 한 두번 나눈 뒤에 다시 만나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어울렸다.
전 세계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들은 더위에 고생했더라도 같이 모여 친분을 나눴던 새만금을 그리워했다. 같이 어울릴 '공간'이 그리웠던 것이다.
세계잼버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대원들끼리의 '친교 활동'이 전체 행사취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국제 행사다. 국내잼버리가 아닌 세계잼버리에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먼 나라까지 온 이유 중 가장 큰 게 다른 나라 대원과 같이 어울려 우정을 쌓을 수 있는 큰 행사이자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이 일찍 새만금 영지를 떠나면서 아이들의 바람은 어느 정도 손상됐다. 6000여명의 영미 친구들과 친교를 할 기회가 박탈된 셈이기 때문이다. 떠난 영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편해졌지만 새만금에 두고 온 3만6000여명의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은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게다가 태풍 영향으로 지난 8일, 모든 대원들이 새만금을 떠나 전국으로 숙박시설을 찾아 흩어지면서 이번 잼버리는 사실상 파행으로 종료될 뻔 했다. 다른 나라 친구와의 '만남'이 없으면 '세계'잼버리 대회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K-팝' 공연은 잼버리 기간 중 사실상 무산 위기에도 놓였었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나오자 "이 무더위에 무슨 대형 공연이냐"는 비판과 우려가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한국 학부형들 사이에서 쏟아졌다. 잼버리 행사 취지와 '문화교류의 날'에 계획된 공연의 의미도 모른채 '취소해야 한다'는 일방적 비난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 대원들의 분위기는 분명 달랐다. 새만금에서 만났던 청소년 대원들은 폭염으로 영내 영외 야외활동 대부분이 취소된 것에 불만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취소되지 않은 'K-팝' 공연에 기대를 걸었다. '공연'의 즐거움이 친교활동에도 큰 도움이 된 단 걸 그 안에서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위원회의 취재제한으로 언론 등에 제대로 공개는 안 됐지만, 새만금 영지내 무대공간은 푸드하우스와 버스킹장·대집회장 등 여러 곳이었다.
그곳에선 스케줄에 따라 아티스트들이 중소규모 공연을 계속해 왔다. 대원들이 직접 나라별 공연에 나서 경쟁한 7일 '새만금 갓 탤런트' 본선도 대원들에게 좋은 친교의 시간이었다.
이런 문화공연 등이 외부에 제대로 공개가 안 되면서, 새만금 영지는 언론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속에선 마치 '뜨거운 사막 속에서 어린 청소년들이 24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좁고 더운 텐트에서 지내는 죽음의 극한 체험'으로 잘못 묘사됐다.
하지만, 실제 그 안에선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문화권의 대원들과 IST 자원봉사 요원들에 의한 다채로운 문화예술 공연이 수시로 있었고 낮밤으로 문화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밤마다 대원들 숙영지의 대형 텐트에서도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작은 파티도 자발적으로 수시로 열렸다. 그곳은 처음 보는 다른 나라 대원과도 쉽게 춤추며 친해지는 특별한 마법같은 공간이었다.
문제는 청소년대원들이 이런 문화교류를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이번 잼버리에선 매우 짧았다는 데 있다. 2일 밤 개영식이 있은지 겨우 이틀 뒤인 4일, 영국이 갑작스레 새만금 철수를 결정하고 미국도 철수 결정을 하면서 대원들이 모여서 문화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사실상 박탈됐기 때문이다. 5일과 6일에 거쳐 영미의 대원들과 IST요원들이 떠났다.
그에 앞서 4일부터 주말내내 사흘간 변산해수욕장에서 열린 변산비치파티에 성인 자원봉사대원인 IST들이 수천명 모여든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새만금 영지내 활동이 위축되면서 외부 출입이 자유로운 IST요원들은 업무종료 뒤나 휴무일에 5분 거리의 변산을 찾아 그들만의 파티를 즐기며 친교를 나눴다. 비치파티엔 대표단 수뇌부로부터 철수결정 통보를 받은 영미 IST요원들도 상당수 보였다. 성인인 그들도 변산에서의 하루나 이틀 밤 정도가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날 거의 유일한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영미 대원들이 떠나자 혼란을 겪으면서 썰렁할 것 같던 새만금 영지는 그러나 전 세계 청소년들과 IST들의 '친교'에 대한 적극성으로 금방 회복 탄력성을 보여줬다. 대략 5일경부터 7일 정도까지는 영지내 대원과 IST들에겐 이번 잼버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영지내 위생이나 식음료 환경이 정부 추가예산 투입과 기업 후원 등으로 풍족해졌다. 3일과 4일 그리고 5일 환경이 눈에 띄게 확 달라질 정도였다. 그에 따라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진 대원들은 영지 곳곳에서 서로 모여 노래를 하고 친분을 쌓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태풍으로 8일 전체 철수가 결정되면서 실망한 대원들이 적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세계연맹, 조직위 그리고 정부의 결정이었지만, 현장의 대원들은 하루라도 더 교류를 하고 영지내 활동을 모여서 하고 싶어했다. 실제 3만6000여명이 철수를 강행한 8일과 9일도 날씨가 좋자 일부 국가 청소년대원들은 부안 고사포 숲체험과 직소천 영외활동 등을 정상적으로 할 정도였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청소년들은 나라별로 곳곳의 숙소로 이동하면서 서로를 만날 기회를 놓친단 아쉬움에 서로 포옹하고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결국 'K-팝 슈퍼라이브'가 반전의 드라마를 써냈다. 문체부가 연맹, 타부처 등과의 협의체 내에서 공연 반대나 우려 의견에 대해 적극 설득해가며 안전대책을 사전 완비하는 것을 전제로 최종적으로 공연을 결정하면서 청소년들에겐 큰 선물이 됐다.
TV생중계로만 11일 공연을 본 일반 시청자들에겐 그저 흔한 'K-팝' 공연 중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대원들에겐 그 의미가 매우 남달랐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1주일 간 샤워장을 함께 쓰고 음식을 나누며 영내외 과정활동을 함께하고 영지에서 교류했던 친구들과의 기다리던 '재회'였기때문이다. 반갑게 웃고 인사하며 하이파이브를 하던 정든 옆 숙영지 그리고 인근 텐트의 다른 나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쁜 행사였다.
실제 30분간의 폐영식, 1시간의 저녁식사 그리고 2시간의 콘서트로 이어진 쉼없는 행사 속에서도, 대원들은 틈날 때마다 서로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두건과 뱃지 그리고 기념품들을 교환하고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묻고 서로 팔로우를 하느라 매우 바빴다. 중계카메라가 비치지 않는 경기장 뒷편 계단과 복도는 서로 교류하려는 외국 대원들로 붐볐다. 우연히 다시 재회한 외국 친구와는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공연을 즐기면서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저녁식사 시간에 외국 친구들과 휘장과 뱃지를 교환하던 대만 출신 링링(18)은 "잼버리가 오늘로 끝나서 정말 아쉽다"며 "다른 나라 친구들과 사귈 기회를 K-팝 공연을 계기로 갖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K-팝' 공연을 같이 즐기면서 동시에 친교활동을 하기엔 11일 저녁은 짧은 시간이었다. 'K-팝 슈퍼라이브'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공연 콘텐츠였지만, 전국에 흩어진 전세계 대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애초 계획대로 진정한 '문화교류의 날'을 즐길 수 있게 해줬단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줄만 하다.
행사에 참석한 루 폴슨 미국 스카우트 운영위원장도 "K-팝 공연 덕분에 스카우트 대원들이 마지막에 다시 모여 잼버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며 포브스 인터뷰를 통해 감사를 전했다.
참여한 기획사와 관계자들 모두 급박한 상황속에서 일부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최대한 협조적 자세로 참여해줬다. 분명 크게 칭찬 받아야할 일이다. 연예기획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눈 앞의 돈만 생각해선 안 될 때가 있다"며 "국가 위기란 생각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출연을 결정한 일부 기획사에 대해선 정말 칭찬을 아껴선 안 된다"고 말했다.
K-팝과 K-콘텐츠가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는 그런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함과 집중력 그리고 위기대응 능력이 한몫 하고 있단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던 게 11일 잼버리 'K-팝 슈퍼라이브'였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공연 행사를 책임진 문체부 직원들은 폐영식과 공연 내내 경기장 곳곳을 계속 돌아다니며 수시로 현장점검을 하고 있는 게 목격됐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경기장 사전 점검을 위해 빗속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걸어다니며 점검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 등에서 통역인솔요원으로 갑자기 선발돼 파견된 공무원과 직원들의 노고도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 통제에 다소 따르지 않기도 하는 외국 청소년들을 위해 특별 근무를 한 그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 참가자들이 큰 사고없이 한 자리에 다시 모이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잼버리 초반 폭염 속 위생과 식음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단 소식에 신속히 후원물품을 보내 준 여러 대기업과 각종 단체의 헌신적인 노력도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
부안(전북), 상암월드컵경기장(서울)=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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