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최종승소까지 4년, 음향감독 "혼자만의 싸움 아니야"

김예리 기자 2023. 8. 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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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방홍보원 '위장 프리랜서' 부당해고 확정된 염현철 음향감독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 6월15일 '프리랜서' 방송스태프의 노동자성을 다룬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방TV를 운영하는 정부기관인 국방홍보원에서 9년 일한 음향감독이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승소했다. 정부는 “프리랜서 계약해지”라고 주장했지만, 3심 법원은 모두 노동자에 대한 “해고”이며 “부당하다”고 못 박았다. 2021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와 2022년 MBC 보도국 작가들 이후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의 부당해고 확정 판결이다.

염현철 음향감독은 2018년 말 국방홍보원에 연장·휴일근로수당을 요구하는 노동청 진정을 냈다. 이후 3개월 만에 해고됐고, 다시 3개월 뒤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을 더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국방홍보원을 대표하는 정부가 위장 프리랜서 관행을 인정하지 않고 거듭 불복해서다. 국방홍보원이 현재도 미지급 임금 지불을 거부하면서 임금체불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염 감독은 지난 5일 만난 자리에서 회사와 법적 다툼을 두고 “모두를 위해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곪아 터지기 전에 내가 일하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홀로 싸우는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과정”이라며 “방송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많은 비정규직 분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정규직보다 더 종속된 '프리랜서'…아파도, 출산해도 출근

염 감독은 2010년부터 국방TV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했다. 국방TV는 국방부 정책을 홍보하는 방송국으로 국방부 산하 정부기관이다. 그는 국방TV가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오디오 업무를 전담했다.

스튜디오 녹화와 생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부조정실에서 조명과 영상, 기술감독과 함께 일했다. 촬영 전 음향과 마이크를 관리하고 촬영 중엔 콘솔을 조작했다. “부조정실에선 기술감독 지시 아래 모든 게 진행돼요. 기술감독이 제게 '○○씨(출연자) 마이크가 너무 크다'고 하면 (음량을) 줄이는 식으로.” 보통 음향감독은 맡지 않는 포스트프로덕션(효과음을 넣는 등의 후반 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4명이 한데 섞여 일했지만 일부는 정규직, 일부는 프리랜서였다.

국방홍보원이 내민 계약서는 이상했다. 이름은 프리랜서 약정서인데 근로계약도 요구하지 않는 조건들을 담고 있었다. “평일과 휴일에 관계없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프로그램 제작자임을 이용해 본인의 영리 행위를 추구하면 안 된다”, “공무원에 준하는 품위와 자세를 유지하는 등 공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등 조항이다. 실제 염 감독은 야근을 했고 명절에도 부르면 나왔다. 쉴 때도 긴장하며 지냈다. 같이 일해도 염 감독만 수당과 휴가를 받지 못했다.

▲국방TV 프로그램 엔딩크레딧에 적힌 염현철 음향감독 이름.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2019년 3월 '국방홍보원, 방송제작 인원 3분의2가 비정규직'에서 보도한 국방홍보원 프리랜서 약정서 화면 갈무리.

“그게 너무 당연했어요. 선배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그렇게 얘기했어요. 한 선배는 얼굴을 붉히면서 '넌 원래 휴가가 없어!'라고 말하더군요. 친했던 선배예요.” 아이가 태어날 때도, 아플 때도 쉬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이 끝나고 바로 출근했어요. 결혼하고는 3박4일 쉬게 해 줬네요. 임플란트 치료를 받을 땐 녹화 빌 때 잠깐 나가 수술하고 오는 거예요.”

일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다큐멘터리가 방송대상을 타기도 했다. 그가 기획과 제작진·출연진 섭외, 촬영, 편집까지 담당해 만든 '플러그 인 DMZ'이다. 한 팀장이 영상을 만들 줄 아는 그에게 기획과 제작을 제안했고, 염 감독은 추가 급여 없이 가욋시간을 내 제작했다. 작품은 2018년 케이블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같은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상을 받았다. 그런데 국방홍보원이 수상 사실을 염 감독과 그가 외부에서 직접 섭외한 제작진에 알리지 않아 논란이 됐다. 수상자에 국방홍보원 직원들만 이름을 올리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미니다큐 'PLUG IN DMZ(플러그 인 디엠지)'는 2018년 케이블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같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을 수상했다. 수상자에 빠졌으나 다큐를 실제 만든 이는 염현철 전 국방홍보원 음향감독과 김효민 작가, 양빛나라 음악감독이다. PLUG IN DMZ '시의위로' 편 갈무리.

“사명감과 애정 이용한 가스라이팅”
수당 달라 진정하자 돌아선 동료들

염 감독이 부당함을 8년 넘게 견딘 이유는 하나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고 헌신한다는 사명감”이다. 그는 “그게 몇 년이 쌓이니 억울하더라”라며 “국방홍보원은 내가 특수한 임무를 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대우하는 것처럼 '가스라이팅' 했던 것 같다. 사실 스스로도 가스라이팅을 했다. 곪아터지기 전에 변화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2018년 12월 연장·휴일근로수당과 명절 휴가비를 달라며 노동청에 진정을 제출했다.

염 감독은 진정한 뒤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한 선배가 느닷없이 제 자리로 와서 '야 너 왜 여기 있냐? 우리 사무실에 왜 있어?' 이러는 거예요. 내 이름을 붙인 내 책상에 앉아있는데, 마치 외계인을 보듯이. 황당하잖아요. 결국 그날 완력으로 쫓겨났어요.” 이후 염 감독은 사무실 밖 PX 매점 뒤편에서 근무했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프리랜서 동료는 돌연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국방TV를 운영하는 국방홍보원에서 근무할 당시 염현철 음향감독의 좌석.ⓒ염현철

석달 뒤 그는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다. 국방부 출입기자에게 자신의 고용 조건을 알렸다는 이유였다.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일하는 만큼 대우해달라'고 요구한 대가였다. 해고 과정에선 직원 가운데 한 명이 '당신은 프리랜서입니까, 아닙니까'라고 거듭 물으며 화장실까지 따라온 일도 있었다고 했다. 염 감독은 “그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방홍보원이 염현철 음향감독에 해고 통보하며 제시한 계약해지 통보서 내용.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문.

4번의 정부 불복, 5번의 승소
“방송산업 특성상 지시받으며 밀접하게 업무”

염 감독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첫 연장·휴일수당과 명절비 진정을 포함해 두 차례의 노동위원회, 3심 법원에서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모두 인정 받았다. 그는 복직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당한 관행을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송출 업무를 두고 “여러 방송기술 분야 활동이 스튜디오나 녹음실 안에서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갖고 실시간으로 결합돼 수행된다”며 “국방홍보원이 그의 구체적 업무 내용을 정하고 그 과정을 지휘·감독했다”고 판시했다. 방송사들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고용 불안과 노동 착취 문제 제기가 나올 때마다 이들이 '독립사업자'라 주장하고 있다. 밀접하게 실시간 협업하는 방송산업 특성상 이는 허용할 수 없다고 법원이 다시 확인한 셈이다. 서울고법은 국방홍보원 측 해고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부당해고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를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했다. 그는 “재판을 겪다 보니 해명하는 것이 내 인생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국방홍보원은 그에게 일상적으로 업무 지시를 해온 사실을 부인했고, 모든 입증 책임은 그에게 떠넘겨졌다. “'염현철은 우리 지시를 받은 적이 없어요.' 말은 쉬워요. 그런데 나는 그 한마디 때문에 이를 뒤엎을 증명을 해보여야 해요. 너무 당연한 일상을요.”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염 감독은 국방홍보원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과 퇴직금, 연차수당 등 임금체불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국방홍보원의 거듭된 불복으로 이어진 소송을 돌이키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다. “매일매일 '나의 사건'에 들어가서 재판을 검색해 보고 일상이 휘둘려요. 어떨 땐 재판 기록이 하나 올라왔다고 하루종일 누워있을 때도 있고, 집에 서류 하나 날아오는 것도 트라우마가 돼요. 재판에서도 (노동자에게) 죄책감을 주는 발언이 많이 나와요. 그럼 내가 잘못했나? 죄를 지었나? 생각하게 돼요.”

그가 문제 제기한 뒤 국방홍보원엔 일부 변화가 있었다. 영상감독 등 프리랜서이던 일부 직종이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정규직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다. 염 감독은 “내가 국방홍보원에 있을 땐 밖에서 일할 수 없었던 분들이 나와 일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도 했다

나서는 '위장 프리랜서' 당사자들에 “혼자만의 싸움 아냐”

방송사엔 염 감독처럼 정규직처럼, 혹은 정규직보다 더 회사에 종속돼 일하고도 '프리랜서 계약'으로 일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2021년 기준 지상파 방송3사 시사교양과 보도국 종사자 가운데 프리랜서 비율은 41.5%로 정규직보다 많았다. 지역민방을 포함한 전국 지상파 13개 방송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많은 고용 유형이 프리랜서(32.1%)였다. 2020년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숨진 뒤 CG, AD, MD, 무대설치, 전산, VJ, 아나운서 등 더 많은 프리랜서 비정규직들이 노동자성 다툼을 시작했다.

노동자성을 인정 받고도 회사 불복으로 법적 다툼에 일상을 뺏기는 노동자들 사례도 늘고 있다. 중노위는 지난 6월 국회방송을 운영하는 국회 사무처 메인작가들의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으나 국회 사무처가 불복해 소송을 시작했다. KBC광주방송에서 일했던 조연출 AD도 지난 6월 광주지법에서 퇴직금 소송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광주방송은 항소했다. MBC는 보도국 작가 부당해고를 인정한 중노위를 상대로 제소했다가 지난해 최종 패소했다.

염 감독은 '싸우는 방송 비정규직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한동안 침묵했다. 염 감독은 지난 9일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 그 이유로 “차마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못하겠다. 너무나 힘든 싸움이기 때문”이라며 운을 뗐다. 그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인터뷰를 하고도 며칠 동안 마음에 폭풍이 몰아친 것 같았다”며 “다만 몰아치는 기간이 전보다 짧아져 간다”고 했다.

“회사 상대로 싸우고 있는 과정에는 더하죠. 나는 정직하기 위해서 싸움을 시작했는데 상대는 거짓을 말하고 함정을 팝니다. 아끼던 동료들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일개 개인이, 권력을 갖고 많은 사람과 연결돼 있는 방송사를 상대로 싸우는 거니까요. 재판 과정에서 죄책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소중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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