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믿고 보는 배우가 될까요?"…김희선, 로코여신의 바람 (달짝지근해)
[Dispatch=오명주기자] X세대. 1974년~198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그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난 나야". 자기주장이 강하며,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대신 자기 계발에 열중했다.
김희선은, 'X세대'의 상징이다. 말 그대로, '통통' 튀는 매력의 소유자. 직선의 말투와 직진의 행동으로 1970년대 생을 사로잡았다.
X세대의 아이콘이 영화로 달짝지근하게 돌아왔다. (더) 재미있는 건, 그의 직진 연기가 MZ세대의 취향까지 저격하고 있다는 것.
"김희선 진짜 포챠코 이쁨 귀여움"
"중년 로맨스 오짐 진짜 ㄹㅈㄷ"
"김희선 특유의 생기발랄함 너무 조음"
"김밥천국 뭐냐고ㅋㅋㅋㅋ 설마 했다"
이한 감독은 영화를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배우만 떠올렸다. 김희선. 그가 '일영'이고, 그만이 '일영'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김희선은, 110% 응답했다. X세대 아이콘, 원조 로코 여신. 그가 중년 로맨스의 답안지를 꺼냈다. 영화 '달짝지근해 : 7510'이다.
◆ 손편지를 받고
"20년 만에? 갑자기? 나를? 영화에?"
김희선은 고개를 흔들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이어 던진 질문은, "뭐?"와 "왜!"
"처음에는 장난이라 생각했어요. 그동안 드라마만 했어요. 영화를 안 한 지 20년이 됐는데. 그런 저를 갑자기 왜요. 그것도 로코래요." (김희선)
하지만, 사랑에 빠질 파트너는 유해진. 이때부터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이 영화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정중하데 고사할 것인가.
"유해진 씨 팬이에요. 너무 좋은 배우잖아요. 꼭 한 번은 (극에서) 만나고 싶었죠. 그런데 20년 만에 스크린에 나설 자신은 없고…"
김희선은 이한 감독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로코 연기는 자신 있지만, 실시간으로 체크되는 관객 수는 두려웠다.
그때 김희선의 마음을 움직인 건, 이한 감독이었다. <김희선이 일영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A4용지 2장 빼곡히 써서 전달한 것.
"제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냥 일영 그 자체로 보였대요. 너무 감동적이었죠. 이런 감독님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김희선은 시나리오를 읽을수록, 일영에게도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통하는 게 많았다. (무한) 긍정, 엄마, 그리고 직진인 성격까지…
김희선은, 그렇게 '일영'을 만났다.
"정말 부담 없이 촬영을 했어요.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저절로 일영이 되는 것 같았죠. 해진 오빠도 너무 잘 이끌어주셨고요."
◆ 일영이 됐다.
일영은 캐피탈 회사 콜센터 직원이다. 미혼모로 혼자 대학생 딸을 키운다. 당돌하고, 가릴 것이 없다. 발랄하고, 솔직 그 자체다.
치호(유해진 분)는 일영과 정반대다. 그래서 더 끌린다. 단조롭고 규칙적인 그의 마음에 돌덩이를 던진다.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한다.
"일영은 사람을 볼 때 조건보다는, 자기가 보는 대로 그 사람을 믿어요. 직진밖에 모르는 세상 긍정 마인드인 캐릭터죠."
김희선은 일영의 직진성에 (딸을 키우는) '엄마' 김희선을 덧입혔다.
"만약에 내가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했을까? 저도 엄마니까요. 그렇게 대입하면서 연기를 했죠."
김희선은 유해진과 중년의 로맨스를 펼친다. 유쾌하게, 풋풋하게, 마치 성인 버전의 '소나기'처럼.
"어른들의 풋풋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어요. 순수하면서도, 마냥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정말 '달짝지근'한 로코가 완성된 것 같아요."
◆ 유해진은 달짝지근
사실, 기자 시사회는 엄숙하다. 웃음에 야박(?)하다. 그러나 '달짝지근해'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영화기자들이 박장대소했다.
김희선과 유해진의 합은 기대 이상이었다. 첫 호흡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흔히 로코에서 말하는 케미가 폭발했다.
로맨스 호흡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달달한 신이 많다 보니, 정말로 친해지지 않으면 연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비결을 공개했다.
"소통하는 시간을 정말 많이 가졌어요. 해진 오빠는 치호 그 자체죠. 오빠가 치호니까 저도 더 일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해진에 고마운 마음도 드러냈다. "첫날 촬영이 없는데도 응원한다고 놀러 왔다. 이틀 연속 제 대사를 맞춰주더라"고 전했다.
김희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무엇일까. 단연, 치호와의 키스신이다. 극중 일영이 자동차 극장에서 과감하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장면.
"제가 좀 더 격렬하게 해야 하는 건데, 오히려 오빠가 웃음을 못 참더라고요. NG를 가장 많이 낸 신일거에요. 어금니 꽉 물고 웃음 참고 연기했죠."
◆ 김희선의 그 다음
김희선은 치열하게 살아왔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공백기를 제외하곤, 계속해서 달렸다. 출연한 작품 개수만 약 50개다.
그녀의 연기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단 한 번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장르를 바꿨고, 부단하게 캐릭터를 변주했다.
그리고, 이제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
"20대의 김희선은 통통 튀는 X세대 그 자체였죠. 지금은 이제 엄마 역할을 맡네요. 저도 나이가 들고, 제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좋고요."
30년차 임에도, 아직 도전을 말한다.
"액션도 더 해보고, 로코도 그렇고, 그냥 다 더해보고 싶어요. 안 해본 장르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호러에요. 끊임없이 새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희선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저, 관객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배우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크면 이런 말을 할까… 부럽더라고요. 저도 이런 수식어를 달고 싶어요."
배우 김희선의 N년째는 어떨까. 벌써부터 그녀가 계속해서 보여줄 그다음이 기대된다.
<사진제공=힌지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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