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T 수사, '경영진 교체' 큰 그림 있었나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요즘 검찰의 '가장 잘 드는 칼'로 꼽힌다. 특수부에서 이름이 바뀐 반부패 1, 2, 3부가 하는 대장동 수사나 민주당 돈봉투 수사에 비해 언론의 주목은 상대적으로 덜 받지만 위 수사가 진퇴를 거듭하는 동안 사회적, 경제적 영향이 큰 굵직한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왔다. 지난 1년 동안 재판에 넘겨진 재벌 총수나 중견기업 대표들만 해도 족히 열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잘 드는 칼이 최근 몇 달 가장 공을 들이는 사건이 KT 수사다. 지난 3월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된 수사는 5월 KT 본사 압수수색, 7월 하청업체 대표 구속과 KT 전현직 대표 압수수색‧소환조사를 거쳐 막바지로 다다르는 분위기다. 대규모 수사였고 파장도 컸다. 연임을 노리던 구현모 전 대표는 포기를 선언했고 다음 대표 후보였던 윤경림 KT 전 사장도 검찰 수사선상에 이름이 오르내리자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것이 자라나듯 그 사이 KT는 새로운 대표 후보를 뽑았다. 'LG맨'이자 재무통으로 꼽히는 김영섭 LG CNS 전 사장이다. 공교롭게도 김영섭 후보자는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KT 안팎에서는 "김영섭을 밀라"는 높은 곳으로부터의 전화가 사내외 이사들에게 걸려왔다는 말도 나온다. 최종 임명까진 주주총회 의결만 남았으니 수장 교체가 사실상 완성된 셈이다.
물론 검찰 수사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구현모 전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고 윤경림 전 사장이 대표 후보에서 사퇴했을 때도 검찰 관계자는 "우리 관심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수사는 계속됐고 온갖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KT 일감을 나눠 갖던 하청업체들은 퇴직한 경영진들이 설립한 회사였고 구 전 대표 등 경영진이 '자기 편'이 아닌 회사의 일감을 빼앗아 '자기 편'인 회사에 몰아준 정황도 확인됐다. 구속된 KT 하청업체 대표가 자녀를 허위 고용하거나 고문 자리에 전 KT 사장 아내를 올려두고 뒷돈을 줬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 관계자는 "KT 경영진의 이권 카르텔과 부도덕성이 수사로 확인된 것"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와 KT 경영진 교체를 연관 짓는 시선은 여전하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전 정권 때 들어온 경영진은 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오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정권마다 반복된 'KT 잔혹사'도 이런 시각에 힘을 보탠다. 공기업이던 KT는 2002년 민영화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렸다. 민영화 이후 첫 수장인 이용경 전 대표를 제외하고 대표 4명이 모두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로 물러나는 등 사법리스크에 휘말렸다. 이번에도 같은 프레임을 적용하는 게 무리한 일만은 아니다. 검찰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결국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수사가 오히려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당초 검찰은 의혹의 정점인 구현모 KT 전 대표를 지난주 소환할 예정이었지만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일감 몰아주기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직 의혹이 더 남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검찰 수사는 전현직 경영진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집중돼왔지만 본래 시민단체 고발장에는 KT와 현대차의 수상한 거래와 보은 인사 의혹이 담겨 있었다. 지난 2019년 현대차가 구현모 대표의 쌍둥이 형이 설립한 회사를 사주고, 당시 현대차그룹 부사장이던 윤경림 전 사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KT에 사장으로 재입사했다는 의혹이다. 지난해 KT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동서가 설립한 회사를 사준 것도 의혹의 한 줄기다. 만약 재계 3위(현대차그룹), 그것도 오너 일가와 재계 12위(KT)의 부당거래가 있었다면 그 자체로 대형 사건이다. 검찰은 어디까지 수사를 확대할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영화 20년이 지나도록 KT 잔혹사가 반복되는 데는 KT의 업보(業報)도 크다. 수사로 드러난 비위는 가히 '비리 종합판' 수준이다. 재계 12위자 통신업계 2위 대기업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경영진이 온갖 전횡을 저지르는 동안 내부 통제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주인 없는 회사가 보여줄 수 있는 안 좋은 모습을 다 보여줬다. 그동안 스스로 투명한 지배 구조를 만들지 못한 탓이 크다. 이번에도 대표만 바뀌고 다른 건 바뀌지 않는다면 KT 잔혹사는 몇 년 뒤 또 재현될 수 있다. 칼에는 눈이 없다고 했나. 그때는 검찰의 칼이 어디를 향할지 모른다.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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