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 쇄담] KBO리그 대신 ‘꿈의 무대’ MLB에 도전장 던진 선수들
세계 최고 무대 美 MLB에 도전한 3인방
마이너리그 생활 개선도 한몫
이들의 건투를 빈다
[쇄담(瑣談) : 자질구레한 이야기]
최근 한국 프로야구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 대신 ‘꿈의 무대’로 불리는 MLB(미 프로야구) 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이들은 미국으로 향할까.
MLB 입성을 위해 거쳐야 하는 마이너리그 생활수준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이들에겐 “(미국에) 가서 눈물 젖은 빵 먹지 말고, 국내에서 잘한 뒤 대우받고 가라”는 말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셈이다.
◇올해 유력 ‘1순위’ 장현석 “세계 최고 무대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열망”
오는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에 ‘아마추어 선수’론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마산용마고의 우완 투수 장현석(19)이 MLB 도전을 택했다. 장현석은 올해 신인 드래프트 ‘1순위’가 유력했던 특급 선수다.
장현석의 매니지먼트사 리코스포츠에이전시는 지난 9일 “장현석이 LA다저스와 계약금 90만달러(약 11억9800만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장현석은 앞서 1일에 오는 9월 열리는 국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내지 않고, 미국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장한 체격(190㎝·90㎏)을 갖춘 그는 최고 시속 157㎞짜리 강속구를 뿌리고, 커브와 슬라이더 등 변화구 구사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고교 무대에서 9경기(29이닝) 3승(무패) 평균자책점 0.93 탈삼진 52개로 활약했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하게 수련을 받는다면 구속을 100마일 이상으로 끌어올릴 자질을 가졌다는 게 미국 내 분석이다. 장현석은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고 싶은 열망에 (국내 프로야구 대신) 결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LA다저스는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코리안 특급’ 박찬호(50)와 최근 부상을 털어내고 복귀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의 MLB 첫 팀이다. 장현석이 여기서 ‘코리안’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작년 유력 ‘1순위’ 심준석, “美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꿈”
장현석 이전엔 심준석이 있었다.
지난해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시속 157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는 등 초고교급 투수로 신인 드래프트 ‘1순위’를 사실상 예약해뒀던 심준석(19·당시 덕수고)은 예상을 깨고 MLB 무대 도전을 선언하며 미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고교 투수 ‘4인방’을 이뤘던 김서현(1순위 한화), 윤영철(2순위 KIA), 신영우(4순위 NC)가 모두 국내에 남은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였다.
이후 현지 매체 보도로 알려진 계약금 규모(75만 달러·약 9억9000만원)는 기대치를 밑돌았지만, 심준석은 지난 1월 피츠버그 파이리츠 입단 당시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큰 키(194㎝)에서 내리꽂는 직구 평균 구속이 94~96마일(약 151~154㎞)인 심준석은 낙차 큰 커브 등 변화구도 갖췄다. 다만 제구 불안이 약점으로 꼽혔다.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하게 훈련할 경우 제구력을 장착한 채 향후 100마일(약 시속 161㎞) 이상의 빠른 공을 구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심준석은 루키레벨인 플로리다 컴플렉스리그(FCL)에서 2경기에 등판해 5와 3분의 1이닝 1실점(평균자책점 1.69)을 기록 중이다.
◇KBO 선택 못 받아도 MLB 꿈꾼다
2021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못 받았던 신일고 출신 최병용(21)은 지난달 11일 MLB 드래프트에서 20라운드 전체 611순위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뒤에서 네 번째. 극적인 합류였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선수가 미국 대학(2년제 전문대 뉴멕시코 밀리터리 인스티튜트)을 거쳐 MLB 신인 지명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2021년에 국내 프로야구 팀으로부터 호명되지 못한 최병용은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낙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친구의 아버지와 남지현 크로스베이스볼 대표의 야구 유학 프로그램 덕분에 그는 미국까지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최병용이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크로스베이스볼의 야구 유학 프로그램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스베이스볼은 비야구인인 남 대표가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설립한 미국대학 야구 유학 전문 컨설팅 회사. 남 대표는 2018년부터 매년 미국대학 감독들을 국내로 불러 KBO 지명을 받지 못한 고교 야구 선수들의 ‘쇼케이스’를 열고 있다.
하지만 최병용 땐 코로나 사태로 감독들을 국내로 못 불러들였다. 그렇게 ‘쇼케이스’를 동영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직접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지 못한 감독들은 선수들을 뽑는 것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 대표는 기존에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던 다른 대학 감독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준 학교 중 하나가 최병용을 품은 2년제 전문대 뉴멕시코 밀리터리 인스티튜트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최병용은 뉴멕시코 밀리터리 인스티튜트에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이곳에서 최병용은 이를 악물고 야구에 매진했다. 본지와 연락이 닿은 그는 말 그대로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하고, 야구에 미친 채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소외되고 나태해지기 마련. 야구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에도 열중했다. 그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언어, 문화, 음식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고 돌아봤다.
그러나 최병용은 사실 처음부터 MLB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2년 동안 미국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KBO 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2년째가 되는 올해 타격 성적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MLB에서도 관심을 보였고 극적으로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이다. 그는 올해 대학리그 58경기에 출전해 타율 0.448(201타수 90안타) 15홈런 80타점 71득점 45볼넷 10도루 OPS(출루율+장타율) 1.429의 놀라운 성적을 남겼다.
그는 “남들이 볼 때 당연히 제가 (MLB 도전에) 실패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야구는 아무도 모른다. 꼴찌의 반란 드라마를 꼭 보여드리겠다. 저는 자신있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이젠 ‘눈물 젖은 빵’ 없는 마이너리그 생활
이처럼 2년 연속 고교 초특급 선수들과 최병용과 같은 선수들이 국내 프로야구 무대 대신 MLB 도전을 선택한 배경엔 2023년 3월 MLB 노사 협정에 따라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대우가 크게 향상된 게 있다.
아직 프로 선수로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고교 및 대학 졸업 선수들은 바로 MLB 무대에 오르는 대신 치열한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야 한다. 미 마이너리그는 하위 레벨부터 시작해 루키-싱글 A-더블 A-트리플 A로 구성되는데, 이 단계는 건너뛸 수 있다. 예컨대 더블 A에서 바로 MLB로 직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엔 마이너리그 생활이 흔히 “눈물 젖은 빵을 먹는다”는 것에 비유됐다. 실제로 노사 협정 이전까지만 해도 루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4800달러(약 633만원)에 불과했고 싱글 A(1만1000달러), 더블 A(1만3800달러), 트리플A(1만7500달러)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국내 KBO 리그 최소 연봉인 3000만원보다도 빈약했다. 이로 인해 미 마이너리거들은 ‘투 잡(two job)’을 뛰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사 협정 이후 루키 선수들의 연봉은 1만9800달러, 싱글 A 선수들의 연봉은 2만6000~2만7000달러, 더블 A는 3만250달러, 트리플 A는 3만5800달러로 급상승했다. 2024년부터 더블 A 및 트리플 A 선수들에겐 1인 1실 주거지, 루키 및 싱글 A 선수들에겐 경기장 교통 수단과 식사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즉, 계약금까지 포함하면 야구에 집중하는 데 큰 무리가 없는 셈이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빅리그에 진입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도 호재다. 과거엔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MLB 그라운드를 밟기 까진 보통 4년이 넘었다. 선수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기간이다. 그러나 이젠 입단 후 3년 이내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에 3년 동안 마음껏 도전해본 뒤 실패하더라도 한국에 돌아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물질적 및 시간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0%, 도전하면 50%의 확률이 확보된다. 당장의 화제와 인기를 뒤로하고 꿈을 위해 쉽지 않은 도전을 택한 이들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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