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범 컬럼] VEGAS, 매일매일 점프볼 하는 도시

손대범 2023. 8. 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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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편집인] 팬데믹 이후 처음 찾은 라스베이거스는 여전히 무덥고 화려했다. 하늘 높이 치솟는 벨라지오 분수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세계 최대 공 모양 건축물이라는 스피어(Sphere)는 시종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피어는 외벽에 세계 최대 해상도의 LED 스크린 120만 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내던 6일간 계속해서 NBA 공인구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라스베이거스는 농구 도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팬이 원하는 것이 다 있었다! NBA 콘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이유는 바로 NBA 콘(NBA Con)이었다. ‘사상 처음’이라는 부제와 함께 개최된 NBA 콘은 말 그대로 NBA 팬들을 위한 대형 박람회였다.

1984년 데이비드 스턴 전 총재는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NBA 올스타 주말(All Star Weekend)을 신설했다. 올스타게임 한 경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전야제에는 슬램덩크, 3점슛 대회를 열어 NBA 농구의 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동시에 올스타게임이 열리는 도시에서 잼 세션(Jam Session)을 개최했다. 팬들을 위한 행사로 각종 전시회와 사인회 등을 개최해 호평을 받았다. 미국 팬들 중에는 올스타게임 본 경기나 전야제보다도 잼 세션을 보기 위해 돈을 모으는 팬들도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3일간 행사가 열리는 동안 올스타 선수들이 현장을 방문해 사인회와 농구 클리닉, 토크쇼 등 다양한 활동을 갖기 때문이다.

평소 보기 힘든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고 사인을 받기도 용이했다. 나 역시 올스타게임 취재를 가면 잼 세션을 무조건 2번 이상 방문하곤 했다. 아담 실버 총재는 잼 세션을 한 단계 진화시킬 ‘뻔’ 했다. 실버 총재는 삼성, 기아, 금호타이어 등 다양한 스폰서를 위한 부스를 신설해 NBA와 연계된 행사를 만들었다. 해외 법인의 행사라곤 하지만, NBA 행사의 중심에 국내 기업이 서있는 광경이라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런 NBA 잼 세션이 갑자기 규모가 축소되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2023년 유타 올스타게임에서 ‘NBA 크로스 오버’라는 명칭으로 부활했지만 다녀온 팬들의 의견에 따르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NBA콘 현장을 가보니 어쩌면 NBA 잼 세션과 같은 행사가 축소된 것은 NBA 콘을 위한 밑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됐다.

만달레이베이 호텔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NBA 콘은 마치 생사의 위기를 겪고 난 뒤 더 강해져서 돌아오는 사이어인처럼 더 큰 규모로 돌아왔다. NBA 잼 세션처럼 농구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건 같았는데, 컨텐츠가 더 방대해졌다.

우선, 사인회는 더 주기적으로, 자주 열렸다. OG 아누노비, 마숀 뷰챔프, 다리우스 갈랜드, 아미르 코피, 도리안 핀리-스미스, 마일스 터너, 자이언 윌리엄슨 등이 팬들과 시간을 가졌다. 선수들은 사인회를 마치고 퇴장하는 중에도 어린이 팬들의 사인 요청이 있으면 기꺼이 고개를 숙여 펜을 들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2 체인즈, 에슬라본 아르마도, 투시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열렸고, DJ들의 맛깔나는 퍼포먼스도 관람객들의 어깨춤을 자아냈다. 또 다른 행사장에서는 제리 웨스트, 카림 압둘-자바, 레이 앨런, 카멜로 앤서니 등 전·현직 스타들이 방문해 각각의 주제로 토크쇼를 가졌다.

토크 주제도 방대했다. 제리 웨스트와 압둘-자바는 ‘NBA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웨스트의 경우 특유의 유머를 섞은 ‘라떼는 말이야’ 스킬을 시전했다. “우리 때는 3일 연속 경기도 흔했다. 요즘 선수들은 전용기를 타고 다니지만 우리는 공항에서 일반인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스케줄이 굉장히 고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평균 40분 이상을 뛰어왔다.”

물론 자기 과시를 위한 발언은 아니었다. 경청하는 이들도 이런 레전드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지금의 NBA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NBA 감독 3인방 JB 비커스태프(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조 마줄라(보스턴 셀틱스), 크리스 핀치(멤피스 그리즐리스)는 ‘NBA 감독의 삶’이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가졌는데 이 역시도 책으로 엮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옥같은 멘트들이 많았다.

NBA 잼 세션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역시나 2010년대와 2020년대의 달라진 방송 및 테크놀로지 환경일 것이다. 현장에서 유튜브 및 팟캐스트 공개방송이 진행됐다. 트레이 영, 숀 메리언 등이 공개 방송에 참여해 팬들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또한 VR을 이용한 체험 기회도 있었고, NBA가 가장 먼저 시도해 스포츠 시장을 놀라게 했던 NFT 역시 여전히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NBA는 ‘탑샷’이라는 수집형 카드NFT를 만들어 화제가 됐다. 2022년 12월 발매된 스카티 피펜 NFT의 경우 77초 만에 완판되기도 했고, 최근 미 법원은 NFT를 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NBA는 NBA 콘 홍보를 위해 두 가지 ‘빅카드’를 내밀었다. 첫째는 전체 1순위 빅터 웸반야마다. 라스베이거스의 7월은 빅터 웸반야마로 압축될 수 있는데,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 사람이 붐벼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NBA는 대형 신인과 압둘-자바의 만남을 주선했다. NBA 콘 무대에 나란히 세워 대화를 나누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팬과 미디어가 몰리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로 화제가 되어온 NBA 인시즌 토너먼트 발표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대개 NBA 인시즌 토너먼트와 같은 굵직한 행사 발표는 아담 실버 총재가 기자회견을 개최하곤 했는데, 기자회견 대신 NBA 콘 무대를 택한 것이다. 총재의 발표는 NBA 서머리그가 열리는 토마스 & 맥 센터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이뤄졌는데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NBA 콘으로 쏠릴 수 있었다.

NBA는 티켓을 일반/VIP 티켓으로 나누었고 1일권과 3일권을 따로 팔았는데 모두 매진되었다. VIP 티켓의 경우 1500장 한정으로 250달러(한화 32만 원)에 판매했는데 이 역시 소진됐다. VIP들은 1시간 먼저 입장이 가능했고 사인회와 같은 행사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일반 티켓이 60달러(한화 7만 7000원)로 1/4 가격이었으니 VIP가 이 같은 혜택을 누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NBA는 매일 밤 10시, 하카산 클럽을 비롯 라스베이거스 유명 클럽에서 파티를 개최했는데, 일반 팬 중에서는 VIP 티켓을 가진 사람만이 입장 가능했다. 문전성시를 이룬 만큼, NBA는 매년 NBA 콘을 개최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내년에는 스폰서를 더 많이 유치해 규모를 키우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컨벤션 센터 중앙에는 NBA 실제 코트와 똑같은 사이즈의 코트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NBA 콘 첫날 서머리그 취재 때문에 이 코트에서 열린 인디애나 페이서스 공개 훈련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만약 가게 된다면 반드시 첫날에 입장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이렇다. 코엑스, 킨텍스에서 열리는 결혼박람회 혹은 코믹콘, 펫쇼 이런 것들을 ‘농구’로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NBA는 팬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거대한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우리 프로스포츠 산업 규모상 이 정도 행사가 가능한 종목은 아마도 프로야구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꼭 규모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작은 행사라도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최대한 성심성의껏 준비하면 된다. 행사장에는 농구 및 여러 단체에서 온 실무자들도 많아 보였다. 우리도 언젠가는 실무자들이 현장을 찾아 둘러보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농구 도시’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서머리그만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NBA도 30개 구단으로 이뤄진 거대 조직이기 때문에 30개 구단 관계자들이 모두 모일 기회가 많지 않다. 올스타게임도 따지고 보면 올스타를 배출하지 못한 구단에게는 ‘남의 행사’나 다름없다.

그러나 서머리그는 30개 구단이 모두 출전하는 초대형 이벤트다. 30개 구단의 모든 실무자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여러 이벤트가 개최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NBA 테크 엑스포였다. 지난해부터 개최된 엑스포는 NBA가 엄선한 업체들이 선수들의 퍼포먼스와 지도자들의 경기 운영, 훈련 진행 등에 필요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자리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할 무렵 홍보팀으로부터 초대 메일을 받고 주저 없이 참관을 신청했다. 엑스포 참가 기업들의 세일즈 대상은 NBA, NCAA, 유로리그, 그리고 그 외 세계 농구리그 관계자들이었다. 행사장을 거닐다 B.리그 관계자도 만났다. 팬데믹 기간 중에는 주로 ‘줌(zoom)’으로만 대화했는데 이렇게 현실(?)에서 마주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그 역시 여러 업체의 팜플렛을 들고선 둘러보고 있었는데 “다음 시즌에는 이대성 선수가 B.리그에 데뷔한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도 취재를 많이 와주시면 고맙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가장 눈에 띈 건 무인 시스템의 발전이었다. 데이비드 스턴 전 총재가 작고하기 전까지 투자를 가장 많이 했던 분야 중 하나가 바로 AI였다. 각 구단 훈련장에 설치된 무인 카메라가 팀 훈련을 촬영하여 감독 및 스태프의 휴대폰으로 전송해주는 시스템이었다. 2016년 4월, 나는 한인 최초의 NBA 단장이었던 밀튼 리(전 브루클린 네츠 G리그팀 단장)로부터 이 기술에 대해 소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만큼 더 많이 상용화되어가는 듯 했다. NBA 공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전미 코치협회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리셉션을 비롯한 자체 행사를 가졌다.

대회 5일차에는 서머리그 현장에서 라스베이거스 아마추어 농구 발전을 위해 힘쓴 초, 중, 고 지도자들을 초청해 시상 행사를 열기도 했다. 코치들에게 기념패를 전달할 때마다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이렇게 팬, 비즈니스맨들을 위해 바쁜 5일을 보낸 NBA는 다음 3일을 유소년을 위해 사용했다.

NBA가 투자 중인 주니어 NBA의 쇼케이스가 열리는 동시에, 다른 체육관에서는 ‘국경없는 농구’ 글로벌 캠프가 진행됐다. 이번 캠프는 사상 최초로 여자 유망주들만을 위해 개최된 것이라 의미가 깊었다.

과거에는 남자 캠프가 먼저 열리고 여자 캠프가 ‘부록’처럼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여자 유망주들만으로도 충분히 알찬 캠프를 꾸릴 수 있을 정도로 내실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총 24개국에서 38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이 선수들은 FIBA와 WNBA 전현직 선수, 지도자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2명, 중국 1명, 싱가포르 1명이 참가했다. 한국이 단 1명도 초대받지 못한 부분은 많이 유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NBA 콘과 BWB 캠프를 모두 취재하고 오는 것이 목표였으나 한국에서의 일정으로 인해 개최 전날 귀국길에 올라야 했던 것도 아쉬웠다. 이쯤되면 왜 라스베이거스가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스피어’의 외관을 농구공으로 설정해두었는지 알 것이다. 30개 구단 선수와 스태프, 구단 관계자 뿐 아니라 24개국에서 오는 농구 유망주들, 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지도자들 등 수천 명의 농구인과 비즈니스맨들이 이 도시를 찾는다.

서머리그를 매 경기 매진시킨 관람객들은 또 어떤가. UNLV의 토마스 & 맥 센터의 수용인원이 1만7923명이고 바로 옆에 이어진 콕스 파빌리온 체육관 수용인원이 2500명인데 매일 체육관이 꽉 찼다. 이들이 쓰고 가는 돈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사람을 모으고 돈을 발생시키는 능력만큼은 입증한 NBA였다.

유로리그 파이널 포(Final Four)는 이런 NBA의 마케팅을 훌륭히 벤치마킹한 행사 중 하나다. KBL은 컵 대회, WKBL은 박신자컵을 매년 오프시즌에 개최하고 있는데, 대회만 급하게 끝낼 게 아니라 개최 지역에서 농구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끔 하고, 농구인 및 농구 산업 종사자들이 더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절박함이라는 세 글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한 선수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농구경기를 참 많이 본다고 생각하는 나인데도 이 선수는 처음 봤다. 미카엘 얀투넨이라는 핀란드 선수였는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서머리그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단다.

이 선수가 내게 인사한 장소는 한 에이전시가 주최한 워크아웃 현장이었다. 작은 지역주민 센터 체육관에서 개최됐다. 토마스 & 맥 센터가 NBA 입성 직전 단계에 있는 예비 스타들의 경연장이었다면, 라스베이거스 곳곳에 위치한 체육관에서는 NBA뿐아니라 세계 모든 리그의 관계자들에게 자기를 어필하기 위한 수많은 워크아웃이 열렸다. 새벽 5시, 오전 9시, 낮 2시 등 시도 때도 없이 열렸다. 얀투넨이란 무명 선수부터 존 월 같이 한때 최상의 지위를 누렸던 슈퍼스타들까지 대상은 다양했다. KBL 구단 중에서는 원하는 선수를 따로 섭외해 체육관에서 테스트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수들의 네임밸류도, 이들이 어필하고자 하는 리그의 수준도 모두 달랐지만 선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절박함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이들에게 있어 ‘기회의 땅’이었다. 하나라도 더 보이고 좋은 인상을 심어야 나중에라도 나를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생전 처음 보는 내게 인사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경건해졌다.

아마도 프로를 꿈꾼다면 적어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각자의 팀에서 최소 2, 3옵션은 되었을 것이고 해당 지역에서는 촉망받는 유망주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NCAA 디비전 I 대학으로부터 장학금도 제안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BA 드래프트에는 뽑히지 못한 선수들이 수백 명이다. 내가 만난 그 선수도 아마 수백 명 중 하나였을 것이고. 코트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쏟았다. 공을 향해 다이빙을 하고, 토킹을 하고, 최대한 자세를 낮춰 열심히 수비도 했다.

흔히들 워크아웃이라 하면 너 한번, 나 한번 던져보는 쇼케이스를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런 워크아웃은 ‘바이어’에게 자신을 세일즈하는 자리이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기능을 어필하는데 주력한다. 나를 현장에 초대한 한 관계자는 “아침에는 코치들의 워크아웃도 있었는데, 역시나 직장을 구하기 위한 자리였기에 코치들도 굉장히 치열하게 가르치더라”라고 귀띔했다.

이 자리에는 듀크 대학 여자농구팀 전력분석을 하고 있는 김태경 코치도 함께 했다. 그 역시 첫 직장(곤자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일은 거절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그들의 행선지는 미국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페인? 브라질? 그것도 아니라면 한국이 될 수도 있다. 실제 현장에는 국내 구단 코치도 있었으니까. 언제 어디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앞에서 뛰었던 워크아웃 참가자들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절박한 눈빛을 보며 스스로 안주하며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하게 됐으니까.

LA 레이커스 취재와 라스베이거스 취재가 다른 점은 정말로 수많은 종사자들을 계속해서 마주친다는 점이다. 이런 곳에 올 때면 한가지 약속을 하고 오는데, 바로 하루에 최소 1명 이상은 알고 가자는 것이다. 서로 궁금한 것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자는 것인데, 사실 말만큼 쉽지는 않다. 명함만 주고 받고 끝날 때도 있고 때로는 “지금은 내가 해야 할 게 있으니 나중에 이메일로 명함을 보내줄게”라고만 말하고 돌아서는 이들도 있으니까. 한국에서야 오래 활동한 덕분에 원하는 농구인들과 접촉하는 것은 수월하지만 이곳에서는 ‘완벽한 이방인’ 신세나 다름없다. 그저 가만있으면 일주일 동안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 큰 돈 들여온 출장인 만큼 나 역시 절박하게 움직이자는 생각이었는데, 선수들이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들인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꺼내는 서머리그 이야기
NBA 2K24 서머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렸다. 단순히 웸반야마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체류하는 동안은 토마스 & 맥 센터에 티켓이 없었다. 45달러(약 6만 원) 짜리 티켓이 암표상에 의해 150달러(20만 원)에 오고갔다. 마이애미 히트 객원코치로 참여한 밥 피어스 코치도 “자이언 윌리엄슨 때보다 더 뜨거운 것 같다. 매일매일 복잡하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미국 현지에서도 NBA에 대한 인기가 더 올라갔음을 알 수 있는데, 실제 지표에서도 시청자수, 티켓 판매 등이 역사에 남을 정도로 기록적으로 나타났다. ‘서머리그 취재’에 한정한다면 이번 취재의 핵심은 빅터 웸반야마와 이현중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자마자 바로 토마스 & 맥 센터로 향했다. 여독도 풀리지 않아 비몽사몽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50분 뒤에 바로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서머리그 첫 경기를 치르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프레스 카드를 받고 취재석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 <뉴욕타임즈> 같은 전국지가 아닌 해외 기자들은 취재석을 배정받지 못한다. 그냥 빈자리가 나면 그 자리가 내 자리다. 그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인지 일찌감치 체육관에 와서 자리를 맡은 모양이다.

“웸비!!!” 코트에 웸반야마가 등장하자 샌안토니오의 실버 & 블랙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 팬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농구기자 생활을 하면서 하승진, 야오밍,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처럼 220cm가 넘는 장신들을 많이 봐왔지만 웸반야마는 또 다른 인류처럼 보였다. 그 키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 아닐까. 실제로 내가 그동안 취재해온 해외 스카우트, 코치들은 “웸반야마 뛰는 걸 처음 보면 그날 밤에 잠이 안 온다”라고 입을 모았다. 말 그대로 지도자들의 이상형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첫 경기는 실망스러웠다. 프랑스에서 긴 시즌을 치르며 누적된 피로 탓인지, 긴장감 탓인지는 모르겠다. 듣기로는 샌안토니오 구단에서 가진 훈련도 단 1번 뿐이라 부담도 됐던 것 같다. 몸싸움에서 번번이 밀리면서 포스트 공략에 실패했고, 슛도 가까스로 림에 닿는 등 불안감 투성이었다. 오히려 상대팀 샬럿 호네츠의 카이 존스에 인유어페이스를 허용하며 하이라이트를 뺏겼다. 당연히 팬, 미디어, 관계자 할 것 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농구’라는 단어를 꺼내면 다들 “웸반야마 봤어?”로 이어졌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FIBA에서 개최하는 U18, U19 대회를 유심히 본 분들은 알겠지만, 18~20세 사이 선수들의 성장세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근면성실하지 않은 선수라면 모를까. 웸반야마의 훈련 태도는 늘 호평을 받아왔기에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될 무렵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는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한국선수가 서머리그에서 뛰어요!
살면서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제일 먼저 미국 공항 입국 심사대라고 말할 것이다. 3번 중 1번은 곱게 통과되지 못했다. 제일 어이없었던 순간은 캐나다 토론토 입국 때였는데 “NBA 올스타게임을 보러왔다”고 했을 때 심사 요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기실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때 시큐리티가 다시 한 번 물었고 나는 같은 답을 하자 신문을 하나 보여줬다. 올스타게임 티켓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러면서 “너는 그럴 돈이 없어 보이는데?”라고 물었다. 굉장히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여기서 대들면 공항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아서 NBA에서 보내온 허가증을 꺼내 보여준 뒤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잡혔을 때였다. 환승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2시간 여였는데 1시간을 잡혀있었다. 그때 나는 나이키 초청으로 포틀랜드 본사에서 르브론 제임스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너무 들뜬(?) 나머지 “르브론 제임스를 만날거다”라고 했는데 허언증 환자로 봤나보다. 역시나 보안실로 갔다가 시큐리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랴부랴 환승을 위해 뛰어갈 수 있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면 어쩌지? 불안감에 떨던 순간의 기분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런 경험이 있다보니 여전히 심사대 앞에 서면 긴장부터 된다. “NBA 서머리그 보러왔습니다. 이번에 한국인 선수가 최초로 뛰어요!” 심사 요원도 관심이 생긴 듯 “오 그래? 어느 팀인데?”라고 묻는다. 가벼운 대화 끝에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그렇다. 이현중을 보는 것은 라스베이거스에 온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다.

필라델피아 76ERS는 아쉽게도 메인 무대인 토마스 & 맥 센터보다는 콕스 파빌리온에서 경기를 더 많이 치렀다. 2500명 수용이 가능한 이 체육관은 관중석과 코트가 너무나도 가까워굉장히 어수선하다. 드나드는 사람도 워낙 많다. 반면 선수를 정말 가까이서 찍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토마스 & 맥 센터에서 뛰는 선수들은 큰 통로를 통해 드나들지만, 콕스 파빌리온에서 뛰는 선수들은 거대한 화물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동한다. 선수들 동선을 파악한 뒤 엘레베이터 앞에 서 있었는데, 엘레베이터 문이 올라가자 필라델피아 76ERS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이현중이 등장했다. 눈빛이 마주치고 반갑게 인사하는 순간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반가움도 잠시. 필라델피아는 내가 체류하는 동안 단 1분도 이현중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매 경기가 접전이었기에 출전시키기 애매했던 것인지, 아니면 일찌감치 호주리그(NBL) 일라와라 호크스 계약 소식이 발표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야속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뛰는 걸 못 보여드려 죄송하다”는 이현중의 말에 괜한 부담을 준 것 같아 더 미안해졌다.

이현중이 묵는 호텔은 NBA 서머리그 선수들 대부분이 묵고 있던 포 시즌스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오며가며 보는 키 크고 몸 좋은 선수들은 죄다 NBA 선수나 감독이라 보면 된다. 이현중과 짬을 내 인터뷰를 하던 날, 우리 건너편에는 닉 널스 감독이 지인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한마디하고 싶었다. “이럴 거면 왜 데려왔어! 당신 너무 한 거 아니야?” 물론, 마음속으로만 했다.

귀국 후인 7월 17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현중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전에서 10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승리(117-114)를 도왔다. 다행히 현장에는 그가 믿고 의지하는 김효범 코치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을 것 같다. 김효범 코치도 “모처럼 신나게 응원해봤다”라며 뿌듯해했다.

이현중의 다음 행선지는 호주다. 서머리그 현장에는 NBL 소셜미디어 담당자를 비롯해 호주 기자들도 많이 와있었는데, 자신을 NBL 전직 농구선수라고 소개한 한 기자는 “솔직히 말해 정말 기대된다. 호주에서도 잘 할 거 같다. 슛이 정말 좋은 선수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귀국한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라스베이거스는 ‘농구 ING’다. 프로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이곳에서는 고교농구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올해는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카를로스 부저 등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자녀들이 출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교농구가 끝나면 미국대표팀이 이 도시에서 소집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찾은 선수들이 쓰던 이 체육관은 곧 ‘꿈을 이룬’ 슈퍼스타들이 사용하게 된다. 농구도시 라스베이거스의 한 달은 그렇게 바쁘게, 매일 매일 점프볼하며 신나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진_손대범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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