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딸이 인생항로를 바꿀 때 들려주고픈 이야기
선택의 씨줄·날줄로 엮인 인생…우연 같은 수많은 인연 작용
최선 뒤 삶이 들이미는 선택지로…은퇴 뒤엔 선택 더 쉬워져
“아빠, 나 회사 그만두고 파리에 가서 살고 싶어요.”
미국에 사는 큰딸이 지난해 잠깐 귀국해 인생 계획을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20년 동안 열정적으로 살던 곳을 떠나겠다는 계획이 보통 일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거대 테크기업에서 세계적인 가수를 발굴하고 후원·홍보하는 일을 맡고 있는 딸은 이 분야에서 ‘구루’라는 평판까지 듣고 있었습니다. 우린 여러달에 걸쳐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왜 뉴욕을 떠나고 싶은 거니?” “우선 뉴욕은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요. 신나기도 했는데 이젠 좀 지쳐요.” 딸도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파리냐?” “뉴욕에서는 저녁에 사람들을 만나도 어느 회사에 다니고 어떤 비즈니스를 하는가 외엔 관심이 없어요. 이젠 사람을 만날 때 삶에 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데서 살고 싶어요.” 그동안 회사 일로 파리에 출장을 많이 갔는데 거긴 달랐다고 합니다.
“그 좋은 회사를 꼭 그만둬야 하는 거니?” 딸은 더는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경력을 파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날 닮은 딸의 결심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딸이 익숙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고 또 한번 커다란 삶의 전환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저는 아빠로서, 또 인생 선배로서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원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떠나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창업자, 고객을 찾아야 하는 자영업자로 사는 게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상당 기간 수입도 대폭 줄어들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딸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남의 이목을 생각하거나,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게 참 대견했습니다.
제 젊은 시절도 생각났습니다. 대학 졸업 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겨우 한해 버틸 만큼의 유학 비용만 마련해서 외국으로 갔던 일, 15년간의 외국 대학교수 생활을 접고 한국 대기업으로 옮긴 일 모두 사실 큰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습니다. 딸의 모습에서 어려웠던 제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마음이 짠했고, 한편으론 나를 닮은 딸이 내 인생길을 따라오는 듯해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50대 초반에 저도 딸처럼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회사에서 승진할 가능성이 더는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꾸준히 신뢰해주는 상사 덕분에 버티고 있었지만, 몇몇 경영자들은 저를 매우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자식 셋의 유학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저는 내 집 마련도 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외부에서 몇가지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한곳은 국내 대기업이었는데 승진을 포함한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솔깃했습니다. 또 한곳은 맹렬히 성장하던 다국적 기업이었는데 아시아 지역 대표 자리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상사에게 털어놓고 상의하기도 했고, 저는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해 치열하고 치밀하게 고민했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느끼는 부족함과 새로운 자리가 줄 보상에 대한 기대를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세심하게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 제안 모두 단기적으로는 분명히 현재보다 더 나은 보상을 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 만만치 않은 위험요소들이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지요. 결국 저는 그냥 이 회사에서 끝까지 해보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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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상황에서 삶이 들이미는
인생은 고비 때마다 내리는 선택의 날줄과 씨줄로 엮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항로와 결과가 크게 뒤바뀌겠지요. 그런데 나의 선택이 오로지 내 의지와 결단만으로 가능했던 것일까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 꿈과 관심이 중요하긴 하지만, 선택의 과정에선 우연 같아 보이는 수많은 인연이 작용합니다.
제가 교수로 있던 미국 대학을 떠나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건 엄청나게 큰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 대학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어 그곳을 떠나는 게 더 나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귀국해서 대학이 아닌 기업을 선택한 건,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에 세계 수준의 한국 기업을 일궈보자는 나의 ‘꿈’까지 작용한 것이지요. 나를 원했던 회사의 ‘러브콜’까지 서로 인연이 닿아 맺어진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에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강제된 선택’(forced choice)으로도 결정이 되니까요. 돌이켜보면 내 선택의 대부분은 삶이 그걸 내게 들이밀어서 받아들이게 된 경우였습니다.그리고 운이 좋게도 결과가 좋았습니다.
은퇴 뒤에도 저는 역시 선택을 합니다. 젊었을 때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노년의 선택은 더는 일·직장·경력과 관련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점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래서 은퇴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엔 ‘정리하기’를 선택했습니다. 한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짐 정리를 한 것이지요. 더는 입을 일 없는 양복과 와이셔츠, 넥타이, 가방, 집안 여기저기 쌓인 책과 골프채, 정리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며칠에 걸쳐 분류한 물건들은 나눔과 순환을 사업으로 하는 단체의 후배들이 실어갔습니다. 비우고 나니 어찌나 후련하던지요.
은퇴 뒤 노년의 삶은 가벼워지면 좋은 것 같습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요. 마음이 가벼워지려면 욕심이 줄어야겠지요. 돈·권력·명예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면 저절로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느리게 조용히 심심하게 지내기 위해서 과거에 하던 활동이나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일상과 전과 다른 에너지가 생깁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고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 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한 뒤 삶의 방향을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로 바꿨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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