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처럼…' 신냉전 타고 존재감 키우는 김정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할론도 커진다. 30여년 만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오는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관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포럼에 시선이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푸틴 대통령이 참석을 사실상 확정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도 방중할지가 관건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현 상황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시대와 닮았다. 중국 내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이끌던 냉전시대엔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권이 시작된 1990년대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2000년대엔 중국과 남한 사이에서 대외거래 균형을 유지했다.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의존전략이 크게 달라졌던 이유는 소련의 몰락과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때문이다. 의존의 균형 체제의 붕괴는 의존국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1990년대 북한 상황이 딱 그랬다.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무역제재에 이어 대기근이 겹치며 경제위기가 심화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대다.
또 국제관계에서 의존국의 불안한 상황은 보통 도발 행위로 이어진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내세우며 본격적인 핵개발에 나섰다. 일본 열도를 가로지른 대포동1호가 발사된게 1998년 8월이다. 개혁개방을 통해 급속도로 미국과 가까워진 중국이 북한을 우군이 아닌 '문제아 막내아들' 정도로 여기게 대하게 된 것도 냉전체제가 붕괴한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다.
남북관계가 전환국면을 맞게된 것도 그 즈음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된다. 국제정세의 대 변화 속에서 북한도 나름 변화무쌍한 행보를 했다는 의미다.
김일성 주석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한 세대가 지나,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김일성 시대 구도로 회귀한 거다.
김정은 체제 북한과 중-러의 출발은 돈독하지 않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을 잡았지만 시 주석과 만남은 6년여가 지난 2018년 3월 방중에서야 이뤄졌다. 푸틴과의 만남은 더 늦은 2019년 4월 방러 과정에서야 성사됐다.
최근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 7월 26~29일 진행된 북한 전승절 행사에는 중국과 러시아 사절단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의전은 최고수준이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상이 참석했는데, 러시아 국방 총책임자가 북한을 직접 찾은 건 기록을 통한 확인에 국한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국부무가 쇼이구 국방상 방북에 대해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기도 했다.
북한도 균형적 의존에 들어간 모양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전승절 김정은 접견 시점이 러시아는 2일차, 중국은 3일차였다"며 "특히 북한 노동신문에 러시아 관련 기사는 7편 실린 반면 중국 관련 기사는 4편 실리는데 그쳤고, 사진은 러시아 대표단이 84장인데 비해 중국은 30장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관계개선 시그널을 보낸 러시아를 추켜세우며 중국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한걸로 해석된다.
오는 10월로 예고된 일대일로 포럼에 푸틴 대통령은 이미 참석을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7년과 2019년 일대일로 포럼을 개최했고, 올해는 특히 일대일로 제안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대일로는 중국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 또 동남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해상실크로드(일로)를 합친 개념이다. 미국을 상대로 글로벌 패권대결을 벌이기 위한 에너지 공급망과 무역망 확보가 핵심인데, 최근 이 구상이 서쪽 끝인 유럽에서부터 삐걱거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연달아 일대일로 불참을 선언하고 있다.
게다가 한미일은 공조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한미일 정상은 오는 18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캠프데이비드 내 대통령 별장에서 모인다. 북핵프로그램과 중국 국경분쟁 등 북중러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을 다룬다. 덧붙여 이들이 매년 최소 1회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10일(미국시간)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중국의 속내가 심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시 주석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한 전략이 무엇보다 시급해졌다. 복귀한 왕이 외교부장을 앞세워 동남아에서부터 우호관계 다지기에 들어갔다.
김정은 위원장의 일대일로 포럼 참석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가 푸틴이 초청받은 사실을 공식화한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김정은 위원장도 방중해 시 주석을 만난다면 정치적 의미가 크다. 푸틴 대통령까지 3자회동으로 이어진다면 일대 사건이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항주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별도로 방중할거라는 전망도 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6.25 남침 직전 모스크바를 찾아 스탈린을 만났었다. 마오쩌둥 주석과도 전쟁을 전후해 모스크바 회의와 방중을 통해 수차례 만났다. 하지만 3국 정상이 공식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기록은 스탈린 이후 흐루쇼프 집권 시기에도 없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한 자리에 모인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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