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연속 흑자” SK엔무브, ‘윤활유 효자’에서 ‘에너지 효율’ 기업으로 변신 중 [그 회사 어때?]

2023. 8. 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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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엔무브 울산공장 르포
정유업계 부진 속 ‘캐시카우 역할’ 톡톡
글로벌 기유·윤활유 시장 선도 공고히
‘에너지 효율화 사업’ 도약 역량 결집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기유 공장. [김은희 기자]

[헤럴드경제(울산)=김은희 기자] ‘어려울 때 효자가 진짜 효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좋을 때보다는 힘들 때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겠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업이 잘 나가는 호황기에는 알짜배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알짜는 사업이 흔들릴 때야 비로소 빛을 발하죠. 올해 들어 주춤하는 SK이노베이션의 기유·윤활유 사업 자회사 SK엔무브처럼 말입니다.

SK엔무브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름’에서 기유와 윤활유를 만들어 파는 회사입니다. 휘발유·경유·등유 그리고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가 원유 정제로 얻는 주제품이라면, 남은 재료를 활용해 부제품을 만드는 거죠.

아직 ‘SK루브리컨츠’라는 옛 이름으로 익숙한 분도 있을 겁니다. SK엔무브는 기유·윤활유 사업을 넘어 에너지 효율 개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지난해 12월 사명을 바꿨습니다. ‘에너지 효율 그 너머로 무브’하겠다는 게 SK엔무브의 새로운 비전입니다.

SK엔무브 CI

휘발유, 경유, 등유는 알겠는데 기유, 윤활유가 무엇이냐고요.

일단 윤활유는 자동차 엔진오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계의 마찰면에 생기는 마찰력이나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름이죠. 차량정비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지크(ZIC)가 바로 SK엔무브가 만드는 대표 윤활유입니다.

기유는 윤활유의 기본이 되는 유분을 말합니다. 보습크림이나 양초, 자외선 차단제 등의 원료로도 쓰이지만 주로 첨가제를 섞어 윤활유를 만드는 만큼 윤활기유라고도 하죠. SK엔무브는 미국석유협회(API) 분류기준상 고급 기유에 해당하는 그룹Ⅲ 기유인 유베이스(YUBASE)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본관에 전시돼 있는 모형 기유(왼쪽)과 윤활유의 모습. [김은희 기자]

지난해 고유가 여파로 유례없는 호황을 겪었던 정유업계가 올해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SK엔무브는 SK이노베이션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전사 실적이 적자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SK엔무브는 무려 2599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죠. 석유·화학·석유개발·소재 등 전 사업 부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영업이익입니다.

2009년 10월 윤활유 사업 분사 이후 현재까지 14년째 연간 영업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SK엔무브가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진짜 효자’ SK엔무브 울산공장에 지난 8일 다녀왔습니다.

이날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여의도 세 배에 달하는 넓은 공장 부지에는 거대한 탱크와 파이프, 굴뚝만이 가득했습니다. 앞바다에 있는 8개 자체 부두로 유조선이 들어오면 원유가 파이프라인을 따라 이곳저곳 오가며 석유제품, 화학제품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거죠.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본관 옥상에서 바라본 울산CLX 전경. 왼쪽 앞편으로 SK엔무브의 기유 공장 있다. [김은희 기자]

SK엔무브 공장은 언뜻 봐도 석유·화학 부문 다른 공장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입구 근처에 오밀조밀 모여 있었죠. 울산CLX에 근무하는 구성원이 3100명이 조금 넘는데 SK엔무브 공장 근무자가 12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만 봐도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기유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파이프라인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모습은 여느 석유·화학 공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보수를 진행 중인 유닛 인근을 제외하고는 근무자를 찾아보기 어려웠죠.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있기 때문에 조정실에 가봐야 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현장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조정실에 들어서니 공장 곳곳의 모습은 물론 공정 작업 현황, 현장 환경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스크린 수십 개가 공장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엔지니어가 이곳에서 원격으로 공정 전반을 제어하고 있었죠.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기유공장 조정실에서 엔지니어들이 공정 작업 현황을 살피고 있다. [김은희 기자]

‘보드맨’이라고 불리는 조정실 엔지니어는 항공기 기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동 운전 공정을 살피며 적시에 필요한 조작을 하죠. 파이프 내 물질이 새어나가는 리크 현상과 같이 현장 근무자와 소통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버튼 조작만으로 관리가 가능하다고 현장 관계자는 귀띔했습니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4만5000배럴 규모의 기유가 만들어집니다. 공장이 24시간 끊임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그때그때 들어가는 원료, 즉 미전환 잔사유의 성상에 따라 운전조건을 알맞게 설정해야 일정한 품질의 기유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점도, 황 함량, 포화물 함량 등 핵심 조건 8가지를 중심으로 생산 기유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유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수출됩니다. SK엔무브는 그룹Ⅲ 기유 시장에서 40%의 높은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죠. 특수유였던 그룹Ⅲ 기유가 상용화되는 흐름이 일자 품질을 더 개선한 그룹Ⅲ+(플러스) 제품도 개발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윤활유 공장의 모습. [김은희 기자]

윤활유 공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음료수 만드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는 생산팀장의 표현대로 흔히 볼 수 있는 제조공장 같았습니다.

윤활유 생산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기유 공장에서 넘어온 기유와 첨가제를 배합조에 넣어 수분간 섞은 뒤 용기에 담아내면 끝입니다. 원재료를 배합조에 투입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충분히 섞기만 하면 완성되는 거죠. 물론 윤활유 제품 종류가 700여가지에 달하고 1리터부터 탱크까지 충전 용기 용량까지 다양해 마냥 간단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그날그날 다르지만 공장에선 하루 평균 21개 종류의 윤활유를 생산하는데 패키지까지 하면 40~50개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다품종 생산의 ‘끝판왕’입니다.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윤활유 공장에 있는 배합조의 모습. [김은희 기자]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윤활유 공장에서 최원근 윤활유생산팀장이 매트릭스 매니폴드를 설명하고 있다. [김은희 기자]

공장에는 소형·중형·대형 등 총 12개 배합조가 있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윤활유가 16개 충전라인을 거쳐 출하됩니다. 각각의 파이프라인을 잇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윤활유 공장의 핵심설비 매트릭스 매니폴드(다기관)입니다.

이를테면 A윤활유는 1리터 용기 충전라인으로, B윤활유는 4리터 용기 충전라인으로 각각 보내주는 중앙제어시스템 역할을 하는 거죠. 서너 개 충전라인으로 동시에 보내는 것도 물론 가능합니다. 매니폴드가 윤활유 흐름을 통제하다 보니 인적오류는 확실히 줄었다고 해요.

이날 공장은 쉼없이 움직였습니다. 한켠에 놓인 작업현황판에는 제품별 배합량과 배합시간, 샘플채취, 시험 결과 등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충전구역에선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용기에 윤활유가 오차 없이 담겼고 말끔하게 포장돼 나왔습니다. 완성된 제품은 매일 출고돼 전국 각지로 향합니다. 주문량에 따라 2주 단위로 생산계획을 세우고 때맞춰 부자재를 공급받는 ‘인 타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요.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SK엔무브 윤활유 공장에 완제품이 적재돼 있다.[김은희 기자]

SK엔무브 울산공장을 책임지는 안장원 공장장은 무엇보다 품질관리에 애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유와 윤활유는 만들어 저장되는 순간 바로 고객에게 판매되는 완제품이다 보니 품질에 더 신경써야 해요. 공정에 대한 데이터 모니터링은 물론 품질 시험도 꼼꼼하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안전과 환경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특히 세대교체로 저연차 사원이 많고 또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이들에게 안전 우선 문화를 어떻게 교육하고 또 체화시킬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안 공장장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SK엔무브는 지난달 ‘폐기물 매립 제로’(ZWTL)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ZWTL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다시 자원으로 활용하는 비율에 따라 부여하는 친환경 인증인데요. SK엔무브는 95% 이상의 높은 재활용률로 골드 등급을 받았습니다.

지난 8일 찾은 울산 남구 고사동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에서 만난 안장원 SK엔무브 울산공장장은 “우리 구성원들은 기유·윤활유 사업을 통해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는 데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

SK엔무브가 오랜 기간 좋은 실적을 기록해온 것은 기술 경쟁력에 기인한다고 업계는 분석합니다.

SK엔무브는 지난 1968년 국내 최초로 윤활유 사업을 시작한 이후 유베이스를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세계 최초로 상업 대량 생산에도 성공했습니다. 유베이스의 원료가 되는 미전환유가 과거 계륵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히 흙에서 진주를 캔 겁니다.

기유·윤활유 사업의 하반기 전망은 밝습니다. 윤활유는 워낙 수요가 꾸준한 편인데 최근 터보·하이브리드 엔진을 단 차량이 늘면서 고품질 윤활유에 대한 니즈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공급은 타이트한 상황이죠.

전기차용 윤활유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 역시 그룹Ⅲ 기유로 생산됩니다. SK엔무브도 2010년부터 전기차용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3월 SK엔무브(당시 SK루브리컨츠) 울산공장을 직접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구성원을 격려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엔무브 구성원들이 올해 4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모여 새 슬로건 ‘에너지 효율 그 너머로 무브(We Save Energy and Move Forward)’를 소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엔무브는 기유·윤활유 사업 너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 효율 측면에서 고급 기유를 열관리 유체로 사용하는 열관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죠. 현재 가시화하고 있는 사업은 데이터센터 액침냉각입니다. 전력소비를 줄여 전기 효율을 높이는 역할까지 하겠다는 거죠.

SK엔무브의 비전이 시장에서 통한 걸까요. 올해 4월 진행한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보다 7.6배 많은 자금이 몰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SK엔무브는 당초 계획보다 1000억원 많은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습니다.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SK이노베이션 제공]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집니다.
SK엔무브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을 발 빠르게 선점해 경쟁력을 만들어 왔습니다.
신사업에 필요한 역량을 꾸준히 학습해 윤활유 업계 선도자 위치를 공고히 유지하며 에너지 효율화 기업으로 성장합시다.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지난 4월 임직원 담소 행사에서

SK엔무브는 ‘에너지 효율화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라고 말합니다. 안정적인 기유·윤활유 사업을 기반으로 미래에도 성장 가능한 전기차, 열관리, 폐윤활유 업사이클링 등 신사업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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