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날짜 잡았는데 프러포즈 왜 하나요? 놀랄 일도 아니고”[시차적응]

박효목 기자 2023. 8. 12.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핀란드 여성 닌니 누오르티의 결혼 사진
최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 1면에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제목은 ‘결혼식 전 비싼 장애물: 4500달러(약 590만 원)짜리 청혼’입니다. 하루 숙박비가 100만 원이 넘는 고급 호텔에서 명품 가방과 비싼 반지를 선물하며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고 기사는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5성급 호텔들이 앞다퉈 고가의 ‘프러포즈 패키지’를 내놓고, 서울 한 호텔은 하룻밤에 157만 원인 방이 월 평균 38회 예약된다고 소개했죠.

최고급 프러포즈부터 여전히 건재한 혼수 문화, 치솟을 대로 치솟아버린 집값까지… 사랑으로만 결혼하기엔 장애물이 많아 보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이런 결혼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걸까.

기자는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미국, 핀란드, 러시아, 태국 여성들과 결혼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해 결혼식을 호화롭게 치르는 커플은 어느 나라나 있더군요.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았습니다. 값비싼 프러포즈나 혼수 문화가 특히 달랐습니다.

상견례·혼수 문화 거의 없어…결혼 당일에야 양가 부모 만나기도

▽기자
한국에는 비싼 호텔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선 어떤 결혼식을 선호하나요?

▽사라(미국)
미국에도 그런 결혼식 문화가 존재해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결혼식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은 크고 다양한 나라여서 그런지 결혼식 문화가 개인이나 양가의 재정 상태, 가족 문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제각각이죠. 어떤 커플은 굉장히 화려한 결혼식을 원하는 반면 어떤 커플은 가까운 친구와 가족만 초대해 소박하게 합니다.

▽닌니(핀란드)
누구나 멋지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꿈꿉니다. 저는 핀란드 출신이지만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인도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어요. 스코틀랜드와 핀란드 모두 화려한 결혼식이 일반적인 문화입니다. 남편의 고국인 인도에서는 결혼식 행사가 며칠 동안 이어지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성대한 결혼식을 할 여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적은 예산으로 소박한 결혼식을 했어요.

▽엘리나(러시아)
러시아에서도 많은 하객이 오는 결혼식이 좋은 결혼식의 기준이에요. 종종 이틀 동안 결혼식을 열기도 하죠.

▽찬타나(태국)
태국인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화려한 결혼식보단 친구와 가족이 모여 부부를 축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지참금’ 문화가 있다는 게 문제죠. 저는 ‘카렌’이라는 부족 출신이라 지참금이 없는데 어떤 부모는 지참금을 많이 요구하기도 해요.


▽기자
한국에선 결혼 전에 양가 부모가 만나 상견례를 합니다. 때로는 부모가 결혼 준비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혼수 문제로 커플 간 다툼이 생기기도 하죠. 결혼 준비 과정은 어떤가요?

▽찬타나(태국)
태국에선 상견례 같은 건 없고 결혼식 당일에야 배우자의 부모님을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결혼 후 어디서 어떻게 살지는 본인들이 알아서 정하죠. 대부분의 부모는 간섭하지 않아요.

▽사라(미국)
북미 문화에는 부모가 결혼 과정에 관여하는 관습이 없어요. 남성 파트너가 여성의 아버지를 만나 청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오래된 전통이 있지만 이미 결혼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형식적인 제스처에 불과하죠. 보통 신부의 가족이 결혼식 비용을 지불하고, 신랑의 가족은 결혼식 전날 외지에서 온 하객에게 저녁식사 비용 등을 부담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 역시 많이 변화하고 있어요. 이젠 대부분의 남녀가 결혼식 비용을 균등하게 부담해요.

“결혼 날짜까지 잡은 뒤에 하는 프러포즈 이해 안 돼”

▽기자
한국에선 이미 결혼 날짜를 정해놓고 프러포즈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마치 꼭 해야하는 밀린 숙제처럼. 호텔에서 비싼 반지와 명품 가방을 주며 프러포즈를 하는 것도 유행이죠.

▽닌니(핀란드)
프러포즈는 신부를 위한 깜짝 선물 아닌가요? 보통 놀러갔을 때나 일상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외식할 때 프러포즈를 받는 것 같아요. 제 남편은 크리스마스에 교외로 놀러 갔을 때 프러포즈를 했어요. 점심 식사 후 아름다운 수도원 앞에서 산책을 했을 때 저한테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죠.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신부들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고 싶어 하죠. 하지만 저는 다이아몬드 채굴 산업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이아 반지를 좋아하지 않아요. 제 반지를 볼 때마다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누군가가 흘렸을 피, 땀, 눈물을 상상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주 예전부터 남편될 사람한테 심플한 금반지를 원한다고 말했었죠.

▽찬타나(태국)
결혼 날짜가 이미 정해진 후에 프로포즈를 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필요한 것 같아요. 결혼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절차가 있다면 결혼할지 말지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고가의 프러포즈 패키지도 남성들에게 많은 부담을 줄 거예요.

▽엘리나(러시아)
결혼 날짜가 정해진 후에 프러포즈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놀랄 일도 아니고.

비싼 집값, 양육 부담은 어느 나라나 결혼에 장애물

▽기자
한국에선 고부갈등이 두려워 결혼을 꺼려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요즘엔 장서 갈등도 많죠.

▽사라(미국)
부부가 남편이나 부인의 가족을 만나는 빈도는 가족의 친밀도에 따라 다 달라요. 여성이 시댁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아요.

▽찬타나(태국)
여성에게 시댁은 어려운 존재일 수는 있지만 한국 드라마에서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휴가를 받으면 절반은 부인의 부모님을, 절반은 남편 부모님을 찾아뵙는 정도예요.

▽기자
한국에선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비싼 집값이에요. 그쪽은 어떤가요?

▽찬타나(태국)
태국에서도 요즘 갈수록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생활비는 높은데 임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에요. 내 자신도 돌보기 힘들기 때문에 아이를 갖기 원하지 않죠. 또 지금처럼 불안정한 시대에 자녀가 태어나기 원하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정신없는 세상인 것 같아요.

▽사라(미국)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높은 생활비,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 역시 결혼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죠.

▽엘리나(러시아)
러시아에서도 집을 매매하거나 임대할 때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죠. 자녀를 키울 때도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 우리를 힘들게 해요.

▽닌니(핀란드)
결혼을 하기 위해 반드시 많은 재산과 좋은 직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경제적 이유를 비롯해 여러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경우도 있어요.

▽기자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하나요?

▽사라(미국)
많은 부부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직장을 계속 다니며 사설 어린이집이나 가정보육기관을 이용해요. 운 좋게 가족 중 누군가가 육아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흔한 일은 아니죠. 높은 육아 비용을 부담하는 것보다 한 명이 전업주부가 돼 아이를 양육하는 게 더 경제적인 경우 외벌이를 택하는 가정도 많아요.

▽닌니(핀란드)
운이 좋아 양가 부모님이 가까이 살고 건강하다면 양육을 도와주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부모가 도와주는 사치를 누리기 어렵죠. 보통 1년간의 육아휴직을 활용하고 이후에는 부모 중 한 명(주로 엄마)이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전업주부가 돼요. 특히 자녀가 둘 이상이면 보육원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부모 중 한 명이 도맡아 키우는 게 낫죠.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저소득층의 보육비를 상당 부분 지원하지만 (지금 거주하고 있는) 영국의 보육원은 매우 비싸거든요.

▽찬타나(태국)
태국 역시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멀리 떨어져 살거나 보육원에 맡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보통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죠.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