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미 입양 한인 인류학자 “내 뿌리에 대한 물음, 인류학자 꿈으로 이어졌어요”

이종현 기자 2023. 8. 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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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 인터뷰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진 아이…인류의 뿌리 찾아 고인류학 연구
고인류학 관심 없는 한국“…“자신의 뿌리에 관심 가져야”

지난 2021년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인류종이 학계에 보고됐다. 국제학술지 ‘진화인류학(Evolutinary Anthropology)’에 보고된 이 논문은 1976년 에티오피아의 계곡 보도다르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적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진은 이 두개골의 주인에게 ‘호모 보도엔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진은 호모 보도엔시스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으로 보고 있다. 이 발견으로 50만년 전의 혼란한 인류 화석에 대한 새로운 분류가 가능해졌다고 고인류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인류의 먼 조상을 찾아낸 이 논문을 쓴 저자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성도 있었다. 바로 배씨였다.

50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 곧 인류와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를 누비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을 찾고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이종현 기자

크리스토퍼 배(52)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는 고인류학 분야에서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2021년 호모 보도엔시스에 대한 연구 이전에 2017년 12월 ‘사이언스’에 현생 인류의 조상이 12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전까지만 현생 인류가 아시아에 넘어온 시점이 6만년 전이라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다. 배 교수의 연구 결과는 그 시점을 두 배나 더 앞당긴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자체를 뒤흔들었다.

배 교수는 지금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과 칭다오 일대의 유적을 탐사했다. 중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하와이로 돌아가기 전, 인천을 잠깐 들른 배 교수를 만나기 위해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덮친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호텔 로비에서 기자를 반긴 배 교수는 조금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호텔 밖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그는 서글서글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배 교수가 한국어가 서툰 건 1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갔기 때문이다.

이 질문부터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뿌리를 찾는 고인류학을 연구하는 건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냐고. 배 교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고인류학에 관심을 가진 게 맞다고. 그는 뿌리라는 단어 대신 ‘origin’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뿌리라는 기자의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토퍼 배 교수가 2021년에 국제학술지 진화인류학에 게재한 '호모 보도엔시스'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호모 보도엔시스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조상이라고 배 교수는 설명했다./이종현 기자

◇내 생애 첫 1년은 ‘blank(빈 칸)’…그 빈자리 찾는 게 나의 과업

배 교수의 한국 이름은 배성곤이다. 친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배 교수를 처음 진찰한 의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3월 14일이라는 생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직 자신이 진짜 태어난 날짜를 모른다. 생일 역시 의사가 정해준 날짜다. 1971년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태어난 그는 그 해 11월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는 “인생의 첫 1년이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데 나한테는 그 시간이 빈 칸(blank)으로 남아 있다”며 “인생의 시작점에 만들어진 그 공백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다는 열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뿌리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인류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이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 백인 가정에 입양됐지만 순탄한 삶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를 양부모의 보살핌 없이 견뎌야 했다. 양부모에게 친아들이 생기면서 그를 사실상 내버려뒀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그 시기를 떠올리며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1970~80년대를 돌이키면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며 “양부모와의 갈등에 더해 집 밖에서는 각종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배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교도 잘 안 하고 공부도 제대로 안 하는 ‘땡땡이 학생’이었다”며 “대학에 가서 인류학을 공부하겠다고 말하면 주변 친구들 중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접 학비를 벌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집을 나온 뒤에는 양부모와는 인연을 끊었다고 전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배 교수는 공부에 대한 열망은 놓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시간에 비해 성적이 곧잘 나오기도 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덕분에 뉴욕주립대 스토브니룩 캠퍼스 인류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대학 시절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생애 첫 한식… 새벽 3시의 맵고도 매웠던 육개장

배 교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국어를 배운 적도 없고, 한국 음식을 접한 적도 없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요리사를 한 적도 있었지만, 1970년대 미국에서 한국 문화를 쉽게 접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만난 한인 유학생들이 배 교수에게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됐다.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 박사과정 시절의 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 /크리스토퍼 배

대학교 2학년 때 배 교수는 친구들과 놀다 처음 한식을 접했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먹은 음식은 육개장이었다. 그는 정확한 발음으로 ‘육개장’을 이야기하며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 육개장을 모르냐고,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바로 차를 타고 육개장을 먹으러 갔다고 말했다. 뉴욕에는 24시간 영업하는 한국음식점이 몇 군데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친구들과 한국 음식을 먹는 건 일상이 됐다. 그는 오징어볶음밥을 처음 먹을 때 너무 매워서 식은 땀을 흘린 기억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교환학생을 한국으로 오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1살 때 한국을 떠나고 20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연세대학교에 교환학생을 온 배 교수는 신촌의 하숙집에서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국 문화를 익혔고, 주말이면 미사리와 파주에서 진행되는 고인류학 연구모임과 답사에 꼬박꼬박 참가하며 한국인 인류학자들과 교류했다. 그는 “나의 뿌리가 확실히 한국에 있다는 느낌을 그때 확실히 받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친부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세대 교환학생 때 입양기관이었던 홀트를 처음 방문했다. 하지만 이름도, 생일도 남기지 않은 친부모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한국 정부가 진행하는 해외 입양인 가족찾기 사업에 자신의 DNA 샘플을 넘기고 혹시 모를 친부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친부모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고 말을 아꼈다.

그렇다고 크리스토퍼 배, 배성곤의 뿌리 찾기가 실패한 건 아니다. 그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뤘다. 배씨라는 성 또한 한국인 아내의 어머니, 그의 장모의 성을 딴 것이다. 그는 고인류학을 선택하고 교수가 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딸을 낳은 모든 선택이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결혼을 하고 나의 가정을 만든 건 나만의 뿌리(origin)을 만든 것”이라며 “뿌리를 찾는 일을 계속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이미 나의 삶에서 나의 뿌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도 뿌리 찾는 일에 관심 가져야… 다음엔 북한 유적 가고 싶다

고인류학 분야에서 보기 드문 한인 학자인 만큼 배 교수에게 한국 과학계에 해줄 조언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과 교류하는 몇몇 한국인 연구자들의 이름을 언급한 뒤, 한국에는 고인류학 분야에 젊은 연구자가 없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한국에서는 구석기 시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제대로 연구를 하는 학자가 10명 정도에 그치는 것 같은데, 취업이 힘들다보니 관심 자체가 적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배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가 지난해 중국의 한 유적지에서 현지 연구팀과 함께 화석을 발굴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배

그는 “구석기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의 뿌리를 찾는다고 말하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인이 언제, 어디에서 왔는지 생물학적인 뿌리와 기원을 찾는 건 여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고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배 교수는 언젠가 북한에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북한의 고인류학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보여줬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연구진이 2021년 7월 ‘4기 과학 저널(Journal of Quartenary Science)’에 게재한 논문이었다. 4기는 신생대 가장 마지막 시기를 말하는데, 이 논문은 황해북도 상원군 용곡동굴에서 찾은 고대 포유류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었다.

배 교수는 “논문의 저자에게 북한에서 연구가 가능할지 별 기대 없이 이메일을 보냈는데 얼마 전에 답을 받아서 놀랐다”며 “실제로 북한에 외국인이 들어가서 유적을 조사하고 화석을 분석하기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직접 가서 연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고인류학의 미개척지’라고 표현했다. 폐쇄적인 상태를 오래 유지했고, 국제 연구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 그만큼 발굴과 연구를 할 곳이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배 교수는 “북한은 고인류학의 차원에서 조사 가치가 굉장히 큰 곳”이라며 “북한의 유적을 연구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데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배(배성곤)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내 스토니브룩스캠퍼스 인류학 학사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학 석사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 박사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 교수

주요 연구성과

Evolutionary Anthropology, DOI: https://doi.org/10.1002/evan.21929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i9067

Antiquity, DOI: https://doi.org/10.1017/S0003598X000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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