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안 쓰는 한국식 말투,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

김태훈 2023. 8. 12. 10:1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빠' 같은 이성을 부르는 호칭과 직책 뒤에 '님'자를 붙이는 용례는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다."

그는 '오빠'나 '님' 같은 표현이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로 규정된 것에 대해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북한 청년층에서 '동무'나 '동지'가 아닌 오빠가 유행하고, 지배인 '동지' 대신 '지배인님'이란 호칭 사용도 관찰되자 이를 금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 올 초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이성 부를 때 ‘오빠’, 직책 뒤의 ‘님’자
콕 찝어 금지… "동무 또는 동지 써야"
한국 말투 유입 경로로 대북전단 지목

“‘오빠’ 같은 이성을 부르는 호칭과 직책 뒤에 ‘님’자를 붙이는 용례는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우리 국회에 해당)가 올해 초 채택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 드라마와 K팝(한국 대중가요) 등 한류 콘텐츠가 북한에 스며들면서 한국식 언어가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나가자 이를 단속하기 위한 입법으로 풀이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자에 ‘인민 소비품 전시회 2023’ 행사 모습이라며 소개한 사진. 평양=노동신문·뉴스1
최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기관지 ‘평화통일’에 실린 통일연구원 박영자 선임연구위원의 기고문을 보면 북한 내 한국 말투의 유행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12일 ‘평화통일’에 따르면 박 선임연구위원은 평양문화어보호법에 포함된 금지 조항 내용을 집중 분석했다. 그는 ‘오빠’나 ‘님’ 같은 표현이 “박멸해야 할 괴뢰말 찌꺼기”로 규정된 것에 대해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북한 청년층에서 ‘동무’나 ‘동지’가 아닌 오빠가 유행하고, 지배인 ‘동지’ 대신 ‘지배인님’이란 호칭 사용도 관찰되자 이를 금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률은 이른바 ‘괴뢰식 억양’을 본뜨는 행위도 금지시켰다. 그러면서 괴뢰식 억양을 “비굴하고 간드러지며 역스럽게 말꼬리를 길게 끌어서 올리는” 것으로 규정했다. 북한 말투보다 훨씬 부드럽고 상냥하게 들리는 한국식 말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란 설명이다.

“자녀들의 이름을 괴뢰식으로 너절하게 짓거나 손전화기(휴대폰), 콤퓨터망(온라인 공간)에서 괴뢰 말투를 본뜬 가명을 만들어 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일상생활에서 일부 기관 명칭과 부름말을 규범에 맞지 않게 제멋대로 줄여 사용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항도 눈길을 끈다. 북한에서도 정식 명칭을 줄여 쓰는 약칭, 온라인 공간의 별명(닉네임) 등이 유행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한국 대중문화 속 한국식 말투의 영항이라는 게 박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이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지난 6월25일 경기 김포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난하는 내용의 대북전단을 보내고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그럼 한국 대중문화는 어떻게 북한에서 퍼지고 있을까. 평양문화어보호법은 한국식 말투의 유입 경로로 △국경을 통해 뇌물을 주고받으며 유입 △공중을 통해 유입된 ‘삐라’(대북전단)와 ‘물건짝’(물건의 속어) △해안지역을 통한 유입 △대외사업을 통한 유입 △해외 출장·방문을 통한 유입 등을 적시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대북전단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문재인정부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강력한 항의로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며 대북전단 금지법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며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 접근을 가로막는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정부 들어 북한인권을 중시하고 대북 심리전의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간의 대북전담 관련 입장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