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아이폰 생산, 중국에서 인도로? 애플의 큰 그림이 의미하는 것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2023. 8. 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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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쉽 네 줄 요약

· 애플이 중국 생산공장에 대한 전적인 의존상태를 끝내는 전략적 전환을 시도한다.

· 인도에도 중국 수준의 공급망을 육성한다는 것이 애플의 전략이다.

· '제로코로나'로 불거진 중국의 정치사회적 문제, 그리고 미중 갈등이 원인이 됐다.

· HP, 델(Dell) 등 다른 거대기업들도 이런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으로 디리스킹을 시도하고 있다.


전자제품에도 고향이 있다면, 아이폰의 고향은 두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스티브 잡스의 고향이자 애플의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아이폰을 어떻게 만들지를 정한다. 그것을 실물로 만드는 작업은 중국에서 맡는다. 아이폰 뒤를 보면 출생증명이라 할 원산지 표시 문구가 이렇게 적혀있다.

"애플에 의해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었고, 중국에서 제조하였음."(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이는 단지 한 상품의 출생이력을 밝히는 문장이 아니다. 구소련이 무너진 후 세계화 30년 동안 전자산업이 발달한 방식을 압축 표현한 상징성 있는 문장이다. 원천기술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은 미국 등 선진국이 대고, 제조는 중국에 맡겼다. 아니, 몰아줬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몽땅 담지 말라는 격언이 그 시절에도 있었지만, 중국에 생산을 속된 말로 '몰빵'한 기업들이 원가 절감과 생산효율에서 이득을 봤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다른 나라들의 대중 의존도는 위험할 정도로 높아져갔다.

그런데, 세계사적 조류가 탈(脫) 세계화로 바뀌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애플은 아이폰 제조를 거의 전적으로 중국 내 공장에 맡기는 '배타적 의존상태'를 이제 끝내려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플스토어 / 출처 : 게티이미지


애플의 목표는 수년 내에 연간 아이폰 전체생산량의 20%를 인도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지 물량 배정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폰에는 1,500여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아이폰의 실물 제조를 총괄하는 타이완 폭스콘(Foxconn)을 비롯해 수많은 협력업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애플은 미국 본사와 함께 신모델을 개발하고 양산 준비를 갖추는 기능까지 인도에 이식하려 한다.

애플로서는 수십 년 만의 전략적 변화다. 중국의 생산기능을 뜯어서 인도에 갖다 붙이는 건 아니지만, 인도를 중국 수준의 생산거점으로 '병행 육성'하겠다는 장기 비전의 시동을 건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제품의 생산을 중국에만 목매달고 있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중국 생산에 차질이 생겨도 글로벌 경영에 큰 문제가 안 생기도록 또 하나의 생산기지를 만들겠다는 거다. '디리스킹(de-risking)'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디리스킹 차원의 공급망 재편은 HP, 델(Dell) 등 다른 거대기업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 중이거나 할 예정인 작업이다. 미국 경영계에서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푸저우의 한 통신장비 제조공장 / 출처 : 게티이미지


중국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중국은 올 들어 수출도 계속 줄고 (7월에도 14.5% 감소) 청년실업률은 20% 이상으로 치솟았다. 애플 같은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폭발적으로 늘려줘도 시원찮을 판이다. 눈치가 뻔한 애플이 "자, 우리 이제 인도를 키울 겁니다. 그동안 중국에 너무 의존한 것 같아서요"라고 드러내놓고 말할 리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변화가 알려졌을까.

니혼게이자이(한자로 일본경제) 신문의 영어매체인 니케이 아시아(Nikkei Asia)를 통해서다. 니케이 아시아는 중화권 전자산업의 공급망을 수년간 커버해 온 타이완, 일본 등 다국적 전문기자들을 동원해 미중 반도체 갈등을 밀착 취재해 왔다. 이들의 기사가 현장감 있고 깊고 빨라서 평소 주목하고 있었는데, 몇 달 동안 추적 및 확인을 거친 '빅 스토리'라며 애플의 전략 변화를 대서특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애플이 공급망을 중국-인도 더블 체제로 바꾸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1. 지난해 10월 중국 공장 폭동 사태

2.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
 

믿는 도끼가 발등을... 세계 최대 공장에서 벌어진 일

지난해 10월, 중국 본토 정저우의 아이폰 생산공장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를 고수하느라 가혹한 방역정책을 쓰던 시절이다. 많은 근로자들이 공장에 갇혔다. 밥조차 제대로 배급되지 않았다. 봉쇄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의 불만이 결국 폭동으로 터져 나왔다.


정저우는 타이완 폭스콘이 애플의 하청을 받아 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 중 세계 최대다. 당시 상황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나빴다고 한다. 폭동과 진압의 여파로 공장 내부까지 아수라장이 됐고, 생산은 한 달 이상 차질을 빚었다. 외신들은 정저우 폭스콘 직원 20만 명 중 2만 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시기도 최악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주요 소비국가의 연중 최대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앞두고 물량을 최대한 생산해야 할 때였다. 니케이 아시아는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임원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애플도 기겁을 했고 우리도 기겁했어요. 아무도 예상 못한 사태였죠. 당장 어디도 대안이 될 수 없었어요."

이 사태는 애플 고위경영진에게 큰 경종을 울렸다고 한다. 중국은 2007년 아이폰 첫 출시 이후 전체 생산량의 95%를 만들어내며 애플의 역사적 성장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있었다.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 2016년 SF 애플워치 신제품 발표회 / 출처 : 게티이미지


애플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제프 윌리엄스가 나서서 생산 다변화 논의를 주도했다. 인도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인도는 중국 다음 가는 거대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원래 해외에 공장을 지을 때, 최종 시장에 대한 접근성은 최우선 고려사항 중 하나다. 이왕이면 물건 팔 곳에 공장을 두는 게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6년에 인도 스마트폰 이용자는 10억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인구는 중국보다 많고, 젊은 인구의 비중은 고령화가 급속 진행 중인 중국보다 훨씬 높다.

애플은 아직까지는 인도 시장에서 삼성과 중국 업체들에 뒤처져 있지만, 인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애플의 인도 생산이 본격화되면 중국에서 그랬듯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는 영어가 가능한 IT관련 인력이 많다. 인도 정부가 마침 제조업 육성을 위한 국가적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서 큰 폭의 지원도 약속받을 수 있었다. 베트남은 이미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들이 대규모 제조기지를 구축하면서 땅값과 인건비 등이 많이 올라 애플 입장에선 원하는 만큼 생산비용을 낮추기 어려웠다고 한다.

애플의 생산감독들과 제조공정을 담당하는 폭스콘의 임원들이 TF를 이뤄 인도에서의 생산량을 대폭 끌어올리는 임무에 나섰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올해 1월쯤 '기대 이상이다'라는 내부 평가가 나왔다고 니케이 아시아는 전한다.

 

'중국에 집중' 시대는 끝…인도를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애플과 폭스콘이 인도에 공장을 증설한다는 기사는 이런저런 형태로 업계매체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니케이 아시아가 자신들의 기사에 '빅 스토리'라며 의미를 부여한 건, 애플의 협력업체들을 광범위하게 탐문한 결과, 이게 단지 '생산공장을 인도에도 늘린다' 정도의 의미를 넘는 전략적 전환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애플의 비전은 인도가 중국의 지속가능한 대안이 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다수의 애플 협력업체들은 믿고 있다고 한다.

그 믿음의 근거는 NPI(New Product Introduction)라고 불리는 신제품 생산과정을 인도에도 이식하려는 애플의 노력이다.

NPI는 캘리포니아 본사의 디자이너와 설계자, 협력업체 제조 현장의 엔지니어가 협력해 도면을 실제 제품의 양산으로 구현해 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관여하고 연구와 테스트를 위한 시설을 추가 투자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이걸 중국 외에 인도에서도 하겠다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 신형 모델을 중국과 인도에서 동시에 생산한다는 목표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 16이 나온다 치면 첫 출시에 대비한 생산을 중국 공장과 인도 공장에서 같은 시간표에 따라 동시 진행한다는 건데, 인도 공장의 수준이 웬만큼 올라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예전엔 아이폰 새 모델이 나오면 그걸 인도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애플은 이 시차를 최근 1개월까지 줄였고, 올해가 가기 전에 10일까지 축소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했듯이…인도에 공급망의 뿌리를 이식하려는 애플

아이폰을 실제 조립하는 폭스콘은 인도 동남부 첸나이 인근 스리페룸부두르 산업단지에 68만 8천㎡ (20만 8천여 평) 규모의 부지를 차지하고 수만 명의 근로자를 3교대로 돌려가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니케이 아시아는 폭스콘이 벵갈루루에도 추가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은 수백여 개 협력업체가 천 5백여 개의 부품을 조달하는 공급망을 인도에도 뿌리내리게 하려고 한다. 지금은 애플의 상위 188개 협력업체 중 80% 이상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제조시설을 중국에 두고 있는데, 이들이 인도에도 공장을 짓거나 중국에서 만든 부품을 원활하게 인도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도 공급망 육성에 대한 애플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아이폰 금속 케이스 만드는 일을 인도 타타(Tata) 그룹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소재와 정밀가공 등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이 작업은 오랜 업력을 통해 검증된 협력업체만이 맡을 수 있다. 타타(Tata) 그룹은 인도 최대 기업집단 중 하나이고 자동차 화학공업 철강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지만, 정밀 전자제조업에는 경험과 실력이 충분치 않다. 타타는 애플의 200대 협력업체 수준도 되지 않지만, 애플은 4년째 타타에 아이폰 메탈프레임 생산을 가르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게 니케이아시아의 보도다.


인도에 공급망을 이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앙정부나 고위정치인이 호기롭게 약속한 일이 지자체 말단에서 틀어지는 상황은 우리나라 기업들도 꽤 겪은 바가 있다. 애플의 경우는 주요 협력업체들이 중국 회사이거나 중국인 실무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 골치였던 걸로 알려졌다. 인도 공장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인도로 출장을 가거나 인도 직원들을 중국에 보내 연수를 시켜야 하는데, 중국-인도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 보니 양쪽에서 비자가 제때 나오지 않는 등 차질이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애플 협력업체가 인도 중소기업이나 공장을 인수해야 일이 진척되는데, 인도의 경쟁기업이 로컬정치를 움직여 방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것도 결국 애플이 개입해 인도 고위층을 움직여 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납품단가 인상 요구를 억눌러가며 인도 공급망 육성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애플의 CEO인 팀 쿡이 이런 일의 전문가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처럼 제품의 콘셉트를 상상해 내고,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비전의 소유자는 아니다. 잡스의 비전을 가장 적은 비용과 최대의 효율로 생산할 수 있는 공급망을 20년 걸려 중국에 구축한 운영전문가가 바로 쿡이고, 그걸 잘해서 잡스의 후계자로 낙점받았던 인물이다.

신제품을 발표하는 애플의 팀 쿡(Tim Cook) CEO. 올해 6월 / 출처 : 게티이미지

미중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위험을 '헤지'한다

아직도 경제와 국제정치가 별개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애플 같은 회사도 국제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애플이 '디자인드 인 캘리포니아'인 아이폰을 '어셈블 인 차이나'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냉전 승리 후 중국을 시장으로 포용하는 세계사적 조류가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8년 트럼프 당시 미국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중국과 무역분쟁을 일으킨 이후, 교역환경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국제정세도 바뀌었다. 미국은 인도의 국력을 키워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 회사인 애플은 지정학적 위험 분산을 시도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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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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