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서… 큐레이터만의 고유한 풍경을 그려낸다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2023. 8. 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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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택 - 동시대를 감각하기 위하여
기관·집단 이해로부터 거리 두고 활동
독립큐레이터로서 작품·관객 연결 역할
여러 참여자들의 다양성과 협업에 관심
전시장 벽면 분홍빛 채색… 작품 일부로
문화예술 탐구 하나의 연구실로 연출도
수동적 조력자 넘어 능동적 참여자 추구
전시 공간에서만 가능한 경험 창출 노력
공간 안에 작품을 담아내는 일, 시간 안에 경험을 담아내는 일. 전시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을 그릴 수 있을까. 작품을 마주하는 찰나의 감각, 그 뒤로 이어지는 기다란 기억이 오롯이 오늘의 증표가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장진택(37)에게 전시는 작가와 큐레이터, 작품과 관객이 현재의 장소와 관계 맺으며 태동하는 특별한 시공이다. 익숙한 것들을 지우고 허물며, 조금씩 어긋난 방향으로 열어 가는 저마다의 동시대적 사건들이다.
‘풍경들’(2023), 우손갤러리 전시전경 [사진=우손갤러리, 제공=장진택]
◆독립큐레이터 장진택

장진택이 미술현장에 처음 발 디딘 것은 홍익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6년이다. 동시대 미술에 관심 갖고 종종 미술대학 수업을 수강하던 중 인사동 갤러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됐다. 학교 바깥의 역동적인 세계를 경험하며 실기 및 이론, 그리고 현장 사이의 거리를 실감했다. 제도권 미술관의 주류 경향과 그로부터의 차별화를 실험한 국내 1세대 대안공간의 행보가 대조적인 균형을 이루던 때다. 당시의 환경 속에서 장진택은 독립큐레이터로서의 미래를 꿈꾸었다. 예술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해 미술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2011년 학부 졸업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15년 런던 영국왕립예술대학(RCA)에서 동시대 미술 큐레이팅(Curating Contemporary Art)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2016년 일민미술관 학예팀에서 근무했고 2019년에는 현대자동차 제로원(ZER01NE)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팀장으로 재직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 주관의 국제 심포지엄 ‘10×10: 코리아 리서치 펠로’ 큐레이터로 일했다. 2021년 서울특별시 주관 공공미술 프로젝트 ‘제6회 서울은 미술관’ 협력 큐레이터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2020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올해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연구자로 선정됐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립큐레이터 장진택 [사진=김혜수, 제공=장진택]
장진택은 특정 기관에 오래 귀속되지 않으며 독립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독립큐레이터라는 명칭이 가리키는 의미와 범주에 대한 고민이 동반된다. 큐레이터의 업무가 전시사(史)나 큐레이팅학 등 학문으로 정립된 역사가 짧기에 정의는 다소 유동적이다. 해당 용어는 1960년대 후반 서구 미술계에서 제도비평적 경향에 기반하여 독립적으로 일하는 동시대 미술 전시 기획자의 등장을 가리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대규모 국제 전시의 유행과 함께 독립큐레이터의 존재가 극도로 가시화되었고 국내에서도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기관이나 집단의 이해와 정체성으로부터 얼마간 거리를 두고 활동하며 기획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다만 그 자유만큼 주어지는 책임도 크다.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큐레이터가 되기를 바랐다는 고백처럼,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 쓴 원고들을 개인 블로그에 차곡히 모아 두었다. https://blog.naver.com/asian_male_smoker에서 그간의 글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 이곳에서, 고유한 관계로서의 전시

장진택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문래동 소재 전시공간 ‘인터랙션 서울(Interaction Seoul)’을 직접 운영하며 다수의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가 단지 배경으로 전락하지 않으며 특정 작품으로 하여금 새로운 맥락 안에서 읽히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기능하기를 바랐다. 작품과 전시, 작가와 관객을 낯선 방식으로 매개하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관한 실험이다.
‘메이크 어 핑키 위시!(Make A Pinky Wish!)’(2017), 인터랙션 서울 전시전경 [사진=서스테인 웍스, 제공=장진택]
그는 전시라는 사건을 둘러싼 여러 참여자들의 다양성과 협업 과정에 관심 갖는다. 한시적 교류의 장에서 태어나는 매우 특별한 관계에 관한 고민이다. 큐레이터로서 수동적 조력자의 입장에 머물지 않으며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를 추구한다.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큐레이팅을 통해 전시 내부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때로 연출된 공간이 자아내는 감각이 정서의 공명을 유도한다. 또 다른 때에는 대화와 교류의 과정으로부터 참여자 간 연결성이 가시화된다. 전시에 발 디딘 관객이 어떠한 고정된 의미를 전달받기보다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투영하고, 공감할 요소를 마련하는 데 기획의 중점을 둔다.
장진택이 대학원 재학 당시 기획해 선보인 전시 ‘델브(Delve)’(2014)는 영국 런던 소재 전시공간 애크미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진행됐다. 참여 작가들과 큐레이터 사이의 이해와 공감을 위한 사전 교류 프로그램을 꾸렸다. 특유의 공간 연출을 통해 작품의 외적 모습 이면에 숨은 고민과 연구의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다. 귀국 후 인터랙션 서울에서 선보인 서정빈 작가의 개인전 ‘메이크 어 핑키 위시!(Make A Pinky Wish!)’(2017)에서는 전시장 벽면 일체를 분홍빛으로 채색했다. 장소는 작품의 일부가 되고, 그로써 하나의 총체적 감각이 되어 관객을 마주한다.
‘코스모스 파티(COSMOS PARTY): 우리는 우주로 간다’(2016), 인사미술공간 전시전경 [사진=스튜디오 얄라, 제공=장진택]
2016년도에 연 두 기획전 ‘육종학적 다층문화 지형도’(스튜디오148)와 ‘코스모스 파티: 우리는 우주로 간다’(인사미술공간)는 전시의 매개적 특성을 강조한 사례다. 참여자들 간 협업과 협동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다. 서정빈과 협업하여 기획한 전자의 사례에서는 전시공간을 하나의 연구실처럼 상정했다. 강민지, 소목장 세미, 장진승, 지영준, 한주열, 허중원, 홍건호 등 7인의 작가 및 기획단 각자가 지닌 문화예술 언어들을 공유하고 탐구하는 장소로서다. 기성 전시 문법을 따르지 않는 설치를 시도했다. 후자는 작가 박희자, 서윤아, 손현선, 최병석이 결성한 공동체 ‘우주당’과 장진택의 협업 프로젝트다. 우주당 4인 전원의 우주행을 목표하는 가상의 합동훈련 속에서 장진택은 이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관제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대성’에 관한 고민: 관습의 바깥을 상상하며

장진택이 최근 기획한 전시 ‘-NESS’(2023)가 지난 7월 29일 막을 내렸다. 용산구 라흰갤러리에서 연 고요손과 김상소의 2인전이다. 조각 및 회화, 순수미술과 상업성 등으로 구분된 예술 장르를 허무는 시도로서 마련한 전시다. 장진택은 이러한 균열이 “무언가를 무조건 전복하려는 의도가 아니며, 자기 구성의 원리를 해제하고, 나아가 그것에 합당한 미적 혁신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품과 전시를 마주하는 관객의 눈은 실제로 장르의 범주를 구분 짓기에 앞서 자신 앞에 펼쳐진 장면 자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전시는 회화를 마치 조각처럼, 조각을 진열대 위 상품처럼 생경한 방식으로 선보였다.
‘-NESS’(2023), 라흰갤러리 전시전경 [사진=양이언, 제공=장진택]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8월 25일까지 여는 '풍경들'(2023)은 오묘초, 임노식, 정영호의 작품을 선보이는 단체전이다. 참여작가들의 조각, 회화, 사진 작품은 약속된 기간 동안 전시장 내에서 그만의 고유한 풍경을 이루어 낸다. “작가의 작업으로 탄생하는 작품,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그리고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감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정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이라는 한 폭의 동시대 풍경이 그려진다”는 장진택의 말처럼 말이다. 세 작가가 저마다 다른 세상의 장면을 포착하여 각기 상이한 방식으로 작품 안에 담아내고 있음을 감안해도, 해당 전시 전경이 오늘의 한국 미술현장 풍경의 단면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동시대성’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명료한 대답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바로 그 시대를 유영하는 도중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작품으로부터, 오늘의 전시로부터 지난 세대와 다른 무엇을 추적하고, 낯선 면모를 발견하고, 때로 별난 시도를 거듭하는 노력이 훗날 우리의 현재를 조금 더 동시대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작품이라는 소실점을 향하여 시선을 유도하기보다, 도리어 그 작품을 프리즘처럼 다채롭게 펼쳐보자고 제안하는 그런 전시들. 장진택의 전시는 작품으로 하여금 장소를 바라보도록, 장소로 하여금 사람을 바라보도록 하며 나름의 지금을 증언한다.    .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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