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보다 나을수도?” 착한 가격에 폭염까지 지워주는 뽀글이들 [전형민의 와인프릭]
매일 더위와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더울 때는 탄산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 한 잔이 절실한데요. ‘탄산음료’하면 와인 애호가들은 십중팔구, 보글거리는 조밀한 기포가 매력적인 샴페인(Champagne)을 떠올립니다.
상큼하다 못해 청초한 느낌을 자아내는 레몬, 라임, 자몽 등 감귤류(Citrus) 뉘앙스와 짐짓 빵을 굽는 듯한 구수함까지… 샴페인은 대부분이 좋아할만한 풍미가 복합적으로 발현되는, 누구든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와인입니다. 주변 와인 애호가 중 샴페인이 싫다는 이는 찾기 힘들 정도로 불호도 없습니다.
문제는 가격이죠. 와인을 즐기는 대부분이 좋아하다보니, 당연하게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확연하게 부족하고요. 오랜 기간 공을 들여야 하는 샴페인의 제조 특성상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요원합니다. 이 때문에 국제 가격이 매년 치솟는 분위기인데요. 고급와인 전문거래소인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에서 8월 첫째주 국제와인시장에서 많이 거래된 와인을 단가순으로 5개 뽑았더니 무려 3개가 샴페인이었다고 합니다.
와인 시장 변방에 가까운 한국에서는 가격 상승이 더 심각합니다. 그랑 크뤼나 프리미에 크뤼 같은 높은 등급은 차치하고, 일반 등급의 샴페인조차 아무리 싸게 구하려해도 병당 6만원 이하를 찾기는 힘든 실정입니다. 이대로 더위를 이길 와인을 찾는 건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그럴리가요. 오늘은 비싼 샴페인을 대신해 무더위를 나게해줄 가성비 스파클링 와인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동굴(Cave)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한 까바는 동굴 같은 지하 저장고에서 양조·숙성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라, 샴페인 지방의 지하동굴이 떠오르기도 하죠? 맞습니다. 크게 보면 샴페인과 까바는 만들어지는 지역, 그리고 들어가는 포도 품종 외에는 차이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샴페인과 비슷하지만, 대신 인건비와 짧은 숙성기간 덕분에 가격은 절반 이하로 싸죠.
숙성기간이 줄어드니 맛의 차이는 있는 편인데요. 가장 쉽게 느끼실 수 있는 것은 구수한 토스트 풍미, 이스트 뉘앙스의 부족입니다. 샴페인은 오랜 기간 숙성하며 효모와 접촉을 통해 마치 빵집에 들어온듯한 구수한 풍미를 즐길 수 있지만, 까바는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아쉽습니다. 더운 날에는 이게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포도 본연의 상큼한 과실미가 더 돋보이기 때문에, 활기차고 청량한 느낌은 오히려 낫다는 평가입니다.
까바는 우리에게만 익숙치 않을 뿐, 이미 세계 와인 시장에서 확실한 수요를 점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본 고장인 스페인에서는 거의 일상 음료처럼 마시고 있고, 미국에서는 파티에서 가장 흔하게 마시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손꼽힙니다. 접근성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죠. 국내 어느 와인샵에 가더라도 3만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맛과 향에서도 샴페인·까바와는 확연하게 다른 매력을 지니는데요. 우선 포도 품종 자체의 과일향이 더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향과 맛에서 경쾌하고 푸릇푸릇한 풍미가 한가득 느껴지고, 은은하게 퍼지는 복숭아향과 적당한 산도, 기분 좋게 깔리는 옅은 단 맛(잔당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더운 여름, 퇴근길 만원 지하철을 빠져나와서 집까지 걷다보면 시원하고 상큼한 한 잔이 생각나기 마련인데요. 이럴 때 편하게 마시기 좋은 녀석으로 강추합니다. 냉장고에 넣어뒀던 프로세코를 꺼내 잠시 식탁에 올려놓고,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한잔 따라 마시는 식이죠.
저녁 식사 전 가벼운 한잔이 될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현지에서는 본 식사가 나오기 전 식전주의 개념으로도 많이 음용하기도 하고요. 이탈리아 식전주의 대명사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칵테일, 아패롤(Aperol) 스피리츠의 기주(基酒)로 쓰이기도 합니다.
모스카토 다스티는 굳이 구분하자면 세미 스파클링 와인 입니다. 일반 스파클링 와인보다는 좀 더 탄산이 약해서 ‘약발포성 와인’으로 분류합니다. 위의 스파클링 와인들과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알코올 도수가 낮고 좀 더 달다는 점입니다. 와린이들이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모스카토 다스티가 다른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달달한 이유는 역시 양조 방식에 있습니다. 가을에 압착한 포도즙을 발효 시키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4~6%가 되면 포도즙이 더 이상 발효되지 않도록 차갑게 한 후, 특수 필터를 통해 효모를 다 걸러냅니다. 효모가 당분과 접촉해 알코올을 생성하는데, 인위적으로 효모를 걸러내면서 포도즙 내 당분을 살리고 알코올 도수를 낮춘 겁니다.
달달한 복숭아, 특히 백도의 향이 슬며시 올라오고, 입안에서 우아하고 산뜻하며 귀엽게 간지럽히는 기포가 특징적인 와인 입니다. 생크림 케이크나 바닐라 등 가향이 과하지 않은 아이스크림과 식후 디저트로 즐기기에 안성맞춤 입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스파클링 와인을 마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맥주와 콜라만큼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스파클링 와인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따르면 바로 잔 표면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의 시원한 상태(6~10℃)가 딱 마시기에 적절하죠. 괜히 온도를 너무 올려 마시게 되면 기대했던 청량함 대신 불쾌감이 엄습할지도 모릅니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부인인 유화부인은 궁예의 장수이던 시절 만난 목이 타던 왕건에게 우물물을 길어주면서 버드나무잎을 훑어 넣어 줬습니다. 왕건은 버드나무 잎을 후후 불어가며 마셔야 했는데요. 그 짜증스러움에 ‘왜 버드나무 잎을 넣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유화부인이 ‘물을 급하게 마시면 체하고,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고 대꾸했고, 그제서야 왕건은 그 지혜에 감탄,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했다고 하죠.
유화부인의 행동은 찬물을 갑자기 들이키면 내장 근육들이 놀라 좋지 않다는 현대 의학적인 시각을 떠나서도, 급할수록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대하라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겼습니다. 날이 무덥다보니,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찬 음료 생각이 절실한데요. 가끔은 여유를 갖고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왕의 DNA 가진 아이”…담임교사에 ‘9가지 요구’ 적어 보낸 교육부 사무관 - 매일경제
- “한국내 동결자금 60억 달러…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돼”<이란 국영언론> - 매일경제
- “도면 못보는 직원이 주택단장”...LH사장의 뒤늦은 반성 - 매일경제
- “제2내전 일어날수도”...최대 위기 빠진 미국, 돌파구는 있나? [한중일 톺아보기] - 매일경제
- “이게 진짜 대박”…현대車가 감춰뒀던 또다른 ‘싼타페 역작’, 깜짝 공개 [카슐랭] - 매일경
- “밥 먹을 식당도 없다”…‘연봉 수백억’ 카레이서 몰렸지만 헛물 켠 이 도시 - 매일경제
- 설마 이게 불씨 될까…이자만 7조원, 우량기업마저 휘청댄 이 나라 - 매일경제
- “월급도 떨어져 가는데 달달하네”…매 분기 따박따박 배당 주는 곳 있다는데 - 매일경제
- “우리집 전기료도 보탬이 됐겠지”…한전 10분기 적자탈출 안간힘 - 매일경제
- 또 햄스트링 부상이 발목 잡았다…전반 23분 만에 그라운드 떠난 ‘어시스트왕’ 더 브라위너 [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