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이냐 항명이냐…해답은 '수사심의위'에 [취재파일]
고 채수근 해병 순직 사고 조사 결과를 둘러싼 외압·항명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1사단장 등의 혐의를 축소하기 위해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입장이고, 국방부는 박 대령이 상부의 정당한 지시를 어긴 항명 사건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급기야 박 대령은 어제(11일)로 예정됐던 국방부 검찰단의 2차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박 대령 측은 모레(14일)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군 검찰 수사심의위는 각계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돼 사회적 관심 사건의 처리를 논의하는 기구입니다. 2년 전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때 처음 가동됐습니다.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박정훈 대령 측은 거부했던 검찰단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란
설치 근거는 국방부의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운영 지침입니다. 제1조는 설치 목적으로 "군 검찰 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하여"입니다. "외압은 없었다"는 국방부의 숱한 해명에도 의혹의 시선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국방부 예하의 검찰단이 수사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제고되지 않습니다. 수사 결과의 신뢰 제고를 위해 군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은 필요합니다.
제3조는 심의 대상으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군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 중 고 채수근 해병 순직으로 촉발된 항명·외압 사건만큼 국민적 의혹이 크고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례도 없습니다. 항명·외압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군 검찰 수사심의위의 소집은 타당합니다.
박 대령이 모레 국방부 검찰단에 군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면 국방부 검찰단은 운영 지침 제7조에 따라 각계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5~20명) 중 5명을 뽑아 부의(附議) 심의위를 꾸립니다. 부의 심의위는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수용할지 결정합니다.
국방부에 유익한 군 검찰 수사심의위
그제 SBS는 해병대 1사단 지휘부의 책임이 적나라하게 명시된 해병대 조사단의 언론 브리핑 문건을 보도했습니다. 최소 수백 페이지의 조사 기록을 A4용지 3 페이지 분량으로 줄인 요약본입니다. 국방부 대변인실의 핵심 관계자는 해당 문건을 보고 "우리에게 유리하다"라며 득의양양했습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제 국방부의 기자 간담회에서 그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3 페이지 문건이 수백 페이지 수사 기록의 전체인 양 흔들며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내용이 없다"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입니다. 기자들이 문건에 안 나온 해병대 1사단장의 다른 혐의를 지적하자 대변인은 "그런 것들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상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문건 속 혐의와 현재까지 확인 보도된 다른 혐의들은 하나같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거친, 같은 수준의 혐의인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의 요즘 주장은 이렇듯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국방부가 매 브리핑마다 한 시간 이상 기자들과 벌이는 입씨름은 기자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습니다. 사인한 뒤 돌연 뒤집기, 수사 기록 한 장 없이 법무 검토하기, 반대했던 조사본부 이관 밀어붙이기 등 국방부가 애초에 벌인 일들 자체가 이해 불가입니다. 이런 와중에 국방부 검찰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고 해도 그 결과에서 공정을 읽을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객관적 중간자라고 할 수 있는 민간 전문가들의 군 검찰 수사심의위에 판단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박정훈 대령 측이 선제적으로 소집을 신청합니다. 만약 군 검찰 수사심의위가 박 대령에게 불리한 권고를 해도 박 대령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해병대와 수사단에 내린 지시들이 정당했다면 국방부는 수사심의위 소집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하면 그것만으로도 의심을 살 것입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흉기 난동 테이저건 쏴 검거' 영상 공개한 경찰청 "흉기 난동 엄정 대응" [D리포트]
- [뉴스토리] 어느 청년의 쓸쓸한 죽음
- 서이초 교사, 일기장 최초 공개…"버겁다, 다 놓고 싶다" 호소 (궁금한 이야기Y)
- "아버지 가장 좋아하신 곳"…유골 뿌리던 아들, 그곳에서 사망
- 수업 중 교사에 총 쏜 6살 소년…범행 직후 뱉은 말에 '충격'
- 사망설 14살 유명 래퍼 "난 살아있다"…가짜뉴스 범인은 부모?
- "불이야" 거동 불편한 어르신 업고 뛰쳐나갔다 [스브스픽]
- "전기요금 부담?…90분 이하 외출 시엔 에어컨 켜 두는 게 효율적"
- "힘들었지만 즐거움도 컸어요"…잼버리 대원들 아쉬움 속 출국
- [1분핫뉴스] "여론에 재대로 된 재판 못 받았다"?…'부산 돌려차기' 피의자가 상고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