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이냐 항명이냐…해답은 '수사심의위'에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3. 8. 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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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채수근 해병 순직 사고 조사 결과를 둘러싼 외압·항명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1사단장 등의 혐의를 축소하기 위해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입장이고, 국방부는 박 대령이 상부의 정당한 지시를 어긴 항명 사건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급기야 박 대령은 어제(11일)로 예정됐던 국방부 검찰단의 2차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박 대령 측은 모레(14일)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군 검찰 수사심의위는 각계의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돼 사회적 관심 사건의 처리를 논의하는 기구입니다. 2년 전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때 처음 가동됐습니다.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박정훈 대령 측은 거부했던 검찰단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방부도 당당하다면 수사심의위 소집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놓고 장관, 차관, 법무관리관 등이 수차례 내린 지시의 위법함 유무를 규명하는 것이 항명이냐 외압이냐를 가리는 척도입니다. 국방부 울타리 안의 검찰단에 저울을 맡기는 것은 그다지 공정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 처리에 활용하라고 설치한 것이 바로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입니다.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란


설치 근거는 국방부의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운영 지침입니다. 제1조는 설치 목적으로 "군 검찰 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하여"입니다. "외압은 없었다"는 국방부의 숱한 해명에도 의혹의 시선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국방부 예하의 검찰단이 수사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제고되지 않습니다. 수사 결과의 신뢰 제고를 위해 군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은 필요합니다.

제3조는 심의 대상으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군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 중 고 채수근 해병 순직으로 촉발된 항명·외압 사건만큼 국민적 의혹이 크고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례도 없습니다. 항명·외압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군 검찰 수사심의위의 소집은 타당합니다.

박 대령이 모레 국방부 검찰단에 군 검찰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면 국방부 검찰단은 운영 지침 제7조에 따라 각계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5~20명) 중 5명을 뽑아 부의(附議) 심의위를 꾸립니다. 부의 심의위는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수용할지 결정합니다.

신청이 수락되면 군 검찰 수사심의위가 본격 가동됩니다.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를 토대로 기소, 불기소,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등을 권고할 수 있습니다. 제1기 군 검찰 수사심의위는 고 이예람 중사 사건 때 맹활약했습니다. 심의위의 날카로운 권고는 거의 100%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실현됐습니다. 의혹 해소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국방부에 유익한 군 검찰 수사심의위


그제 SBS는 해병대 1사단 지휘부의 책임이 적나라하게 명시된 해병대 조사단의 언론 브리핑 문건을 보도했습니다. 최소 수백 페이지의 조사 기록을 A4용지 3 페이지 분량으로 줄인 요약본입니다. 국방부 대변인실의 핵심 관계자는 해당 문건을 보고 "우리에게 유리하다"라며 득의양양했습니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제 국방부의 기자 간담회에서 그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3 페이지 문건이 수백 페이지 수사 기록의 전체인 양 흔들며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내용이 없다"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입니다. 기자들이 문건에 안 나온 해병대 1사단장의 다른 혐의를 지적하자 대변인은 "그런 것들은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상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문건 속 혐의와 현재까지 확인 보도된 다른 혐의들은 하나같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거친, 같은 수준의 혐의인데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국방부의 요즘 주장은 이렇듯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국방부가 매 브리핑마다 한 시간 이상 기자들과 벌이는 입씨름은 기자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습니다. 사인한 뒤 돌연 뒤집기, 수사 기록 한 장 없이 법무 검토하기, 반대했던 조사본부 이관 밀어붙이기 등 국방부가 애초에 벌인 일들 자체가 이해 불가입니다. 이런 와중에 국방부 검찰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한다고 해도 그 결과에서 공정을 읽을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객관적 중간자라고 할 수 있는 민간 전문가들의 군 검찰 수사심의위에 판단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박정훈 대령 측이 선제적으로 소집을 신청합니다. 만약 군 검찰 수사심의위가 박 대령에게 불리한 권고를 해도 박 대령은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해병대와 수사단에 내린 지시들이 정당했다면 국방부는 수사심의위 소집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하면 그것만으로도 의심을 살 것입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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