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아직 높다는 연준 …그 데이터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면?
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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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을 돌아보면 아득하다. 9% 넘는 미국 물가상승률을 보며 물가가 안정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년이 흘렀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은 피했다. 2023년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4%다. 6월 생산자물가는 0.1% 오르는 데 그쳤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0%로 2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목표로 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2% 상승은 여전히 먼 길이다.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지난 몇 개월 4.6%대에서 요지부동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인정한다. 연준의 2% 목표는 2024년까지도 달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최소한 2025년까지 긴축정책이 계속될 것을 의미한다. 과연 연준은 금리를 올려야 할까? 이미 높아진 금리만 유지해도 그 자체가 추가 긴축이다.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 수 있다. 그런데 연준은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금리인상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다. 참고 대상인 고용, 소비, 인플레이션 수치 등은 모두 통계 데이터다.
문제는 통계가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다. 통계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일은 드물다. 미국의 물가지수 역시 그렇다. 데이터 의존적 통화정책은 매우 과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과학 데이터가 표본추출 방식에 품목별 가중치를 부여하는 통계에 의존하는 한 정확한 현실 반영은 불가능하다. 인플레이션을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했던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 통화정책이 침체를 가속할지 모른다. 통화정책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누적된 금리인상의 시차 효과를 살펴야 할 때다.
후행하는 주거비
미국에서 현실과 인플레이션 통계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항목이 주거비다. 인플레이션 수치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 물가지수에는 임대료와 자가주거비(OER·Owners’ Equivalent Rent)가 포함된다. OER은 주택소유자가 자기 집을 임대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임대료 수익을 말한다. 일본과 영국 등도 자가주거비를 물가에 반영한다. 야데니리서치(Yadeni Research)에 따르면 미국 물가지수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CPI의 34.6%, 근원 CPI의 43.5%를 차지한다. 주거비가 물가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주거비 통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인플레이션 속 주거비 ‘후행성’은 많이 논의된 주제다. 최근 댈러스연준은 이에 관한 흥미로운 보고서를 공개했다. 댈러스연준 리서치팀의 타일러 앳킨슨 선임이코노미스트의 연구물이다. 임대료 인플레이션이 2024년 둔화 흐름을 보인다는 게 주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핵심이 다른 데 있다. 보고서는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거비 문제를 다뤘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신규 임대료가 2021년 약 15% 올랐다. 이는 당시 CPI와 PCE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신규 임대료가 폭등했지만, CPI와 PCE의 주거 항목 인플레이션은 4% 이하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인플레이션 수치 속 임대료 항목이 실제 시장 임대료보다 1년 정도 늦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속 주거비는 갱신 또는 신규 임대계약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기존 임대계약까지 포함한다. (신규 임대료가 올라도 기존 계약분의 임대료가 여전히 낮으면 인플레이션에 상대적으로 낮게 반영된다. 반대로 신규 임대료가 내려도 기존 임대료가 높다면 인플레이션 임대료 항목은 높게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인플레이션 속 임대료 항목은 2023년 4월 전년 동월 대비 8%나 올랐다. 2021년에 오른 임대료가 2022년, 2023년까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풀어 설명해보자. 미국 임대료는 2021년 폭등했다. 이것이 1년 뒤 미국 인플레이션의 속도를 높인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현실의 시장 임대료 상황은 정반대다. 미국 단독주택 임대료 상승률은 2022년을 기점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2023년 임대료 인플레이션은 몇 개월째 8%를 웃돈다. 미국의 임대계약 기간은 보통 1년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산정되는 인플레이션 속 주거비는 대략 1년 전부터 유지된 임대료를 포함한다. 임대료 상승폭이 여전히 클 때의 계약이 포함돼 주거비 인플레이션이 높다. 만약 신규 계약만 대상으로 한다면 주거비 인플레이션은 훨씬 낮을 것이다.
주관적 대처
CPI는 8만 개의 데이터를 모아 만든다. 이 가운데 많은 항목이 주거비처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런 오차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많다. 트루플레이션(Truflation)이 대표적이다. 트루플레이션은 1천만 개 데이터를 활용해 인플레이션 지수를 산출한다. 그것도 매일 업데이트한다. 블록체인 기술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업이 산정한 물가상승률은 2023년 7월7일 기준 2.44%에 불과하다.
트루플레이션 지수가 CPI보다 높을 때도, 낮을 때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던 2022년 7월 트루플레이션 수치는 공식 CPI를 훨씬 웃돌았다. 현재는 훨씬 낮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우선 인플레이션 구성 요소와 그 가중치가 다르다. 주거비 비중은 23.3%로 공식 인플레이션보다 낮다. 반면 식료품비와 운송비 등의 가중치가 높다. 공식 인플레이션에 나타나는 후행성과 오차를 극복한 점도 작용한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최근 동향을 보면 파월 의장과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목표 2% 달성을 강력하게 원한다. 최소한 그렇다고 얘기한다. 연준이 물가 목표의 근거로 삼는 지표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이다. 5월 기준 근원 개인소비지출 상승률은 4.6%였다. 전문가들은 2023년 말 약 3.7%로 내려가리라 전망한다. 연준이 2% 물가 목표를 고집한다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CPI가 2%대에 도달하더라도 PCE가 여전히 높으므로 연준은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할 수밖에 없다.
연준은 데이터에 의존해 과학적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통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연준의 결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경기순환은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것에 대처하는 인위적이고 주관적인 통화정책이다. 잘못된 혹은 적절한 시점을 맞추지 못하는 통화정책은 경제의 거품과 침체를 가속 또는 심화할 수 있다.
데이터와 현실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침체로 가는데도 데이터에 의존해 고금리를 유지하거나 금리를 올릴 수 있다. 반대로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데 초저금리를 유지하거나 금리를 내릴 수도 있다.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2000년 닷컴 거품, 2007년까지의 주택시장 거품, 2008년 금융위기가 통화정책의 결과물이다. 이런 비정상은 통화정책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연착륙 기대
현재 미국의 경기선행지수는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컨퍼런스보드 경기선행지수가 다 그렇다. 일부에선 미국 경기선행지수의 예측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에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부문이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그 비중이 70%를 넘는다. 이를 근거로 제조업에 비중을 많이 두는 경기선행지수가 미국 경기를 예측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뿌려진 엄청난 돈과 초저금리 시대에 풀린 신용이 미국 서비스업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신용 축소와 고금리 상황이 계속된다면 서비스업을 지탱한 연료가 고갈될 수 있다. 실제 2023년 줄곧 오르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6월에 꺾였다. 5월 54.9에서 54.4로 내려갔다. 2023년 첫 하락이다. 여전히 확장 중이지만 그 세가 누그러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연준은 연착륙을 주장한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제의 순항을 위해서라도 연착륙은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연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계에 의지한 통화정책의 한계를 돌아볼 때다. 통화정책 실수와 실기를 줄이려면 공식 인플레이션 통계가 지금보다 더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도록 고칠 필요가 있다.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민간 기업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측정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연준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분명한 점은 지금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연착륙 가능성은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이다. 연착륙과 침체는 연준의 손에 달렸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때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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