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고충 있지만, 행복감이 더 커" 27년 봉사 전념 이금조씨

허광무 2023. 8. 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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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서적십자봉사회 소속 온갖 자원봉사 앞장, '울산 자원봉사 명예의 전당' 올라
"사람 대하는 일,때로 마찰도 있어…마음껏 봉사하도록 지원해준 가족에 감사"
지원 물품 전달하는 이금조 씨 [이금조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봉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죠. 하지만 봉사가 이뤄지는 현장이 모두 훈훈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 화가 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어쩌면 그것까지 감수하는 것이 봉사의 영역이겠지만,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27년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거의 모든 유형의 이웃돕기를 실천해 온 베테랑은, 봉사활동을 마냥 찬양하거나 칭송하는 말부터 꺼내놓지 않았다.

이금조(63)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울주군지구협의회장의 현실적이고 냉철한 조언은, 그만큼 자원봉사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가득하기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흔히 봉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포장되죠. 하지만 무슨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일이 그저 순조롭지는 않아요. 태풍으로 침수 피해를 본 이재민들을 위해 봉사회원들이 며칠간 아침 7시 30분에 아침을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7시에 출근하는데, 왜 밥을 늦게 주느냐'라며 욕을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밖에 지원 물품을 전하면 '더 있을 텐데 왜 이것만 주느냐. 차 트렁크 한번 보자'고 항의하시는 분, 물품을 받고도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까지 껴안는 게 봉사겠지만, 자원봉사자들이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고충은 점점 줄었으면 합니다."

재해 복구 돕는 이금조 씨(왼쪽) [울산시자원봉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씨는 1996년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에서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세 자녀를 둔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이웃의 엄마를 보고 봉사활동을 결심했다.

'장애아를 키우면 얼마나 힘들까'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본 그 이웃은 애정으로 아이를 대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했다고 한다.

"내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는 점을 깨닫고 너무 부끄러웠어요.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고, 그때부터 장애인 시설을 찾아 식사와 목욕 등 작지만 필요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봉사에 재미를 붙인 이씨는 더 폭넓고 체계적인 자원봉사에 몰입하고자 1999년 범서적십자봉사회에 들어갔다.

결연세대 지원, 청소·목욕, 반찬 지원, 재난·재해 복구, 장애인 작업장 업무 지원,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등 그가 참여하는 봉사 영역에는 경계가 없다.

그 많은 경험 속에서도 일가족 6명이 내려와 울산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가족의 사례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문화적 차이도 뚜렷했어요. 아내에게 일자리를 소개했는데, '이런 일은 북한에서는 좋게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거절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고, 더 세심하게 챙기는 계기가 됐어요. 다른 직장을 주선하고, 아이들에게 교복이나 책을 구해주는 등 정성을 쏟았어요. 지금은 완전히 지역에 정착하고, 아이들도 대학 교육까지 마치는 등 잘살고 있어요. 아직 고맙다고 안부 전화가 오는데, 제가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반찬 만들기 봉사하는 이금조 씨 [이금조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열정적으로 자원봉사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은 이씨는 울산시자원봉사센터가 선정하는 '2023년 울산 자원봉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일주일에 5∼6일은 봉사활동을 위해 집을 나선다.

하루 3∼4시간을 할애하는 날도 있지만, 종일 시간을 비워야 하는 날이 많다.

산불이나 태풍으로 이재민이 생기면, 집에 있는 쌀과 김치를 싸 들고나와서 그길로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마음껏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가족의 든든한 이해와 지원이 있다.

그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다면서, 이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반대했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겠죠. 지금은 30대가 된 막내는 3살 때부터 봉사활동에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아이들이 건강을 챙기라고 걱정해주는데, 아직은 거뜬합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봉사해서 아빠 일도 잘되고, 너희들도 잘 커 준 것'이라고 설득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어요. 제가 봉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보람을 통해 저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프지 않고 체력이 이겨낼 때까지 오래오래 봉사하고 싶어요."

재해 현장서 자원봉사하는 이금조 씨 [이금조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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