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갈아넣기’ 잼버리 파행 덮은 정부…염치는 어디로?
태풍 북상중 무대 설치…상암경기장 야외 콘서트 강행
아이돌 출연 ‘자발성’ 강조…청소년 아이돌에 수습 맡겨
2023년 8월1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연 일정 변경으로 인해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케이팝 슈퍼 라이브’ 출연이 취소됐던 걸그룹 아이브가, 잼버리 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일정을 조정해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의 제목은 ‘아이브, 잼버리 대원들과의 약속 지킨다’였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최정상의 아이돌 그룹 아이브가 라인업에 포함되어, 새만금 스카우트 잼버리가 압도적인 케이팝의 매력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랑스레 아이브 출연 확정 사실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른들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으로 멋대로 연기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예정돼 있던 다른 일정까지 조정했을 소속사 직원들과 아이브 멤버들을 생각하면 한숨을 안 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세상 어느 콘서트가 공연 하루 전날에 추가 라인업을 발표하는가. 공연 이틀 전이었던 9일에 ‘라인업 확정’이라고 발표가 난 것을 두고도 사람들은 무대 순서 맞추는 것만으로도 촉박할 것이라는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공연 하루 전에 추가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이 주먹구구 행정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레 보도자료를 돌리고 있다니. 대체 문체부는 콘서트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BTS 동원령까지…아미 반발
공연이 6일에서 11일로 연기되던 순간부터, 콘서트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되었다. 새만금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이 미뤄진 건 안전 문제와 온열질환자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잼버리 개영식 2시간30분 동안 온열질환을 호소한 인원은 108명이었다. 1분30초에 한명꼴로 온열질환자가 발생한 것이다. 개중 일부 청소년은 실신하기까지 했으니, 그런 환경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개영식 당시 온열질환자가 속출한 원인을 “케이팝 행사에서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분출하고 활동하다 보니 체력을 소진해”(최창행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그랬다고 주장한 조직위원회이니, 야외 특설무대 공연을 강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 일정이 일방적으로 미뤄지면서, 공연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더 흉흉해져갔다. 6일에서 폐영 전날인 11일로 연기된 진짜 이유는 안전이 아니라 조기 퇴영을 막기 위한 꼼수라는 추측이 잼버리 참가자들 사이에서 돌았고, 졸속으로 연기된 일정을 맞춰가며 출연을 해야 할지를 두고 정부와 아이돌 가수 소속사 간의 눈치싸움 또한 치열했다. 빠듯한 스케줄로 움직이는 아이돌의 특성상, 최소한 몇주치에서 최대 몇개월치의 스케줄이 미리 잡혀 있는 것이 상식이다. 이렇게 며칠 전에 급하게 일정이 바뀌면 미리 잡혀 있던 일정들이 죄다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격’을 들먹이는 탓에 다들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이번 일정 변경을 선선히 납득하는 업계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와중에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이상하리만치 몇몇 멤버가 입대한 방탄소년단(BTS)의 출연에 집착하면서 “마지막까지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소중한 손님들에게 새만금에서의 부족했던 일정들을 대한민국의 문화의 힘으로 채워”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달라고 매달리다가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의 질타를 받았다. “방탄소년단 그리고 이 나라 케이팝 가수는 그 누구도 나라의 국가 공무원이 아닙니다. 나랏일에 타의로 불려가 현재 당면한 국격 실추 문제를 나서서 수습하고 만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대중문화계에 정부의 어떠한 압력도 거부합니다.”
안전 위태로운 공연 준비
정말 안전이 중요했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공연을 취소하는 게 옳은 일이 아니었을까?공연 장소를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결정한 건 콘서트를 고작 4일 앞둔 시점이었다. 3일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무대를 설치해야 했던 것이다. 대형 콘서트의 경우 통상 공연 1주일 전부터 무대를 설치하기 시작해, 공연 2∼3일 전부터는 리허설을 통해 최종 점검을 거친다. 3일 만에 무대를 설치하고 하루 만에 리허설을 마쳐야 하는 스케줄은 다분히 비상식적이다. 무대를 설치하는 인원들의 안전도, 무대 위에 설 아티스트들의 안전도,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볼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도 위태로운 스케줄이다. 그나마 태풍 때문에 리허설조차 취소됐다.
게다가 폭염과 태풍을 이유로 선정한 장소가 상암월드컵경기장이라니 아무래도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의 80% 정도가 지붕으로 덮여 있다고는 하지만, 무대와 관람석이 설치될 그라운드, 그리고 그라운드와 가까운 지상좌석 위는 뻥 뚫려 있다. 더위를 피할 그늘이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부족한 셈이다. 문체부는 수도권이 태풍의 직접 영향권을 벗어난 저녁 7시에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에 진행에 문제가 없다며 “전세계 150여개국 4만여명의 청소년 대원들과 하나가 되는 콘서트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안전 문제를 언급하면서 하나도 안전하지 않은 일정으로 무대를 세우고 우격다짐으로 치러지는 콘서트.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악물고 콘서트를 열려고 한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거물급 아이돌 그룹을 새로 섭외하려고 발버둥치고, 무리해서 일정 변경을 수용해달라고 강요한 걸까? 답은 간단하다. 잼버리의 파행을 케이팝으로 감춰보겠다는 얄팍한 수다.
멀쩡한 마른땅을 내버려두고 추가 매립을 위해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했을 때부터 파행은 정해져 있었다. 잼버리 대원들이 일체감을 느낄 만한 ‘자연’이랄 것이 전무한 인공의 간척지, 잼버리 부지는 폭염을 피할 만한 나무 그늘 하나 없다. 갯벌을 메운 땅이라 염도가 높아 나무가 자라지 못한 것이다. 땡볕도 힘겨운데 물 빠짐도 좋지 않아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렇게 될 것을 수많은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일찌감치 지적한 바 있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토건 개발 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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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 18살, 뉴진스 17살
그나마 예산이 제때 집행됐더라면 그래도 최악은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은 어땠는가? 폭염·침수에 대비한 예산을 제때 투입하지 않아 온열질환자들과 벌레물림 환자들이 속출하고, 배수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텐트를 쳐야 하는 부지는 물웅덩이투성이고, 화장실과 샤워실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올해 대회에서 사용됐어야 할 잼버리 메인 센터 건물은,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면서 내년에나 준공될 예정이다. 메인 센터 없는 잼버리 대회, 잼버리 없는 잼버리 메인 센터가 된 셈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하루에 온열질환자가 세자릿수로 발생하는 동안에도 웃으면서 흰소리를 늘어놓았다. “잼버리는 피서가 아니다. 개인당 150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머나먼 이국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가며 고생을 사서 하려는 고난극복의 체험이다” “참가자들의 정신력이 강하고 야영생활에 익숙해서 괜찮을 것이다” “더위에 잠깐 정신을 잃고 그러다가 3∼5시간 후에 그대로 즐겁게 다시 활동하는 것” 같은 발언들을 하는 동안, 더위에 지친 잼버리 대원들은 맥없이 쓰러져갔다.
이렇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무부처 모두가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 실패해놓고는, 그 실패를 덮어보겠다는 마지막 발버둥으로 케이팝 공연에 매달리는 것이다. 문화 교류와 자연 체험을 위해 참가한 잼버리 대원들에게 케이팝 공연을 성대하게 보여주면 만족하지 않겠냐는 발상도, 정부가 체면을 구겼으니 케이팝 산업 종사자들을 징발해서 활용하겠다는 발상도, 잼버리 대원들과 케이팝 산업 종사자 모두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무슨 ‘국풍81’(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 계승을 명분으로 주최한 관제 문화축제) 하던 시절의 발상인가?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에 지극히 무능하다는 사실을 들켜버린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다시 청소년들의 등 뒤에 숨어 제 무능함을 면피하려 든다. 문체부가 보도자료로 자랑스레 참가 소식을 전한 아이브 멤버들의 평균 연령은 18살이다. 팀 내 맏이인 가을은 20살, 막내인 이서가 16살이다. 일정 변경과 함께 새롭게 섭외된 대표적인 아티스트인 뉴진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뉴진스 멤버들의 평균 연령은 17살, 막내 혜인의 나이는 15살이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어른들이 저마다 “여당 잘못이다” “야당 잘못이다” 서로 탓만 하면서 아무도 제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동안, 어른들이 친 사고를 청소년들이 수습하고 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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