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북한의 '동병상련' 외교 전략…러시아와 무기거래 주목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라는 동병상련을 겪는 국가들과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피제재국 연대를 통해 정치·경제·외교적 고립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대척점에 선 러시아와 군사 협력, 나아가 무기수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달 3∼5일 초대형 대구경방사포탄, 저격무기, 무인공격기, 미사일 이동식발사차량을 생산하는 군수공장을 잇따라 현지지도했다.
사흘에 걸쳐 재래식 무기 생산시설을 시찰한 것인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전략무기 생산시설을 주로 방문하던 김 위원장의 기존 행보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현지지도에서 각종 전략무기를 "꽝꽝 생산하라"며 생산 증대를 독려했다.
그는 이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7차 확대회의에 참석해 "군수공업 부문의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는 현대화돼 가는 군의 작전수요에 맞게 각종 무장장비들의 대량생산 투쟁을 본격적으로 내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이른바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7월 7일) 70주년을 맞아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무기전시회, 열병식을 함께한 이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러시아를 향한 무기판매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로 돌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평양에서 보고 들은 것을 직접 보고했을 것이다.
이후 이달 1일 러시아 공군 소속 일류신(IL)-62 여객기 1대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평양에 도착했다가 다음날 모스크바로 돌아간 것이 비행경로 추적 사이트를 통해 확인됐다.
전쟁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가 무기 구매를 위한 실무급 책임자를 급하게 평양에 파견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우크나이나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는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공격용 무기의 공급 루트를 마련하는데 분주하다. 이란제 무인공격기 '샤헤드-136'이 우크라이나 상공에 등장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의 작년 국내총생산(GDP)은 2조503억 달러로 2021년 1조7천787억달러보다 크게 늘고, 순위도 11위에서 9위로 올라섰다. 전쟁을 수행 중임에도 경제 규모가 커지는 러시아는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국방예산에 배정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무기를 팔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인 셈이다.
가뜩이나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제사회 제재로 더욱 어려움을 겪는 북한으로서는 외화를 벌어들일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협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승절 70주년 행사 때 김 위원장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극진히 대접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은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이 '악당'으로 지목한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5월 연방 관보에서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과 대통령 행정명령(13637호)에 따라 북한을 비롯해 쿠바,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을 미국의 대테러 노력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우선 시리아의 경우, 북한은 각종 계기 때마다 최고지도자와 외무상 등이 축전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혜룡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는 지난 6월 시리아 의회의 북한친선위원회 의원들과 회담하고 의회를 비롯해 경제, 교육, 농업 분야에서 교류 확대에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8월엔 김 대사대리가 참석한 '시리아-북한 산업협력 공동기술위원회' 회의에서 시리아 국영회사의 생산 라인·기계 복구 과정에서 북한의 기술적 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2019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방북이 거론됐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그해 미국이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해 베네수엘라에서 반(反) 마두로 시위가 이어졌지만, 북한은 마두로 대통령 지지를 표명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자 베네수엘라는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설치하고 외교차관 회담을 열었다. 아울러 마두로 대통령의 방북이 논의됐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세계 원유 매장량 1위를 자랑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베네수엘라가 북한과 관계 강화 과정에서 북한에 경제적 지원세력이 될지 주목된다.
서반구 유일의 공산국가 쿠바는 '반미'(反美)를 기치로 한 북한의 우방국이다. 북한은 역시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쿠바와 꾸준히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2019년 평양을 직접 찾기도 했고 외교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양국은 같은 목소리를 내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중남미의 반미 3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가 북한에 대사관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 실세인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은 지난 6월 "우리는 우리 형제 김정은이 보낸 대표단과 만나 대사관 운영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며 "이미 평양에서 외교 업무를 수행할 사람에 대한 문서를 (북한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무리요 부통령은 20년간 집권한 독재자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부인이다.
니카라과는 오르테가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인권 탄압 탓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상태다.
지난해 미국이 주최한 미주정상회의에도 니카라과, 쿠바, 베네수엘라 정상은 독재자라는 이유로 초청 명단에서 제외됐다.
여기에다 미국의 가치외교와 공급망전략으로 갈등을 이어가며 각종 제재를 받는 중국과 관계는 사실상 북한 외교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국제 풍운이 어떻게 변하든 중·북 관계를 잘 유지하고 공고히 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 미국 주도의 제재를 받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증가하는 것으로, 북한은 이들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주변나라들과의 친선협조 관계를 가일층 확대발전시키며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간섭, 지배와 예속을 반대배격하고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 민족들과 사상과 제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협조하면서 대외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미국 주도의 제재를 받는 국가들과 협력과 외교를 강화해 나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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