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놓쳐 삑삑 울던 '아기새'…살려준 카페 사장님[인류애 충전소]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건물 어디선가 작은 새 울음이 들려왔다. 지난달 4일 오전이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카페 SON' 사장 조대원씨(36)가 영업 준비를 할 때였다. 그는 삑삑 소리를 따라갔다. 카페가 있는 5층과 옥상인 6층 사이 창문. 거기에 '아기 딱새'가 있었다. 아마도 이소하다가 어미 새를 놓친 걸로 보였다.
날아가라고 옥상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픈 준비가 끝난 뒤 다시 살펴봤다. 딱새가 여전히 거기서 삑삑거리고 있었다.
손이 안 닿아 어찌 구조할지 몰랐다. 대원씨는 긴 도구로 어렵사리 딱새를 내렸다. 6층으로 다시 오르려 해서 손으로 잡았다. 요만해서 조금만 힘주어도 부러질 것 같아 떨리는…온기 있는 생명이었다.
상자에 넣어 옥상에 올라갔다. 살포시 품은 손에서 날려 보내주려 했다. 그런데 딱새는 눈을 감고 잠자듯 가만히 있었다. 별수 없이 카페에 다시 데려왔다. 그랬더니 상자 안에서 삑삑거렸다. 다시 옥상으로 가니 또 눈을 감았고, 돌아오면 삑삑거렸다. 세 번의 방생 시도가 실패했다.
카페 SNS에 어찌할지 물었다. 손님들이 조언해줬다. 일단 꿀물을 먹이니 딱새가 기운을 차리는 듯 했다.
그리고 영업을 시작했다. 드립 커피를 만드는데 맘이 무척 쓰였단다. 삑삑 소리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고. 오후 4시가 됐다. 대원씨는 카페 마감 전 1층에 내려왔다. 근처 울창한 숲에 놓아주려 했다. 그런데 딱새가 또 눈을 스르르 감는 게 아닌가!
고민 끝에 그는 작은 생명을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 대원씨와 딱새의, 16일간의 함께살이가 시작됐다.
형도 : 아기 새 육아가 본격 시작된 거군요(웃음). 어땠나요.
대원 : 새벽 4시면 '삑' 하고 소리가 나요. 난생처음 새 소리 때문에 깬 거죠. 찾아보니 1시간에 한 번씩 먹이라 돼 있더라고요. 최대한 먹이되, 스스로 먹을 수 있게 유도했어요.
형도 : 강제 아침형 인간이 되신 거네요. 뭘 좀 먹던가요.
대원 :삶은 달걀노른자를 먹였지요. 잘게 으깨고 식혀서요. 가장 영양분이 많이 필요할 때라 하더라고요. 골절이 생기기 쉽다고요. 그래서 어린 새가 먹는 비타민도 섞어서 줬어요.
형도 : 잘 먹던가요.
대원 : 엄청 잘 먹어요. 그런데 어느 샌가부터는 노른자를 지겨워하더라고요. 어떡하나 싶다가, 생밀 웜(살아 있는 먹이용 곤충)을 사야 한단 얘길 들었지요. 100마리+100마리를 샀습니다. 잘 먹더라고요.
형도 : 그래서 또 사셨나요.
대원 : 이번엔 좀 큰 걸 사자 해서, 밀웜 7000마리를 샀는데요(헉). 우글우글하더라고요. 열자마자 본능적으로 다시 닫았지요. '잠결에 해야겠다' 싶어서요(웃음).
형도 : 정말, 사진 보니 엄청 빨리 크더라고요.
대원 : 아침에 일어나 만지면 고통스러워해요. 성장통을 겪는 것 같았지요. 실시간으로 크는 게 보였어요. 잠깐 졸다 일어나면 부리 색이 더 검어져 있고요. 꼬리도 점점 길어지고요. 색깔도 변하고 정말 신기했지요.
형도 : 그새 정도 많이 드셨겠어요. 가까워지셨을 테고요.
대원 : 나중엔 베란다 안에서 편히 다니게 했는데, 등에 똥 싸고 난리였지요(웃음). 정이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먹이를 줘서인지 저에게 오고, 따르는 게 있었지요. 친근히 여겼나 봐요.
형도 : 한편으론 언제 보내야 하나 생각도 하셨겠고요.
대원 : 제법 힘이 생겨 제 손에서 벗어나려는 걸 봤어요. 이제 갈 때가 됐다 생각했는데, 장마라 비가 멈추지 않는 거예요. 걱정이었죠. 천적 만나면 어떡하나. 그래서 가끔 겁도 줘보고 그랬어요.
형도 : 그러게요. 야생에서 살아야 하니 걱정이 되셨겠지요.
대원 : 돌아갈 곳도 생각해뒀었어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었지요.
"잘 살아라." 아기 새로 만나 16일 만에 꽤 많이 자란 딱새를, 손을 들어 날려주었다.
형도 :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딱새는 훨훨 잘 날아가던지요.
대원 : 1차로 헤어졌는데요. 저를 벗어나지 않고 근방을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고민이 또 많아졌지요. 이걸 어떡하나, 여차하면 다시 데리고 그냥 살아야 하나. 그러다 얘가 호수 쪽으로 날아갔는데, 팔뚝만 한 잉어가 '첨벙', 하고 뛰는 소리가 들린 거예요.
형도 : 세상에, 설마…딱새를요?
대원 : 순간 간이 훅 떨어졌어요. 심장이 덜컹했지요. 딱새에게 "쭙쭙"하고 수신호를 보내면 제게 왔었거든요. 계속 수신호를 하며 부른 거예요.
얼마나 수신호를 많이 했던지, 나중엔 손에서 쥐가 났다고. 그리 모기가 잔뜩 무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돌아다니고 서성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삑"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딱새를 다시 잡았다.
형도 : 불안하고 초조했을 상황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하셨나요.
대원 : 장소를 다시 잡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걸어 다니며 살폈지요. 호수로 내려가는 길목에, 새 소리가 엄청 많이 나더라고요. 비슷한 딱새 소리도 나고요. 여기 풀어주는 게 좋겠다 싶었지요.
형도 : 이번엔 진짜 이별하셨겠군요.
대원 : 두리번거리다가 "잘 가라" 하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슝 날아가는 거예요. 너무 서운한 거예요, 하하. 근데 나중에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아기 새가 완전히 독립할 땐 원래 뒤도 안 돌아보고 멀리 간다고요. 그걸 듣고 '아, 정말 갔구나' 싶었지요.
형도 : 분명 잘살고 있을 거예요. 잘 키워주셨으니까, 잘 보호해주셨으니까.
대원 : 이게 뭔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잡으면 따뜻한 게 느껴지는 솜털 같은 존재였는데. 생명력이 너무 작아서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엄마가 나 캠프 보낼 때 이런 맘이었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선한 일이란 말에, 그는 아니라 했다. 경도되거나 과몰입하지 말고 그저 현상으로 봐달라고. 그러나 그 마음이 어디서 온 건진 더 알고 싶었다. 대원씨는 오랜 기억을 꺼냈다. 학교 다닐 때 집 근처 골목에서 새끼 고양이를 봤다. 사고를 당했는지 하체가 짓이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119에 신고했다. 그리 보낸 뒤 전화가 왔다. 혹시 키울 생각이 있는지 물으려다, 119대원은 아니라며 전화를 끊었다.
대원씨는 인터뷰하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며 울었다. 아마 숨졌을 거라고. 그런 경험이 쌓여 있었다. 그 뒤론 한강에 버려진 강아지도 살렸고, 무지개다릴 건널 때까지 함께 살았다. 딱새도 그랬다.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형도 : 깊숙한 곳엔 그런 마음이 있으셨던 거군요.
대원 : 인간에게 지워진 짐 같단 생각을 해요. 응당 느껴야 할 양심의 가책이기도 하고요.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고, 그리 많이 휘저어 놓았잖아요. 그래서 회피하고 싶진 않아요. 생명을 책임진단 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라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요. 그런 미시적인 게 해결돼야 사회가 올바르게 돌아갈 거예요.
그런 게 기본이 됐음 좋겠단 힘 있는 말들. 자본주의 사회서 살아가며 자주 잊기 쉬운 일들. 그 역시 카페를 하며 조바심이 날 때가 있었다. 원래 철학은 사람이 우선이었으나, 자꾸 돈을 바라보게 됐다. 더 빨리 커야 한다고, 그래야 내 가족 챙긴다고.
그 무렵 딱새를 만났다. 작은 생명은 무언가 다시 일깨워줬다. 대원씨가 말했다.
"딱새 덕에 카페, 사람, 생(生)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직은 정확지 않지만요. 그 모든 것들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 온다면 딱, 좋겠습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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