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에서 만난 이승만·트루먼·백선엽...모여라 보수 꿈동산

김찬호 기자 2023. 8.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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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 “높은 분들 결정”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된 이승만과 전 대통령(오른쪽)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김찬호 기자

[주간경향] 경상북도 칠곡군은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을 간직한 곳이다. 대구, 안동, 구미 등 주변 도시에 가려져 있지만 역사적 가치로만 보면 이들 지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전쟁사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칠곡군 가산면은 성지와도 다름없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22㎞ 떨어진 곳, 상주와 안동에서 대구로 통하는 5번·25번 도로가 합쳐지는 곳, 왜관으로 향하는 908번 지방도로의 시발점이 되는 곳, ‘다부동’의 존재 때문이다.

‘다부동’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라는 행정구역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곳은 지명보다 역사적 사건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시기에 있었던 사건을 일컫는 고유명사 ‘다부동 전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일방적’ 남침으로 시작한 한국전쟁에서 국군은 초반 열세에 놓였다. 전 국토의 10% 정도만 남은 그해 8월, 국군과 미군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낙동강을 낀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 약 55일간 치열한 사수전을 펼쳤다. 자료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낸 ‘6·25전쟁 주요전투’에 따르면 이중 8월 2일부터 28일까지 칠곡군 왜관읍과 가산면 다부동 일대에서 북한군 제1·제13·제15사단 및 제105전차사단의 진격을 저지해 대구를 사수한 일을 통칭 ‘다부동 전투’라고 부른다.

‘다부동 전투’는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라는 김일성의 지시를 꺾는 시발점이었다. 특히 승리의 주역 중 하나가 한국군 제1사단이라는 점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한다. 당시 사단장이 백선엽 장군이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81년 ‘다부동전적기념관’이 문을 열었고,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충혼비, 전승비 등을 세웠다. 1951년 주민들이 세웠다는 백 장군 ‘호국구민비’ 역시 2003년 기념관 내로 옮겨왔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실 그대로’의 역사만 남긴 기념관은 모범사례에 가까웠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념관은 아니었지만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국군, 미군 등을 추모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었다. 다만, 이런 식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정치에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난 7월, 딱 한 달 동안 다부동전적기념관에는 동상 세 개가 들어섰다. 모두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만든 동상이다. 특정 인물의 동상은 개인에 대한 추모, 참배의 도구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 이용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다원화된 사회에서 인물 관련 동상을 제작하거나 특히, 국가 관련 공간에 동상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인물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역 주민들은 동상 세 개를 두고 “높은 분들의 결정에 의해 섰다”고 했다. 이들 동상의 주인공은 각각 이승만 전 대통령, 백선엽 장군,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다.

대체 왜 이곳에 동상이 섰나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된 이승만과 전 대통령(오른쪽)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김찬호 기자

지난 8월 7일 경상북도 칠곡 현장을 찾았다. 최고 37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한창이었다. 다부동전적기념관은 다부 나들목(IC) 지척에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차로 세 시간, 부산에서 출발하면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주변에는 산, 도로 등을 제외하면 관광지, 유흥거리 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상을 세운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찾을 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곳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날 점심 무렵 방문한 전적기념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었다.

기념관 부지는 설치된 계단을 기준으로 총 3개 층으로 나눌 수 있었다. 1층에는 주차장과 행정건물 그리고 각종 전차, 장갑차, 곡사포 등 군사 관련 무기가 전시돼 있었다. 가장 주요한 건물인 기념관은 별도의 건물로 3층에 있었다. 만약 7월 이전에 방문했다면, 2층은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 정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 동상 세 개가 해당 공간을 채웠다.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설치된 백선엽 장군 동상 / 김찬호 기자

어느 방향으로 접근하든 계단을 이용하면 무조건 동상과 마주친다. 3층에 있는 기념관 건물로 향한다면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중 하나는 지난 7월 5일, 2층 한 구역에 세운 백선엽 장군의 동상이다. 백 장군은 실제로 다부동 전투에 참전했다. 인물에 대한 의미를 더하고, 빼며 논란을 자초하지 않는다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지난 7월 27일 백 장군 동상이 정면으로 바라보는 지점에 세운 높이 4.3m, 넓이 1.57m, 무게 3t으로 제작한 동상 두 개다. 동상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편에 있는 동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그 옆에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선 동상은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다. 한·미 두 전직 대통령이 경상북도 칠곡에 나란히 동상으로 서 있다.

동상에 대한 관람객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약 6시간 남짓 머물렀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을 포함해 모두 24명의 관람객을 만났다. 이중 ‘기념관에 세워진 동상의 존재를 미리 알고 왔다’거나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를 안다’고 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동상에 대해 설명한 후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대구에서 남편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A씨는 “이승만 동상인지 몰랐고, 저게 왜 여기 세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저 동상은 여기 있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실제 전투에서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그 옆에는 미국 대통령도 있던데 무슨 기준으로 동상을 세우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반면 영천에서 왔다는 김주섭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 최고의 엘리트 공부를 한 사람이자 건국 기초를 세운 사람이고,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에 개입해 공산화를 막았다”며 “동상이 들어설 만하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함께 온 관람객이 많았다. 대구에서 온 B씨는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긴 했는데 아이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논란도 있는 만큼 굳이 설명해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 동상을 왜 여기 세운 것인지 기념관 관계자에게 물었다. 해당 관계자는 “동상을 세우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건 꽤 됐는데 결정이 나지 않다가 7월에 급물살을 탔다”며 “기념관 측이 제작 비용을 대거나 한 것은 없고, 부지만 제공했다. 만료 시점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인물들을 둘러싼 논란 등에 대한 질문에는 “실제로 동상이 세워진 후 항의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CCTV를 추가 설치하는 등의 조치는 있었다”며 “다만 기념관은 동상제작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올해 1월 1일부터 기념관이 칠곡군 소속에서 경상북도 소속으로 변경된 만큼 동상 관리 및 예산편성은 그쪽에서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지난 7월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정리하면 이렇다. 동상이 이곳에 세워진 명분에 대해서는 관람객도, 기념관 측도 모른다. 민원이 제기됐고, 경상북도가 받아들여 동상을 세우고, 향후 예산을 편성해 관리한다는 것이 밝혀진 내용의 전부다. 동상이 필요하냐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는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닌 해당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다는 의미다.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동상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의 목소리가 더 큰 데 따른 일시적 결과일 뿐이다.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쉽게 추정해볼 수 있다.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 동상은 2017년 제작됐다. 건립부지를 찾지 못하다가 최근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동상을 ‘왜 칠곡에 세웠느냐’라는 물음의 답은 제막 기념식 당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한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지사는 “2021년에 ‘이 동상이 2017년도에 완성이 됐는데 세울 데가 없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며 “경북도가 우리나라에서 땅이 가장 넓으니 아직도 이런 분 모실 장소가 많이 있다. 추천해 주면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 ‘왜 이승만·트루먼 동상인가’ 하는 점은 윤석열 대통령이 설명한다. 제막식 당일 윤 대통령은 화환과 함께 강승규 사회수석을 보내 메시지를 전달했다. “6·25전쟁 당시 한·미 두 나라 정상의 동상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해 이 나라가 나아갈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선각자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미 두 전직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는 모양새다. 정말 그럴까.

동상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을까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알고 보면 진풍경이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한국전쟁 중에 여러 차례 정치파동을 만들었다.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 통과가 핵심이었다. 본인의 집권 연장이 목표였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은 5월 25일 0시를 기해 임시수도 부산을 포함한 영남과 호남 지방에 잔여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또 50여명의 국회의원을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명분으로 연행했다. 이어 최종 8명을 구속했다.

당시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방미 중이던 존 조지프 무초 대사를 한국으로 급히 귀환시키고, 5월 30일 계엄령의 조기 해제를 촉구하는 입장을 이승만에게 전달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내정에 간섭한다고 화를 냈다. 결국 미 국무부는 같은날 계엄권을 유엔군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당시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빨리 회신하라고 지시했다. 31일 클라크 장군은 미 합참에 전문을 보내 이승만 정부를 대신할 과도정부를 수립할 방안을 검토한다. 1952년 이후 주요 국면마다 계속해서 나오는 미국의 ‘이승만 제거계획’의 시작이다.

트루먼 역시 이승만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6월 2일 이승만은 국회가 24시간 내에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를 해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 대사관 대리대사 라이트너는 트루먼이 이승만에게 발송한 친서에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트루먼의 승인을 받아 첨가했다. 결과적으로 클라크 장군이 1952년 7월 5일 ‘비상계획안’이란 이름으로 미 행정부에 보고한 이승만 제거계획은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3년 이른바 ‘에버레디’ 계획 등을 준비하며 미국은 지속적으로 이승만 제거를 염두에 뒀다. 반공포로 석방을 비롯한 휴전문제가 엮인 1953년 이후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트루먼과 이승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 윤 대통령이 말한 한미동맹의 표상이 상대국 지도자를 제거하는 작전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누가 역사를 이용하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처럼 역사적으로 보면 한 공간에 선 동상 3개가 모두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정해진 수순을 잘 따라가는 것처럼도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으로 격상한 국가보훈부는 두 가지 눈에 띄는 업무를 추진했다. 하나는 백 장군 재평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 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한 데 이어, 7월 5일 열린 동상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지난 7월 24일 국가보훈부는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에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적은 문구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 내용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비고에 나오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문구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승만 재평가다. 특히 김황식 전 총리가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지원한다. 이는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8명과의 오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기념관 건립을 도와달라는 뜻을 전했고, 이 회장 역시 “적극 돕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1일 미리 배포한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 개최 인사말에서 “이런 괴물기념관이 건립된다면 광복회는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행태는 이철우 지사의 말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지사는 “세계 각국을 돌아봤을 때 선진국일수록 영웅들의 동상이 우후죽순 많이 서 있다”며 “그분들이 다 공만 있고 과가 없느냐? 공과가 다 있다. 그런데 공이 크고 과가 작으면 공을 위주로 그렇게 동상을 많이 세운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공이 크면 과는 덮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공과 중 무엇이 더 큰가를 평가할 기준이 없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평가를 바꿔도 문제될 것이 없다. 기념관, 동상에 집착하는 것 역시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 개인적 기억이 집단의 기억, 즉 역사가 되는 데는 사회적 의미를 매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기념관, 동상 등의 존재다. 1인 독재 체제의 북한, 역사적 인물을 신격화한 군국주의 일본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정치에 잘 활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전문가들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역사를 부각하고 빼는 행위를 경계하고 비판한다. 역사학자 알렉스 폰 턴즐만은 “조각상은 역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에 대한 기록”이라며 “조각상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특정 시점의 누군가가 생각한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헬렌 카는 “우리가 얼룩진 과거를 무비판적으로 고집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현재를 더럽힌다”고 말했다. 헬렌 카는 역사학자 E. H 카의 증손녀다.

윤석열 정부는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있는 인물의 공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들 인물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다는 점은 다양한 비판을 낳는다. 사회통합을 해칠 뿐만 아니라 국민 사이에 갈등의 골만 깊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역사를 수정해 지지층 결집을 노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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