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흉기난동, 온라인 자극이 범행 유발 악순환”

정희완 기자 2023. 8.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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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인터뷰

[주간경향] 최근 조선(33)과 최원종(22)의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으로 사상자 10여명이 발생했다. 이들은 모두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은 최원종이 조선의 범죄를 모방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최원종은 범행 전 조선의 사건을 검색하는 등 최소한 자극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도 흉기난동 사건 발생 이후 모방범죄로 볼 수 있는 사건이 몇 차례 일어난 적은 있다. 다만 최근 범죄 양상은 이전과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온라인이 오프라인 범죄를 양산하는 주요 거점이 됐다는 점이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54)은 온라인에 올라온 자극적인 글이 오프라인 범죄로 이어지고, 이런 범죄 실행을 고리로 온라인에서 다시 오프라인 범죄를 부추기는 악순환의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배 전 분석관은 “이런 구조 속에서 이들의 범죄를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 전 분석관은 살인을 예고하는 글이 대거 올라오는 상황을 두고 “조선이나 최원종의 범행을 심리적으로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살인예고 글 등의 자극이 지속하면 어느 시점에 최원종처럼 밖으로 나가 범행을 하는 사례가 툭 터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이대로 두면 앞으로 차량과 흉기 외에도 방화나, 공포를 조성하기 위한 모의 폭탄 등의 범죄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이 지난 8월 8일 경기 고양에 있는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희완 기자
“살인예고 글, 심리적 모방…만족감 느껴
불만을 해소할 기제 없어 범죄로 표출
‘묻지마’ 및 ‘칼부림’ 등 표현 지양해야”

그는 근본적으로 “여러 불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제가 우리 사회에 없기 때문에 범죄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보다는 범행의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예방책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 전 분석관은 언론에서 주로 쓰는 ‘묻지마’나 ‘칼부림’ 등의 표현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배 전 분석관은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범죄학 강사,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을 지냈다. 지난 8월 8일 경기 고양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배 전 분석관을 만났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의 공통점은 사람이 많은 넓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했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으로 보나.

“간단하게 말하면 관심을 받으려는 것이다. 사람의 주목을 끌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들어 달라는 의도로 범행을 했다고 본다. 이른바 ‘관심종자’로 볼 수 있다. 또 지하철역 주변 등 다중이용 시설은 사람들이 계속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을 깊이 알 필요 없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망상에만 집중하면 된다. 조선이 한곳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화를 통해 그 사연을 알았다면 살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사망한 피해자는 저렴한 방을 구하기 위해 신림동에 왔다.”

-범행 자체는 상당히 계획적인 것으로 볼 수 있나.

“미국 FBI는 이런 유형의 범죄를 ‘어서리티 킬링(authority killing)’으로 분류한다. ‘권위살인’으로 번역한다. 권위를 가진 대표자를 살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자신이 가진 어떤 불만 등을 표출할 때, 대표적인 사람과 공간을 선택해 자신의 원하는 방식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조선과 최원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범행 전에 머릿속에서 프로그램을 돌려봤을 것이다. 어떻게 흉기를 구해 누구를 상대로 범행을 할지 등. 폐쇄회로(CC)TV가 어디 있는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 설정한 대상만 신경 쓰는 게 이런 범죄 형태의 특성이다.”

-최원종은 조선의 범죄를 모방한 것으로 봐야 하나. 경찰은 모방범죄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나는 모방했다고 본다. 신림동 사건 이후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각각 남성, 여성을 대상으로 살인을 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양쪽이 치고받는 모습이었다. 최원종도 여기에 ‘참전’을 했다. 흉기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발을 들인 것이다. 물론 참전을 한 모두가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런 자극적인 글들과 함께 한때 인터넷에 돌았던 조선의 신림동 범행 영상 등을 보면서 최원종이 자극을 받아 범행을 마음먹었다고 본다. 실제 최원종은 조선 사건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기도 했다.”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조선이 지난 7월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출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을 예고하는 취지의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지하철, 공항, 버스터미널, 놀이공원, 야구장 등 장소도 다양하다. 100명 넘게 검거됐다. 어떤 심리인가.

“지금 살인예고 글이 마치 일종의 ‘챌린지’처럼 번졌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조선과 최원종 사이를 표류하고 있다고 본다. 조선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고, 학교 밖 청소년이자 조손가족이었다. 소년부 송치 전력이 14건이나 있다. 소년범죄의 재범 및 사회복귀 문제 등도 걸려 있는 것이다. 최원종은 학업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비치고 있다. 살인예고는 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적 모방이 아니라 ‘심리적 모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만족감과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저런 불만을 어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할 기제가 우리 사회에 없어서 범죄적 기제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이런 흉기난동 사건과 모방성 범죄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최근 사건의 양상과 다른 점은.

“최근 범죄는 사이버 공간의 양극화 및 집단화와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도 단일 사건 이후 모방범죄가 몇 건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긴 시간 동안 연쇄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과거에는 사건이 일어나면 이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선에서 끝났다. 지금은 사이버 공간에서 참전이 이뤄진다. 그것도 집단적이다. 단순한 애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에 자극적인 글이 올라오면 댓글 등을 통해 소통하면서 범행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면 중간에 최원종처럼 밖으로 나가 실제 범행을 하는 사례가 터질 수 있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발생 범행을 소재 삼아 다시 자극적인 글이 올라온다. 악순환이다. 또 여기에는 경제적 이득까지 끼어 있다. 신림동 흉기난동 CCTV 동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진 적이 있었는데, 경찰에 동영상 삭제를 요청했지만 미적거리지 않았나. 조회 수가 올라가면 돈이 되기 때문 아닌가 싶다. 개개인이 범행에 이르게 되는 이런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다.”

-살인예고 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발생을 쫓는 것만으론 역부족일 것이다. 선제적으로 온라인상의 과열된 분위기를 식히는 게 급선무다. 살인예고 글이 많이 올라오는 특정 커뮤니티 등에 협조를 요청해 잠시 운영을 중단하는 게 방법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차량, 흉기 외에 방화 등의 추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 모의 폭탄 사건, 실제 방화가 아니더라도 연기만을 피워 공포를 조성하는 행위도 나타날 수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난 8월 3일 범행에 사용된 차량이 멈춰서 있다. 조태형 기자

-이런 흉기난동 사건을 언론에서는 주로 ‘묻지마 범죄’라고 지칭한다.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나. 이런 범죄의 개념이 명확히 정립된 게 없는 것으로 안다.

“‘묻지마’라는 표현은 수사기관이 책임을 면피할 수 있는 알리바이로 작동할 수 있다.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는, 어쩔 수 없는 범죄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따라서 지양해야 한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도 그렇다. ‘묻지마’나 ‘칼부림’이라는 표현은 잠재적 범인들에게 자극을 줄 우려가 있다. 묻지마는 ‘나도 해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 ‘무차별’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더 건조한 용어를 쓰는 게 맞다고 본다. ‘흉기난동’ 정도가 좋을 것 같다. 가령 조선 사건의 경우 ‘신림동 흉기난동’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신림역’처럼 구체적인 장소를 붙이면 사당역, 신도림역 등 다른 구체적인 장소를 범죄 장소로 연상케 할 수 있다. 어느 하나의 단어에서 범행의 자극을 받았다고 진술한 범인들이 실제 있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부를지도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사건 발생 이후 여러 사회적 요소가 또 다른 범죄를 자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앞으로 조선이나 최원종의 재판 과정도 걱정이 된다. 특히 조선은 법정에서 영웅이 된 것처럼 일장 연설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법정 밖에 있는 이들에게 범죄적 자극을 주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런 발언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언론과 학자 등 전문가들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본다.”

-경찰청은 지난해 1월 ‘이상동기 범죄’ 연구 및 대책 마련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한다.

“일본은 2000년부터 10년 동안 이런 유형의 범죄를 연구·분석했다. 한국은 이제 1년 조금 넘었는데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연구 조직이 필요하다. 지금 욕을 좀 먹더라도, 차분하게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수사와 재판, 교정시설 수감 등 모든 절차에 별도의 연구 담당자가 붙어서 꾸준하게 분석하고 자료를 생성해 축적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사법입원제도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실효성이 있을까.

“범인들은 형량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에겐 관심받는 게 중요하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를 논의해 보는 것 자체는 좋지만, 이번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법입원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다만 이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예산과 인프라 문제도 함께 거론해야 한다.”

지난 8월 6일 서울 강남역 교차로에 경찰특공대의 장갑차가 배치돼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조선은 검사 결과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최원종도 진단검사를 했으나, 측정 불가 판정이 나왔다. 사이코패스 여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진단검사에서 40점 가운데 25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은 범죄의 유무죄와 양형과는 전혀 무관하다. 재판 과정에서 유죄 증거가 다소 모호할 때 유죄라는 ‘심증’을 형성케 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순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민들에게 ‘사이코패스니까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사회 시스템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개인의 성향만이 범죄의 원인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선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뭔가 하나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사회의 각 영역에서 진단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복지의 사각지대 등 문제는 나의 전문 영역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죄적 측면에서 보면 학교 밖 청소년 문제, 소년범의 재범 방지 등을 보완해야 한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전과가 누적된 청년들의 일자리나 교화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에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정신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또 큰 틀에서는 사이버상의 혐오, 괴롭힘이나 반사회적 문화 등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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