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만 22명, '항일의 섬' 완도 소안도로 떠나는 역사여행

서충섭 기자 2023. 8. 1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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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섬] 1300가구 집집마다 내걸린 태극기가 자부심
미라리 해수욕장과 천연기념물 상록수림 피서지로도 각광

[편집자주] 전남도가 2015년부터 섬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섬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가고 싶은 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풍광, 생태, 역사, 문화자원이 풍부한 전남의 섬들이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과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노력으로 감춰져 온 잠재력을 드러내며 점차 빛을 발하고 있다. <뉴스1>이 '가고 싶은 섬 사업'을 통해 특색 있고 매력적인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한 전남의 주요 섬을 직접 찾아 그곳만의 매력을 들춰봤다.

완도 소완도 항일운동기념관 앞에 세워진 소안항일운동기념탑. 1909년 소안도 주민들이 일본이 관리하던 당사도 등대를 공격하는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한 것을 기념해 2003년 건립됐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완도=뉴스1) 서충섭 기자 = 지난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소안도는 전남 완도군의 부속 도서로 인구 2500명이 거주하고 있다. 과거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뭍으로 올 때 물결이 거칠다가도 소안도에 상륙하면 안심이었기에 '소안'(所安)의 이름이 붙었다.

'편안한 장소'라는 뜻과는 달리 이곳은 독립운동으로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가 22명이나 되는, 면 단위로는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배출됐다.

일제가 한반도를 침탈하자 소안도 주민들은 이에 맞서 항거하며 수백명이 '불령선인'(일제를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끌려갔던 뜨거운 섬이다.

소안도의 항일운동 역사가 알려진 것은 1980년부터다. '남해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탓에 이념의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지금의 소안도 주민들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과거 선조들의 항일운동 역사를 자랑스럽게 알리며 이제는 휴양지로 변모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만세'를 타고 독립운동의 섬으로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로 향하는 세 척의 철선의 이름은 각각 '대한', '민국', '만세'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TV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송일국의 세쌍둥이 아들과 이름이 같다.

항일투쟁의 역사가 물씬 느껴지는 세 척의 배 중 '만세'호를 타고 노화도를 거쳐 1시간만에 도착한 소안도.

배에서 내려 소안도로 접어들면 진입로에 늘어선 수십개의 태극기가 마치 국빈을 맞이하듯 경건하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소안도 읍내로 들어서는 둑방길에는 대형 태극기 부표가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이곳이 항일운동의 섬임을 묵묵히 외치고 있다.

완도 소안도 소안항 인근 담수호의 태극기 부표./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1630개의 친환경 부표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나라사랑의 의미와 청정바다 보존 운동 의지를 담았다.

읍내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산길로 접어들면 독립운동가 송내호 선생(1895~1928)의 묘소가 보인다.

송 선생은 소안도가 배출한 독립운동의 거목이다. 1911년 서울에서 교사 교육을 받고 고향에 돌아온 송내호는 완도군 노화도의 사립 영흥학교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 독립운동의 혼을 불어넣는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활발했던 1919년 완도읍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무장투쟁단체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그럼에도 소안도에서 잇따라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했다가 세 차례 투옥돼 34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송 선생의 활약으로 소안도는 함경도 북청과 부산의 동래와 함께 항일운동의 3대 성지로까지 불린다.

완도 소안도의 송내호 선생 묘소/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송 선생 묘소를 뒤로하고 다시 소안면으로 향하는 발길을 서둘러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서 휘날리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소안도의 1300가구는 물론 식당, 관공서, 학교, 은행까지 빼놓지 않고 태극기가 내걸렸다. 인구 2500여명의 소안도에서 도합 1500개는 족히 넘는 태극기가 펄럭이며 선조들의 항일운동 의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태극기를 항시 내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국기법은 각종 국경일이나 국장, 정부가 따로 지정한 날에만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한 날에는 게양할 수 있기에 완도군은 365일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군 조례를 개정했다. 그 덕분에 소안도는 1년 365일 태극기가 쉬지 않고 나부끼는 '대한독립만세'의 섬이 됐다

태극기 나부끼는 완도 소안도의 민가./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100년된 사립 소안학교, 이제는 도서관이 된 역사의 현장

태극기의 물결을 헤치고 소안면 항일운동기념공원으로 접어들면 높이 8미터의 새하얀 돌탑과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동상이 맞이한다.

2005년 세워진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다. 원래 1990년 소안면에 세워진 기념탑은 비자나무가 무성한 비자리의 검고 하얀 갯돌을 괴어 만들어졌었다.

과거 독립운동에 투신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면민들이 성금을 내 기념탑을 만들었는데, 2003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을 이곳 항일운동기념공원에 조성하면서 2005년 새롭게 기념탑이 세워졌다.

해마다 5월이면 이곳에서 소안항일운동기념 전국 학생문예백일장 대회가 열려 전국에서 참여한 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주제로 백일장 실력을 겨룬다.

또한 백일장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이 7월15일 열리는 소안항일운동기념 추모제에서 상을 수여받는 장소다.

기념탑을 중앙에 두고 우측에는 일제시대 소학교 모습을 한 건물이 눈에 띈다.

소안도의 사립 소안소학교 건물/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1923년 문을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사립 소안학교 건물이다. 원래 건물이 유지됐더라면 올해로 100년을 맞았겠지만 아쉽게도 2005년 옛 학교 터에 복원된 건물이다.

사립소안학교도 항일운동의 산물이다. 본래 인적이 드문 소안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시기다. 일본군을 피해서 들어온 임란 피난민들에 의해 소안도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다 400년 뒤 다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소안도 주민들은 투쟁에 나섰다. 사도세자의 5대손이었으나 친일파로 변절한 이기용 자작이 소안도의 토지를 사유화하자 주민들은 13년간 법정 투쟁을 벌였다.

1922년에야 토지를 되찾은 소안도 주민들은 성금을 모아 사립소안학교를 세웠다. 인근의 노화, 청산, 제주에서도 유학생이 몰려올 만큼 성황을 이뤘으나 지금은 작은도서관으로 바뀌어 공공도서관이 없어 불편을 겪던 지역민들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탑의 좌측으로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자리했다. 일제에 항거한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의 조형물과 소안도가 배출한 90여명의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 담겼다.

이곳에서 만난 김영준 문화해설가(70)로부터 소안도의 피맺힌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은 일제는 1909년 소안도 동남쪽 해안 절벽 위에 당사도 등대를 세웠다.

일제가 서해에서 남해로 이어지는 바다 길목에서 자국 상선과 군함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소안도 주민들에게는 마구잡이로 해산물을 어획하고 곡물과 목재 등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1909년 2월24일 찬바람이 불던 밤 새벽 의병 35명이 등대를 습격, 이 과정에서 일본인 등대 간수 등 5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의거를 주도했던 소안도 주민 4명은 일본 헌병대에 의해 처형됐다.

소안도 소안항일운동기념탑에서 김영준 문화해설가가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을 소개하고 있다./뉴스1 ⓒ News1 서충섭 기자

앞선 토지반환 소송과 더불어 소안도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은 1920년대까지 계속된다. 당시 6000명의 주민 중 800명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통제 대상이 됐을 정도다.

김 해설가는 "당시 주민들은 이웃이 옥살이를 하는데 우리가 이불 덮고 편안히 살 수 없다고 해 이불도 덮지 않고 지낼 만큼 강경하게 투쟁해왔다"며 "소안도 주민들이 지금도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있는 데에는 선조들의 항일운동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미라리 상록수림에서 더위 피해볼까

뜨거운 항일운동 역사를 뒤로 하고 소안도 미라리로 향하면 천연기념물 미라리 상록수림이 펼쳐진다.

미라리 해수욕장에 있는 해안가를 따라 400m로 펼쳐진 상록수림은 메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광나무, 하박나무, 보리밥나무 등 700여 그루가 숲을 조성하고 있다.

바닷바람을 막고 마을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상록수림은 이제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과 더불어 관람객들의 쉼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완도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소안면사무소 제공)/뉴스1

함께 있는 미라리 해수욕장은 소안도의 온화한 기후조건 덕분에 수심이 깊지 않고 맑은 바닷물이 펼쳐져 한적한 경치를 자랑한다.

모래 대신 주먹만한 각양각색의 '몽돌'들이 펼쳐진 미라리 해수욕장은 물놀이에도, 해변 산책에도 제격이다.

인근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펜션들이 자리잡고 지역에서 생산된 해초 밥상을 선보이고 있다.

소안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359m의 가학산을 중심으로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미라에서 가학산을 지나 맹선으로 향하는 코스는 5㎞를 걷는 데 2시간이 소요되며 비교적 난코스이지만, 비동에서 북암으로 향하는 코스는 평지 위주로 1시간이 소요된다.

가학산 정상에서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둘 다 볼 수 있어 연말 연시 탐방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소안도와 더불어 제주도, 울릉도에만 핀다는 노란 무궁화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볼거리 중 하나다. 이월리 특별보호구역 인근 자생지에서만 자라는 노랑무궁화는 외딴 섬 소완도에서 꽃피온 항일운동의 정신을 상징하는 꽃이다.

지역 주민들은 과거 전두환 군부독재시절 전씨가 자기 별장에 심는다며 소안도에서 노랑무궁화를 채취해 가기도 했다고 말한다.

소안도의 노랑무궁화(소안면사무소 제공)/뉴스1

소안도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딛고 새로운 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계창 소안면장은 "역사와 문화, 천혜의 자연자원이 풍부한 소안도에서는 천연기념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선조들의 항일정신까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며 "국가보훈부와 더불어 항일운동의 역사를 더욱 잘 살린 관광콘텐츠를 조성하는 등 항일운동관광지로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zorba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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