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아는 이 남자’ 원했다…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넣어두시라
일일드라마 ‘금이야 옥이야’(KBS1)는 잔잔한 가족극처럼 보이지만, 꽤 진보적인 내용을 담는다. 새로운 남성 돌봄 주체를 그리기 때문이다.
금강산(서준영)은 아내가 사라진 뒤 10년 동안 딸을 키우는 싱글대디이다. 그는 아내도 없는 처가에 살며 처가 살림과 장모의 반찬가게 일을 도맡아 하면서, 황만석 회장(김호영)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반찬가게 일, 요양보호사 일, 살림 등은 모두 돌봄 노동이다. 그는 돌봄의 화신이다. 어릴 때부터 떠돌던 아버지 대신 할머니를 간병했다. 20대 때부터 홀로 딸을 키웠고, 지금도 요양보호사 일을 어찌나 잘하는지, 완고한 황 회장의 신뢰를 얻어 대기업 정직원 채용을 제안받았다. 여느 남자라면 제안을 받아들였겠지만, 금강산은 대신 아내 찾기 캠페인을 부탁한다. 그리고 사망 소식을 듣는다.
더 놀라운 점은 금강산의 딸 금잔디(김시은)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족들에겐 비밀이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금강산이 결혼하면서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결혼의 의미를 “내 아~를 낳아도”라고 생각하는 남성이라면 친자가 아닌 아이를 키우는 결혼을 무효라고 할 것이다. 결혼의 의미가 성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이라면 아내가 사라진 결혼은 이미 파탄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금강산에게 결혼과 가족의 의미는 돌봄에 있다. 그러니 애지중지 키운 딸이니까 내 딸이 맞고, 힘든 처가살이가 아니라 잔디를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가족 공동체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금강산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남성과는 완전히 상반된 욕망을 추구하는 새로운 인간형이다. 특히 권김현영은 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2017)에서 “많은 한국 남자들이 자신의 남자다움의 근거를 생계부양자와 보호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남근과 성욕에 집중한다”고 분석하였다. 한국 특유의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를 생각하면, 금강산은 미스터리하고 획기적인 남성상이다. 드라마는 금강산과 대조적인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고, 여자를 속이고 착취하고 연애하려는 한량, 제비이다. 금강산은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아버지의 잘못을 수습하느라 바쁘다. 이런 부자 관계는 과거의 남성성과 절연하고 새로운 남성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성찰을 뚜렷이 드러낸다.
금강산은 두 여성에게 구애를 받는다. 그의 직업, 경제력, 사춘기 딸 등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 누나 장호랑(반민정)은 학원 원장으로, 남편의 바람기에 질려 이혼하였다. 그는 금강산의 지고지순함에 반했다. 옥미래(윤다영)는 황 회장의 손녀이자 잔디의 학원 선생으로, 첫사랑과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그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남자임을 알고 헤어진다. 그러곤 금강산에게 고백한다. 그동안 곁에 있던 금강산의 돌봄 능력에 서서히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온·오프라인에는 인셀(비자발적 독신남)들의 증오와 절망이 흘러넘친다. 여자들이 원하는 남성의 덕목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지금 새로운 남성 돌봄 주체를 그리는 것은 정책적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1월10일 국회에서는 ‘이젠 남성을 집으로: 남성의 돌봄 확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맞벌이가 보편화되었지만, 남성의 돌봄 참여는 늘지 않았다. 맞벌이 가구에서 여성의 돌봄 시간이 남성의 3배에 이른다. 이러니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를 기피할 수밖에. 지금처럼 남녀 모두 초과 시간의 생계노동을 하고 돌봄은 모두 시장화하거나 외주화하는 방식이 가속화되면 어찌 될까. 여성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성평등은 없다. 돌봄은 여전히 여자의 몫으로 남아 일터에서 기혼 여성은 ‘모성 페널티’를 겪고, 사회에서 돌봄은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인식되어 가치를 후려치기당한다. 그 끝은 반값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출생률 제로 수렴이 될 것이다.
한때 유연 근무제나 미니잡을 통해 여성들이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정책이 대안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차별을 심화시킨다. 여성은 영원한 2급 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길이 있다. 남성의 생계노동 시간을 줄이고 돌봄을 병행하게 하여, 남녀 모두 생계노동과 돌봄의 균형을 이루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내 자식 내가 돌보는’ 사회, 남성의 사회적 돌봄 참여도 늘어나 돌봄이 더는 여자의 일로 치부되어 평가절하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남성이 전체 남성 취업자의 2%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이 정착되면 더 많은 남성이 금강산처럼 요양보호사 같은 돌봄 노동에 종사하고, 능력과 매력을 인정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때엔 ‘금이야 옥이야’ 기르고 보살피는 돌봄의 가치가 진정으로 존중받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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