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먹고 ‘탕후루’ 찍고…"중국 싫지만 음식은 좋아"
"정치와 문화는 별개...소비할 땐 비교적 유연"
'단짠' 대표음식...건강 위해 과도한 섭취 금물
‘점심은 마라탕, 후식은 탕후루’.
중국의 대표음식 ‘탕후루’와 ‘마라탕’이 10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생과일에 설탕시럽을 코팅한 길거리 음식 ‘탕후루’는 식품부문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콘텐츠를 표방한 먹방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현상은 젊은층의 반중(反中) 정서를 생각하면 모순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이해하기 힘든’ 10대의 식문화를 짚어본다.
◆ 탕후루 가게 급증…마라탕 ‘스테디셀러’=11일 서울 목동 학원가의 한 탕후루 전문점. 전날 찾아온 태풍 ‘카눈’의 여파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한손엔 우산, 다른 한손엔 탕후루 꼬치를 쥔 10대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중학생 2학년 이모양은 “과일 코팅이 깨질 때의 바삭한 식감이 좋아 친구들과 자주 사 먹는다”며 “샤인머스캣과 딸기 탕후루를 자주 찾는다”고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를 막대에 꽂아 설탕·물엿을 끓인 시럽을 바른 중국의 길거리 음식이다. 국내에선 주로 딸기·귤·거봉·샤인머스캣·방울토마토·블루베리·체리 등이 사용된다. 시럽으로 코팅된 겉면을 씹을 때 바삭거리는 식감이 매력으로 꼽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냉동·간편조리식품 분야 10대의 인기검색어(7월2일~8월5일)에서 탕후루는 2위, 아이스 탕후루는 5위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검색어 키워드 분석서비스인 ‘썸트렌드’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8월3일~9일)동안 온라인상에서 ‘탕후루’ 언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배 가량 증가했다.
탕후루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를 판매하는 가게도 늘었다. 탕후루 프랜차이즈 ‘달콤왕가탕후루’ 점포수는 올 2월 50여곳에서 7월 300여곳으로 5개월 만에 6배 급증했다. 이외에도 ‘왕가탕후루’, ‘차차탕후루’, ‘달콤왕가탕후루’, ‘황후탕후루’ 등 전문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마라탕 인기도 여전하다. ‘얼얼한 맛’이라는 뜻의 마라(麻辣)탕은 중국 쓰촨지역에서 시작된 요리로, 고추·산초·초피나무 열매·팔각·정향 등 여러 향신료가 들어간다. 고기·채소·해산물 등도 들어가지만 맛이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다. 지난해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배민)이 발표한 ‘배민트렌드 2022’에 따르면 2021년 배민에서 10대들이 가장 많이 주문한 메뉴 1위는 마라탕이다. 네이버의 ‘2022 블로그 리포트’ 분석결과에서도 10대 여성들의 1위 관심사 키워드는 ‘마라탕’이다.
마라탕이 반짝 유행을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자 식품업계에서도 마라향을 첨가한 식품을 내놓고 있다. 마라 떡볶이, 마라 라면, 마라 족발, 마라 치킨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모양은 “평소 즐겨 먹는 프랜차이즈 떡볶이 전문점에서 마라 떡볶이를 시키려고 했지만 배달앱을 확인할 때마다 그 메뉴만 ‘품절’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라탕을 ‘중국 음식’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기보단 ‘마라 향신료’가 들어간 별개의 음식으로 봐야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혜영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 총괄이사는 “마라탕이 한국에 들어와 현지화를 거치면서 중국을 연상할 수 없을 만큼 식재료부터 섭취방법까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젊은층은 음식을 소비하는 데 있어 SNS에 후기를 공유하는 등 ‘경험’을 중요시한다”며 “마라탕 같은 매운 음식엔 맵기 단계가 있어 높은 단계까지 도전해보겠다는 생각도 인기에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음식은 잘못 없으니까”…그래도 과한 섭취 금물=젊은층을 중심으로 번지는 중국에 대한 반감을 생각하면 탕후루·마라탕 열풍은 이례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한국리서치가 국내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주변국 호감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은 23.9점(100점 만점), ▲북한(29.4점) ▲일본(29.0점) ▲러시아(23.3점)보다 가장 낮다. 특히 20대 이하(10점)와 30대(17.5점)의 반중 정서가 유독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6월 발표된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도 한국에서 중국에 호의적인 청년(18~29세) 비율은 6%에 불과했다. 퓨리서치센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원 이사는 1020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선택적 수용’에 따른 소비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원 이사는 “기성세대의 경우 특정 나라가 싫으면 그 나라의 제품 구매도 거부감을 갖는 반면 젊은층들은 정치적인 이념과 문화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고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성장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탕후루와 마라탕은 ‘단짠(달고 짠 음식)’의 대표격으로 언급될 만큼 자극적인 음식이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탕후루에 사용되는 시럽엔 설탕과 물엿 등 단순당이 많아 비만·심혈관질환 등 각종 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어린이(6~11세)와 청소년(12~18세)의 경우, 전체 3명 중 1명꼴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을 초과해서 당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WHO는 설탕섭취량을 하루 총열량의 10% 미만으로 제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어쩌다 한번 탕후루를 먹는 것은 괜찮지만 평소 첨가당이 많은 과자나 음료를 즐겨 먹는 경우라면 당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며 “어린시절 형성된 식습관은 어른이 된 이후엔 바꾸기가 쉽지 않은 만큼 가정과 학교에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과도한 당류 섭취는 금물이지만, 이렇게라도 청소년들이 과일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청소년의 과일 섭취량이 권장 수준에 못 미쳐서다. 질병관리청의 ‘2021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과일과 채소 하루 권장량인 500g 이상을 섭취하는 사람의 비율은 6∼9세는 12.5%, 10∼18세는 15.4%에 불과하다.
하지희 농촌진흥청 농산업경영과 농업연구원은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과일주스나, 젤리 등 가공식품 상당수엔 과즙 함량이 많지 않아 실제 과수 소비확대로 연결되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반면 탕후루는 생과 자체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반 가공식품과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국산과일이 주로 사용된다는 전제 하에선 탕후루 인기가 신선 농축산물 소비확대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약처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탕후루보단 생과일을 먹는 편이 건강에 좋으므로 과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지도해야 한다”며 “과일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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