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메타버스로 우주 시대 앞당긴다
기술의 발달 속도 못지않게 새로운 기술에 관한 단어도 빠르게 대중에게 스며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메타버스’가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 가상, ~너머라는 의미의 메타(meta)와 현실 세상을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 세계와 현실이 뒤섞인 세계를 의미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라이프로깅(개인의 일상을 스마트 기기나 인터넷에 기록하는 것)등 현실과 기술이 접목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사실 메타라는 접두사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면서 철학적인 뜻을 담고 있다. 우리말의 한(한스럽다, 한이 맺히다)이나 정(옛정, 정답다)을 영어로 제대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처럼 메타 역시 우리말로 간결하게 번역하기 쉽지 않다.
존재 자체를 다루는 학문인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형이상학으로 번역됐지만 세상을 인지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인지하고 판단하는 ‘메타코그니션(metacognition)’은 메타인지라는 영어+국어로 통용되고 있다. 어떤 데이터인지 의미를 부여하는 메타데이터(metadata)에서 메타는 ‘~로서의’, ‘~를 위한 ~’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글의 앞머리를 언어학과 철학이 동원되는 다소 거창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기술에 관한 최근 유행어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하고 한계를 설정하면서 여러 기술적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 위험 지역은 AR로 탐사하고 개발
현실의 영상이나 시각 정보 위에 컴퓨터로 생성한 추가 정보를 뜨게 하는 것이 증강현실이다. 증강현실이라는 말 외에 이보다 더 정확하고 간결하게 이 기술을 표현하는 우리말은 없다. 가상현실은 오롯이 컴퓨터가 만들어낸 영상을 내 눈에 보여주는 기술이다. 둘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느냐 영상을 바탕으로 하느냐 차이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는 하드웨어 차이도 있다. 가상현실 장치는 사용자의 시야가 현실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반면 증강현실 장치는 설사 컴퓨터가 고장 나더라도 그걸 쓴 채로 활동할 수 있다.
커다란 안경을 쓴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따라서 가상현실 장치는 증강현실 분야에 쓰일 수 없지만 증강현실 장치는 필요한 경우 시야 앞에다가 검은 막만 갖다 대면 곧 가상현실 장치가 된다. 아직 가상현실 장치가 더 대중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어느 장치가 대세가 될지는 명확하다.
증강현실 장치가 사용자의 음성과 동작을 인식해 가상 세계 또는 운영 컴퓨터와의 연결을 더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를 강조하기 위해 확장현실(XR)이나 혼합현실(MR)이라는 단어가 더 붙지만, 본질은 하나다.
증강현실 또는 가상현실. 지금부터는 증강현실로 통칭하자. 여기서 혼합현실은 현실 세계에 가상현실을 접목한 것이고 확장현실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혼합현실을 모두 활용한 것이다.
우주 분야를 포함해 인간이 직접 또는 원격으로 활동할 모든 분야에서 증강현실의 역할은 더욱 빠르게 커질 전망이다. 위험한 공간에 직접 가지 않고도 마치 내가 직접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증강현실 안경 하나를 쓰고 다니면서 지금의 휴대전화로 하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 영상과 컴퓨터 정보, 원격 영상이 어우러지는 것이 바로 메타버스가 지향하는 바 중 하나다.
실제로 메타버스는 굉장히 다양한 주제로 펼쳐질 수 있다. 먼저 오로지 게임을 목적으로 현실의 물리법칙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잘 표현한 영화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우주 탐험과 개발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실제 우주 환경을 재현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엔진 개발이 필수인데 물리적 오류 없이 구현하려면 STEM이라고 불리는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이 대단히 중요하다. 현실의 물리학을 적정한 비용을 써서 구현하면서 신뢰 가능한 수준으로 모방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에 본사를 둔 메타버스 전문기업 ‘에버돔’은 가상의 화성 탐사 상품을 내놓았다. 아직은 게임 성격이 짙으나 현실의 물리법칙에 기반을 둔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제공한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니 실제 화성 탐사에 그간 쌓은 기술이 쓰이지 말란 법이 없다.
게임이든 우주 개발이든 메타버스가 그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디스플레이 장치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는 책상 위의 모니터로도 메타버스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사방을 자유로이 볼 수 있는 증강현실 장치가 최고의 답이다. 증강현실 장치에는 수많은 기업이 도전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IT 업계 강자는 각자의 증강현실 장치를 선보였다.
시중에 나온 증강현실 장치를 써본 사람들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는 현실 세계를 볼 때 거리에 따라 눈의 초점을 달리한다. 그런데 증강현실 장치의 디스플레이는 내 눈 바로 앞에 떠야 한다. 최소한 몇 미터 앞을 내다보는 내 눈의 초점 거리와 컴퓨터 영상의 초점 거리가 얼추 맞아야 하는 셈이다. 안 그러면 눈이 아플 수밖에 없다.
이러한 증강현실 장치 분야에는 한국 기업 ‘레티널’이 광학 렌즈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세계 경쟁의 일선에서 달리고 있다. 눈을 찡그리면 잘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는 핀홀 효과(작은 구멍에 의해 나타내는 상에 대한 효과)를 최신 증강현실 장치에 반영했다. 이는 발상의 전환의 좋은 예다.
※필자소개
김상돈 스타버스트 한국 지사장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에서 공기역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KAI에서 12년 동안 항공기 개발과 국제 마케팅 업무를 했고,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모바일 기기용 통신 회사 ‘VMTS’를 운영했다. 2010년부터는 7년 동안 롤스로이스 한국 지사에서 항공 및 함정의 가스터빈 사업을 개발했다. 2021년부터 글로벌 우주 항공 액셀러레이터 및 투자사인 스타버스트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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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8월호, 메타버스로 우주 시대 앞당긴다!
[김상돈 스타버스트 한국 지사장,조가현 기자 none@donga.com,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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