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빌려온 이 책, 동성섹스가 한바닥” 오바마까지 뛰어든 금서 논쟁은 [나쁜 책]
[금서기행, 나쁜 책-5] 조지 M. 존슨 ‘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
미국인들이 둘로 쫙 갈라진 이유는 이 문제 때문입니다. ‘도서관과 교실 책상에서 아이들에게 동성애 서적을 읽도록 할 것인가?’
동성애 책 반대파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라”고 주장합니다. 찬성파는 “독서할 자유를 타인이 침해해선 안 된다”고 맞섭니다.
흑인 작가 조지 M. 존슨의 자서전 ‘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가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미 한국 대다수 도서관에서도 보유 및 대출 중인 책입니다만, 미국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왜 이 책은 금서 논쟁의 중심에 섰을까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는 2가지 측면에서 소수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는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흑인으로 성장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퀴어(성소수자)였다는 점이었습니다.
‘흑인 퀴어’의 운명은 이중적으로 잔혹합니다. 흑인은 대개 남성적이고 강인한 ‘흑인다움’을 요구받습니다.
주인공 회고에 따르면, 흑인 사회에선 애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잦았습니다. 존슨은 이미 5세 때 골목에서 이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억압뿐이었다. 나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가 되어 흑인다움과 퀴어함의 교차 지점에서 난생 처음 겪는 이중 억압을 감당해야 했다.” (17쪽)
거칠고 터프한 사회, 존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억눌렀습니다. 인형놀이가 더 좋았지만 미식축구에 참여했고 고교 육상팀 최고의 선수로 자라며 자신을 감췄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아들이 퀴어일 것이란 점을 짐작했고, 미리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까지도 커밍아웃한 손주에게 “나는 모든 손주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가족애 때문인지 저자는 “이 책은 10대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강조합니다.
존슨은 가족의 지지 덕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합니다. 대통령 장학금을 받을 만큼 삶을 가꿔나갑니다. 이후 대학생이 된 저자는 게이 친구 4명, 스트레이트(이성애자를 뜻하는 말) 친구 4명과 함께 교류하면서 평범한 삶을 삽니다.
하지만 이 책에 이 정도의 ‘착한’ 교훈만 담겼다면 이토록 논쟁적이진 않았을 겁니다.
‘이 책은 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첫 경험, 호모포비아, 인종차별, 반흑(反黑, anti-Blackness) 정서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6~7쪽)
책을 펼쳐보니 수위가 아찔합니다. 저자는 성애 묘사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문장으로 썼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음을 알기에 책의 내용을 모두 옮겨 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간략하게만 이 책의 논란 부분을 요약하자면, 저자는 ① 13세 때 사촌형에게 지하 창고에서 ‘자위 실습’을 받았고 ② 학교 화장실에선 남성 동기로부터 ‘성기를 움켜쥐는’ 위압적 추행을 당했습니다. ③ 대학교 3학년 게이 클럽에서 재회한 친구와의 ‘첫 성교’와 고통스러운 장면도 몇 페이지에 날것 그대로 적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④정액, 콘돔, 윤활유 등 소재부터 탑과 바텀 등 동성애적 표현까지 기술해 이 책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위 요약은 정제된 표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추행 묘사 부분을 읽으면서 다소 충격을 받아 인용의 표현을 완화했음을 밝힙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주 찾는 도서관에, 성애 묘사가 디테일하게 표현된 책이 비치돼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책은 ‘표현의 자유’와 ‘성소수자 교육’과 ‘다양성의 포용’ 측면에서 허용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금서로 지정해 도서관 퇴출도서 명단에 올라야 할까요.
심지어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밝히면서 “10대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이것이 2023년 8월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서 논쟁의 딜레마입니다.
미국도서관협회 발표문 요지는 ‘학교 도서관과 교실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 학교 커리큘럼에 명시된 자료를 검열해달라는 요청이 폭증했다. 해당 책들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도서목록에서 제외하라는 민원 요청이 쇄도하면서 독서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였습니다. 2021년 729건이었던 검열 요청 건수는 2022년 1269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다루는 ‘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가 검열 요청 2위를 차지했고, 1위는 마이아 코베이브 작가의 그래픽 노블(만화 형태의 긴 소설) ‘젠더 퀴어’였습니다.
다만 ‘모든 소년이 파랗지는 않다’의 경우 주인공이 경험 묘사가 글로 적혀 있지만 ‘젠더 퀴어’의 경우 경험 묘사가 생생한 그림(피 묻은 생리대, 도구를 이용한 성교 등)으로 표현됐다는 점에서 다소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요.
일단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도서관협회에 손수 편지를 보내면서 논쟁은 사그러들지 않고 확전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편지글 요약]
◎ 책은 항상 제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해 왔습니다. 저와 삶이 달랐던 사람들에 대해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하는 방법을 책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을 형성시킨 책들 중 일부는 특정한 생각이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인 미국이 특정한 목소리와 생각들을 침묵시키는 것을 허용한다면, 왜 다른 국가들은 그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성적으로 노골적인 주제의 책을 읽기에 너무 어리더라도, 이는 독자와 부모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지, 타인이 결정에 관여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부분은 ALA 홈페이지의 Q&A 부분을 참고했습니다.)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도 성과 관련된 도서들의 대출을 금지하거나 아예 폐기처분해달라는 요청이 쇄도중입니다.
충청남도 교육청에는 동성애, 성전환, 낙태에 대한 도서를 폐기해달라는 학부모단체의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울산의 한 지역 도서관에서는 최근 한 보수단체가 퀴어와 비혼을 주제로 한 도서관 강연을 철회하라고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올해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사례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몇 글자만 적어 찾아봐도 무수히 많습니다.
구성주의적 입장의 최전선에 선 학자는 프랑스 출신 철학의 왕 미셸 푸코였습니다.
푸코는 1870년 출간된 베를린 정신과 의사 칼 베스트팔의 논문 ‘정반대의 성적 감성’을 언급하면서 동성애자를 하나의 ‘종(種)’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푸코가 학술적인 의미에서 언급한 동성애가 진행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15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표현의 자유가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는 미국에서조차 지금도 논쟁이 진행중인 것이지요. 그만큼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자 조지 M. 존슨의 두 번째 책 ‘We Are Not Broken’도 조만간 한국에서 출간될 것입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금서 논쟁은 혐오의 또 다른 단면일까요, 아이들을 지키려는 부모의 노력일까요. 그런데 그에 앞서, 저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과연 이 논쟁이 이분법으로 갈라칠 문제가 정말 맞기는 한 걸까요?
미국의 동성애 금서 논쟁,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 다음 주에는 아이리스 장《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원제 ‘난징의 강간’)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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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에게 펼쳐진 책과 같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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