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과 젓갈의 맛[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3. 8. 1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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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으로 빚은 메주를 숙성시키면 간장과 된장이 나온다. 동식물 재료를 발효시킨 장 문화는 동서양에 모두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했다. 게티이미지

그동안 네 차례에 걸쳐 소금, 설탕, 식초, 기름의 짠, 단, 신, 고소한 맛을 알아보았다. 이들은 모두 몸속에서 에너지원이나 조절 물질로 쓰이는 연료 내지 재료들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장(醬)과 젓갈의 맛은 발효(醱酵, fermentation)의 맛이다. 어른의 맛이다. 전통의 맛이다. 장과 젓갈은 맛있어지는 과정을 ‘익는다’고 표현한다. 숙성(熟成)이란 한자도 쓴다. 맛있는 물, 술의 맛에서 배웠지만 알코올 발효를 거쳐 숙성해야 술이 익어 맛있어진다. 장과 젓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잘 익은 사람, 숙성한 사람이 잘 익은 음식을 먹을 줄 안다. 아기 입맛은 아직 장맛을 모른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한 조상의 촌철살인은 겉보다 속을 볼 줄 아는 어른의 지혜를 압축한 것이다.

한반도의 장은 대륙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본다. 중국 고대국가 주(周)의 기록인 ‘주례’에 장이 처음 등장한다. 당시 장은 식물 장이 아닌, 고기를 삭힌 육장(肉醬)이었다고 한다. 중국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인이 고유의 온돌문화 때문에 발효 음식을 잘 만들어 먹는다고 나와 있다. 발해의 명산물로 ‘시’를 꼽은 기록도 있다. 시는 지금의 메주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로 오면서 장 담그는 풍습이 정착됐다고 한다. 고대에 중국으로 건너간 장은 지역별로 20여 종의 콩장으로, 일본으로 간 장은 쌀누룩을 섞어 미소 된장이 됐다. 한·중·일 장류 문화권은 최초의 한류일지도 모른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 문화권에서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콩은 고기를 대체하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특히, 콩으로 빚은 장기보존식품 콩장은 영양과 맛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걸작이다.

얼굴합성 뉴트리노 생활과학 컷

장이 걸작인 이유는 복합발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화학 작용인데 치즈, 포도주, 낫토 등은 곰팡이, 세균(박테리아), 효모 중 한 가지 미생물만 작용하는 단일발효이다.

그러나 장은 세 가지 미생물을 모두 이용하는 데다 각각의 성질을 단계별로 적절하게 배분하는 발효의 오케스트라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콩을 발효시키는 메주 띄우기에서 시작된다. 콩을 삶아 으깨고 뭉쳐서 일정한 모양을 만든 게 메주이다. 하루 정도 지나 겉면이 굳으면 볏짚에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한 달 동안 말린다. 속까지 마르면 따뜻한 온돌방으로 옮겨 2주 정도 띄운다. 이때 비병원성 세균인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와 곰팡이가 살아남고 다른 잡균은 죽는다. 메주에 피어난 하얀 곰팡이와 노란곰팡이는 전분(녹말)을 올리고당이나 단당류 포도당으로, 다른 미생물의 프로테아제 효소는 콩 단백질을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잘게 분해한다. 소화·흡수가 빠르고 구수한 맛을 내는 비결이다.

첫 발효 과정이 끝난 메주는 다시 볏짚에 매달려 한 달 반 정도를 말린 후 소금물에 넣는다. 소금물 속에서 살 수 없는 곰팡이와 세균은 죽지만 내염성 효모와 젖산균이 활동을 개시한다. 효모는 곰팡이와 세균이 분해한 메주 속 당을 재료로 알코올 발효를 일으킨다. 장에 향미(香味) 물질이 더해지는 과정이다. 장의 구수한 맛은 단백질이 분해된 펩타이드, 다시 펩타이드가 분해된 글루탐산 덕분이다. 글루탐산은 인공 조미료(MSG)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장이 거의 다 익으면 ‘장 가르기’를 한다. 장에서 맑은 소금물, 즉 간장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간장을 걸러내고 남은 메주는 서서히 된장으로 익는다. 콩 장에는 체내에서 만들 수 없고 꼭 외부에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아미노산인 이소류신, 루신, 트레오닌, 발린 등이 풍부하다. 또 불포화지방산, 여성에 좋은 식물성 에스트로겐 이소플라본, 장 유익균인 비피더스균의 먹이인 키토올리고당, 면역 증강 사포닌, 혈액순환 개선 레시틴까지 들어있다. 우리 조상들이 벌레 물린데 된장을 바르는 등 약처럼 사용한 것도 이유가 있다.

단, 장은 소금이 다량 함유돼 있어 적당히 먹어야 한다. 소금의 주성분 나트륨(소듐)은 체액 농도를 유지하는 기능이 있어 과다 섭취 시 수분을 몸에 오래 머물게 해 고혈압 등 심혈관계 질환, 신장병과 비만 등에 좋지 않다. 고추장은 17세기 임진왜란 이후 메주 가루에 고춧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탄생했다. 매운 캡사이신 성분이 에너지 대사를 촉진해 비만 방지에 효과가 있고 몸도 따뜻하게 해준다. 젓갈은 생선을 발효한 어장(漁醬)이다. 동물 고기 대신 물고기가 풍부한 지역에서는 소금에 절여 익힌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 이탈리아의 멸치 젓갈은 앤초비, 베트남의 생선 젓갈은 느억맘이다.

생선의 살이나 내장, 알을 소금으로 절여 발효시킨 젓갈은 물고기로 만든 어장(魚醬)이라 할 수 있다. 콩 장 같은 식물성 장이나 육장(肉醬)과는 다른 풍미를 낸다. 게티이미지

장을 요리에 잘 활용하면 한 단계 레벨이 올라간다. 잡내가 사라지고 맛과 향은 좋아진다. 바다 생선의 비린내는 사후 분비되는 휘발성 물질인 아민과 알데하이드 때문이다. 민물 생선 역시 흙냄새가 나는 지오스민을 제거해야 한다. 이때 된장을 푼 물에 살짝 담그고 데치거나 된장 조림을 하면 악취가 현저히 줄어든다. 된장 속에는 분해된 아미노산과 덩어리 단백질이 함께 들어있는데 이 중 분자나 이온보다 큰 콜로이드 상태의 입자들이 냄새의 원인 물질을 흡착해버린다.

장은 조리 초반과 후반에 넣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초반에 가열하면 아미노산이 향 분자로 바뀌어 좋은 냄새가 난다. 된장 조림을 할 때도 재료에 처음부터 넣어 맛과 향이 배게 만든다. 숙성 기간이 오래된 집 된장(재래된장)은 찌개를 끓일 때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야 더 깊은 맛이 난다. 숙성 기간이 짧은 개량 메주로 만든 공장 된장과 일본 미소 된장은 건더기가 다 익음 다음 마지막에 넣는다. 간장도 숙성 기간이 1~2년으로 짧은 조선간장(청장)은 국물 요리의 맨 마지막에 넣어야 향을 살릴 수 있다. 3~4년 이상 발효한 진(陳)간장은 처음부터 넣고 간장 조림을 만든다. 짠맛은 줄고 당과 알코올 성분이 늘어나 단맛을 내는 조림과 약식 등에 쓰인다. 시중에서 파는 간장은 대부분 혼합간장이다. 용기 뒤편의 총 질소함량 ‘TN(Total Nitrogen) 지수’를 확인해보라. 발효가 얼마나 오래됐나를 알려주는 정보다. KS 규격에 따르면 TN 지수 1.0%를 넘으면 표준, 1.3% 이상은 고급, 1.5%를 넘으면 특급에 해당한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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