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 원짜리 법률의견서, 100만원짜리 법원소송구조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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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0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서울과 수도권 소재 지방검찰청 민원실장, 민원실 근무 수사관 16명과 오찬을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부를 만큼 승소가 어렵다고 알려진 의료 분쟁을 '나홀로 소송'으로 시작한 A.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전문용어로 도배된 상대방 제출 답변서를 손에 쥐고 찾아간 법원 민원실에서 소송구조제도를 소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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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0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서울과 수도권 소재 지방검찰청 민원실장, 민원실 근무 수사관 16명과 오찬을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응급실에 갔을 때 무슨 생각이 들고, 어떤 기대와 도움을 원할지 떠올려보기를 바랍니다. 처음 겪는 형사사건으로 당황한 민원인은 병원 응급실을 찾는 심정일 것입니다.”
검찰개혁은 거창한 구호보다 시민들이 드나드는 ‘민원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검찰총장으로서는 최초로 민원실 직원들을 격려·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반가웠다. 한편으로 검찰청 옆 법원 민원실을 방문한 후 시름에 빠진 민원인의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검찰청 민원실을 찾는 시민들이 병원 응급실에 오는 심정과 마찬가지로, 법원 민원실을 찾는 시민들의 마음도 매우 절박하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부를 만큼 승소가 어렵다고 알려진 의료 분쟁을 ‘나홀로 소송’으로 시작한 A.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전문용어로 도배된 상대방 제출 답변서를 손에 쥐고 찾아간 법원 민원실에서 소송구조제도를 소개받았다.
재벌 총수 또는 유력 정치인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변호사 수십 명을 선임하지만, 일반 시민은 변호사 한 명 선임하기조차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법원은 시민들의 사법 접근권을 위해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송구조제도를 운영한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던 A씨는 법원 민원실의 안내에 따라 소송구조 신청을 했고, 법원으로부터 소송구조 결정을 받았다.
소송구조제도를 통해 이제 ‘나홀로 소송’을 멈추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변호사를 찾아 나선 A씨. 이상하게도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마다 사건을 맡아주길 죄다 꺼렸고, 결국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지 못했다. 법원의 소송구조 결정은 왜 A씨를 구조해주기는커녕 더 시름에 빠지게 만든 걸까?
16년째 그대로인 소송구조 기본보수액
그건 바로 돈 때문이다. 법원이 소송구조 사건을 맡은 변호사에게 지급해주는 기본보수액은 대법원 예규로 정해진 100만원이다. 2007년 70만원에서 상향 조정된 후 16년째 그대로인 100만원 기본보수액을 받고 복잡하고 어려운 의료 소송을 수임할 변호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수임료는 단돈 천원, 실력은 단연 최고, 빽 없는 의뢰인들의 가장 든든한 빽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일 뿐이다. 현실은 다르다.
지난 7월19일 임기를 시작한 권영준 대법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교수 재직 시절 대형 로펌 의뢰를 받아 건당 수천만 원짜리 법률의견서를 작성했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대법원은 “후보자가 받은 보수는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대법원의 해명을 듣고 있자니 16년째 그대로인 법원소송구조 기본보수액 100만원이 떠올랐다.
권영준 대법관은 취임사를 통해 “법에 관한 담론은 다채로운 삶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담아내야 한다”라며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함성에 묻히지 않도록 살피겠다”라고 약속했다. 소수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으려면 100만원짜리 법원소송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수천만 원짜리 법률의견서라는 논란을 겪고 임명된 권 대법관이 시름에 빠진 시민들을 구조해내지 못하는 현행 100만원짜리 법원소송구조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길 기대해본다.
최정규 (변호사·⟨얼굴 없는 검사들⟩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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