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식량난을 겪고 있을까?
장면 1. 북한이 최근 식량난에 빠졌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 BBC 등 국내외 언론사들의 보도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상당하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 식량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장면 2. 지난 2월 북한 당국은 농업 부문 예산을 전년 대비 대폭(14.7%) 증액했다. 이어서 농업 부문을 의제로 노동당 전원회의를 소집했다. 전원회의는 식량 생산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기존 농업정책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올해가 '김정은식 농업정책'인 농장책임관리제를 시행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식량문제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북한 보도에서 식량문제는 오래된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 발단이었고, 앞으로도 북한이 식량자급률 100%를 달성하기까지는 보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 곡창지대인 개성에서 지난해 ‘굶어 죽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 명씩 속출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연합뉴스 보도 역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와 궤를 같이한다.
한편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북한에 상주하며 식량과 농업정책을 지원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북한의 주요 곡물 생산량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1년 동안 약 347만t에서 2021년 489만t으로 40%가량 증가했다. 남한의 농촌진흥청도 북한 식량 생산량을 2000년부터 2022년까지 359만t에서 451만t으로 약 25% 증가한 추정치를 발표하고 있다. 더디지만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국내외 언론이 북한 식량난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몇 가지 근거가 될 만한 현상이 거론되고 있다. 언론에서 주목하는 주요 근거는 식량 생산량 감소,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 곡물 가격 상승, 곡물 및 비료 수입량 감소, 양곡 관리정책의 변화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한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변동한 사례는 빈번하며, 이러한 변동성을 식량난으로 연결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2022년 1월 이후 최근까지 가격변동성과 관련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시장은 쌀과 옥수수보다 밀가루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격 상승폭이 가장 크게 나타난 2023년 2월까지 쌀과 옥수수가 각각 26%, 30% 상승했지만, 빵이나 국수 등 기호식품 자재인 밀가루 가격은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특히 밀가루 가격은 210% 상승하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최근에는 밀가루 수입량이 증가하고 북한의 자체 봄밀 생산분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가격이 3분의 1로 폭락했다.
두 번째 특징은 밀가루 가격이 국제시장가격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국제 곡물 시장은 쌀(중립종):밀=1705:258(1t, USD)로 밀가루에 비해 쌀이 311%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해외 곡물 시장 정보). 북한 시장의 쌀 가격이 예년에 비해 상승폭이 크지만, 대체재인 밀가루는 세 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만약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식량 상황이 악화했다면 쌀·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가격변동성이 모두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악의 식량난? vs 최대의 농업 투자?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현재까지 시장 쌀 가격은 5000원(1㎏ 기준)으로 수렴하고 있으며, 대북 제재가 강화된 시기를 포함해도 평균 가격(약 5000원)의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2022년 3월~6월)과 북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한 이후에는 상승폭이 확대되었다. 특히 북한의 코로나19 발병기(2022년 5월~2023년 6월)에는 지역 간 인력과 상품의 이동이 극히 제한되었다(〈그림 2〉 참조).
곡물 및 비료 수입량 감소도 식량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입량이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정반대 상황을 식량난의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식량 수입량 감소가 식량난의 원인이라면 2017년, 2020년, 2021년에 식량난이 발생했어야 한다. 수입량 증가가 원인이라면 2018년과 2019년에 식량난이 발생했어야 한다. 비료 수입량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사실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무역이 중단되면서 곡물과 비료 수입량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자료를 분석하면, 총수입 곡물량 120만t 중 쌀이 41만9000t(35%), 밀가루가 69만8000t(58%), 옥수수는 6만3000t(5.3%)을 차지했다. 수입 곡물의 절반 이상이 밀가루였다. 북한 주민의 식생활에서 밀가루 음식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같은 기간 비료 수입량(총 66만t)은 대부분 질소비료(N)와 복합비료(N+P+K)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의 비료 산업이 질소비료를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학비료의 절대적 생산량이 부족하지만, 비료 수입량이 식량난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그림 3〉 참조).
국내외 언론이 지목하는 식량난, 정확하게는 시장 곡물 가격 상승 현상이 북한의 양곡 정책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북한은 최근 농업 관련 법률을 대폭 개정했다. 그중에서 ‘양곡법’ 개정(2021년 3월, 2022년 12월)은 시장의 곡물 유통체계를 흔드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의 양곡법 개정 과정은 이례적이다. 2021년 3월 양곡법을 먼저 개정하고, 바뀐 양곡 정책을 운용하기 위한 기반 시설을 조성하고, 2022년 10월께 국가 양곡 정책을 시행했다.
북한 양곡법 개정 목적은?
북한 당국이 양곡법을 개정한 목적은 국가 전체의 곡물 생산량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된다. 변화된 양곡 정책의 결과, 국가가 관리 가능한 주요 곡물을 주민들에게 직접 판매함으로써 시장의 역할이 축소되고, 국가와 시장의 경쟁체제가 형성되었다. 종전에는 개인 텃밭, 부업지 등 국가 관리에서 벗어나 생산된 곡물이 시장을 통해 공급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 추수철을 전후로 시장 곡물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국가 양정 체계 변화의 영향으로 주민들의 사재기, 상인들의 매점매석, 부업지 생산자들의 식량 은닉 등 국가의 반시장 정책에 대한 저항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제적·정치적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2022년 5월 코로나19 발병 이후 강력한 지역 간 이동 통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승한 국제 식량 가격의 동조화 현상도 곡물 가격 상승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은 농업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추진하고, 양곡법 등 정책 수단을 손질하는 등 식량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책의 성공은 장담하기 어렵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누적된 농업 부문의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3년째 정체상태인 국가재정 능력, 장기화 국면의 대북 제재, 무역 규모 축소와 만성화된 무역수지 적자가 식량 증산 정책의 목덜미를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 위협 요인이다. 더불어 자연재해 및 기후위기 대응능력,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북한이 통제하기에 역부족인 변수가 있다.
반면에 북한 당국은 식량 자급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북한 농업정책의 성공 가능성, 즉 잠재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서 식량 증산 정책을 들고 있다. 또한 비료·농기계 등 영농 자재 공급 향상, 관개 체계 개선 등 국토 관리 능력 향상, 밀 농사 확대 등 기후위기 대응 강화, 유제품·채소 생산 증대를 통한 영양소 다변화 성과 등에서 북한 농업이 보유한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은 쌀·옥수수 중심의 식생활이었는데, 밀 제품, 유아용 유제품, 채소 생산 및 공급 능력이 향상되면서 식량 다변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면 과제로 식량 증산의 필수 요소인 화학비료(특히 인비료)와 다수확 종자 개발 및 생산능력 확대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김일한 (동국대학교 DMZ평화센터 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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