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육상영웅, 지금 뛰면 예선탈락이죠…인류는 진화하니까요 [Books]
팔을 흔들고 고개를 어깨에 축 늘어뜨린 채 고통받는 얼굴로 질주하던 자토페크를 여러 사람이 기억한다. 20세기 중엽 스포츠계를 뒤흔든 이 영웅이 은퇴 전까지 거둔 수확은 지금 다시 봐도 상상 이상이었다.
‘세계 신기록 18개, 올림픽 기록 3개.’
그런데 만약 영웅 자토페크가 2023년 육상종목에서 선수들과 겨뤘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숫자로 예상해보면 이렇다. 육상 달리기 1만m 종목에서 자토페크는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운이 좋아 참가하더라도 메달권보다 3분이나 늦는 기록이 된다.
이것을 뭘 의미할까. 인간의 신체 능력이 약 70년간 엄청나게 진화했다는 뜻이다. 스포츠를 비롯한 인간의 현대적 진화는 과연 기술의 발달만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저자 에드윈 게일은 신간 ‘창조적 유전자’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인간만의 진화 능력을 원천부터 파고든다.
하나의 씨앗이 발아되는 과정에서 토양에 양분이 얼마나 많은지, 태양이 얼마나 내려쬐는지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진다. 토양과 빛에 따라 식물의 ‘표현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도 그렇다. 사는 곳의 기후나 도시화 정도, 경제적 여건과 소득 수준에 따라 인간은 모습이 달라진다. 개별 사람의 모든 특징은 그만이 가진 표현형이 된다. 유전자와 환경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맺으면서 인간은 자기 개성(표현형)을 창조해 나가는 존재다.
환경과 적응이란 개념은 기존의 알던 바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여기서 하나의 개념을 더 추가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가장 다른 점이 있다. 동물은 타고난 유전자에 더해진 환경에 적응해버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선택을 기다린다. 일종의 퇴화다. 가축은 적응이란 측면에서 퇴화의 가장 적합한 사례다.
반면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도약한다.
환경 자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환경 이면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창조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표현형을 진화시킨다는 얘기다. 무수한 동식물이 자연선택을 기다리는 사이, 인간은 단지 자연선택을 기다리는 차원을 넘어 주변환경에 적응하고 더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나간다. 감염과 면역과 노화 측면에서 인간은 환경을 이용해 가장 최적의 결과값을 매번 도출해낸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언어를 발달시킨 이유도 표현형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본다.
인류는 동물과 달리 음식물을 익혀먹게 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위턱이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아래턱이 돌출하도록 모습이 바뀌었다. 이 때문에 얼굴은 다른 짐승에 비해 납작해졌고 근육엔 다양한 감정이 실려 타인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인간만이 가진 언어와 노래가 바로 이러한 식습관과 신체 변화 때문에 가능했다.
뇌는 학습된 기술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인간 개인의 최적의 표현형을 이끈다. 우리의 뇌는 학습 프로그램을 그저 ‘업로드’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창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부터 인류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뇌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변화 가능성이 큰 신체 장기다.
출생시 기대수명까지도 인간의 표현형은 소득에 영향을 받는다.
소득이 세계 최고수준인 노르웨이나 미국은 기대수명이 80세에 근접하지만 1인동 GDP가 1만 달러가 되지 않는 모잠비크는 태어날 때 기대수명이 46세 정도다. 평균 소득의 증가는 질병과 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줄인다. 경제적 여건이 인간의 표현형을 달리해 인구 집단의 삶의 기간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렇다고 표현형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한 것은 아니다. 비만은 생활양식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경도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 소비를 나날이 증가시킴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을 퇴화의 방향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미국에서 해마다 40만명이 비만으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표현형이 한 인종이나 한 국가에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케냐는 1968년 올림픽 장거리 달리기 종목에서 메달 63개를 가져갔고 그 중 21개가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육상 종목이나 수영 종목에서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유전자의 영향은 강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인종은 다른 인종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새롭게 창조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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