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김승진 역 |생각의 힘|735쪽|3만2000원
앤드류 응(Andrew Ng) 미국 스탠퍼드대 겸임교수는 최근 방한 강연 자리에서 “이제 인공지능(AI)의 겨울은 오지 않는다. 영원한 봄이 왔다”고 단언했다. 그는 투자자로도 변신해 AI 펀드를 조성 중이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Sam Altman)은 세계 지도자들이 기꺼이 만나는 거물급 인사가 됐다.
이 책은 기술에 대한 경탄과 흥분이 고조되는 상황을 작심하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현란한 기술 발달이 ‘공유된 번영’을 자동적으로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리콘밸리 테크 엘리트들이 주장하는 ‘디지털 유토피아’가 H.G. 웰스의 소설 ‘타임 머신’에 나오는 세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거듭된 ‘양극화’로 인류가 서로 다른 2종(種)으로 분화한 세상을 그리고 있다.
저자들은 지난 1000년 간 기술의 발달과 사회 진보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고찰한다. 중세 후기에 도입된 대형 수직 물레 방아는 농업 혁명을 가져왔다. 노동자 1인당 산출을 많게는 20배나 높였다. 하지만, 새 기술이 노동자의 임금까지 높여주지는 않았다. 중세 잉여의 대부분은 종교 교단으로 흡수돼 종교 건축물 건립 붐으로 이어졌다. 1200년대 유럽은 누가 더 높은 성당을 짓는가를 두고 경쟁했다.
1842년에 나온 영국의 ‘아동 노동에 대한 왕립 위원회 실태 보고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깊은 지하 갱도에서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하는 일이 잦았다. 갱도에서 트랩도어(날개형 문)를 여닫는 작은 아이들은 ‘트래퍼(trapper)’라고 불렸다. 아이들이 몸집이 커지면 레일에서 석탄차를 끄는 ‘허리어(hurrier)’가 됐다.
런던의 악명 높은 스모그는 100년 넘는 기간 동안 200명당 1명꼴로 목숨을 앗아갔다. 멘체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고위 장군 찰스 네이피어는 일기장에 “지옥의 문이 열렸다!”고 기록했다.
19~20세기 초반 미국 대부호 집단의 별칭은 ‘강도 귀족’. 존 D. 록펠러가 창립한 석유 정제 회사, 앤드루 카네기의 철강 회사, 코르넬리우스 벤더빌트의 철도 기업 집단, 듀폰의 화학 회사, 농기계 분야의 인터내셔널 하비스터, 은행 업계의 JP모건 등은 경쟁 기업과 노동자를 무차별적으로 협박해 부를 쌓았다.
저자들의 눈에는 오늘날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행보는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위험천만한 행보를 꼭 닮았다. 레셉스는 19세기판 ‘테크노-낙관주의’를 바탕으로 파나마 운하 프로젝트를 거칠게 밀어부쳤던 인물. 그 뜨거운 비전의 결말은 재앙이었다. 1881~1889년 파나마 운하 공사 현장의 누적 사망자 수가 2만2000명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10억 프랑 이상 날렸다. 결국 파나마 운하 회사는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
이들은 AI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AI를 사용한 대규모 데이터 수집은 시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보편기본소득도 비판한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소수의 사람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게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침을 주는 내러티브라는 것이다.
1902년 탐사 저널리스트 아이다 타벨이 스탠더드 오일과 록펠러의 협박, 불법 행동, 정치적 협잡 등을 폭로했다. 이 내러티브 덕분에 반독점 법의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기후 위기에 대한 각성을 불러온 내러티브였다.
오늘날 테크놀러지는 ‘자동화’ ‘데이터 수집’ ‘광고’ 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그런데도 기술 기업들은 온갖 종류의 선한 일을 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들은 테크놀로지의 방향을 바꾸려면 가장 먼저 이 내러티브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 가치 총합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달한다. 20세기 초 대중과 개혁가들이 독점 기업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때 상위 5대 기업의 시가 총액이 GDP의 10분의 1을 넘지 않았다.
1984년 AT&T는 7개의 독립된 회사로, 스탠더드 오일은 34개의 서로 다른 회사로 분할됐다. 저자들은 “오늘날 거대 테크 기업도 쪼개는 게 답”이라고 본다.
책을 읽는 도중 ‘그래도 빅 테크 기업 덕분에 편리한 세상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반문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오직 클릭 수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알고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해 온 것 역시 자명한 사실 아닌가. 우리는 ‘편리’를 위해 또 무엇을 희생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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