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2] 주택연금으로 삶과 화해하다
[편집자주] 유비무환! 준비된 은퇴, 행복한 노후를 꾸리기 위한 실전 솔루션을 욜로은퇴 시즌2로 전합니다.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주택금융공사에서 공모한 주택연금 수기에는 70대 이후 분들이 살아온 삶이 진하게 묻어난다. 집이 대체 무엇이기에 집 하나 마련하는데 치열한 전쟁 같은 삶을 보냈다. 주문한 문패가 도착하기 전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분도 있고, 재건축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 IMF 외환위기를 맞은 가정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든 지금, 낡은 육체와 덩그러니 집 한 채가 남았다. 삶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주택연금 통계에 따르면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주택가격은 3억6000만원이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평균 월 지급액도 116만원이다. 하지만 주택연금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혜택을 주고 있다. 노후 생활비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노후 생활비에서 자립하게 되면서 삶의 차원이 달라진다. 양(量)에서 질(質)로의 전환이라고 할까.
주택연금 수기에 나타난 ‘주택연금 가입 후 달라진 변화’를 추려봤다. 가장 큰 변화는 권위와 주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모나 나이 들면 자녀에게 용돈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용돈 받는 게 맘 편하지 않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자녀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용돈을 받더라도 마음은 불편하고 권위도 떨어지는 것 같다.
주택연금이 이 상황을 변화시킨다. 전에는 자식들이 오면 얻어만 먹었는데 이제는 부모가 식사비를 지불하고 가끔씩 자녀나 손주에게 용돈을 주면서 부모의 권위도 살아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주체성도 갖게 된다. 주체성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먹고 싶으면 사먹고, 여행 가고 싶으면 떠나고, 물건을 사고 싶으면 시장에 가서 사는 여유로움이 주체성이다. 이 모든 행동에 다른 사람의 허락을 구해야 하면 주체적이 아니다. 주택연금의 돈이 주체적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주택연금 가입자 대다수가 말하는 공통된 삶의 변화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주체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변화는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했는데 다른 삶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니 취미활동을 하게 되고 주택연금을 받아 남는 돈을 적금으로 모아 두었다가 스페인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고 꿈을 꾸게 된다. 미래를 꿈꾸면 삶이 흥분된다. 언제 노후에 흥분되는 삶을 가져보았든가?
기부와 봉사 등 타인의 삶도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된다. 필리핀이나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돈이라도 기부를 하고 직접 밥짓기 봉사활동에 뛰어든다. 이는 주택연금이라는 뒷받침이 생겼기에 나타난 변화다. 바둑 격언에 ‘내 바둑돌이 먼저 살고 나서 상대방 말을 공격한다’는 것처럼 주택연금이 삶의 최소 조건을 충족시켜주자 다른 삶이 보이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노후에 안으로 위축되고 고립되어 가는 삶에서 세상을 둘러 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삶으로 변해간다.
가족의 울타리가 튼튼하게 되는 게 세번째 변화다. 생활비나 병원비를 두고 형제 간에 다툼이 많이 생기는데, 이러한 걱정이 사라지니 형제간 우애가 좋아진다. 실제로 삼형제가 부모님께 집을 사 드리고 주택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게 했더니 형제간에 부모님 용돈을 둘러싼 논쟁이 사라졌다. 부모와 자녀간의 서운함과 어색함도 사라진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분히 드리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와 대면할 때마다 어색하고 부모는 서운하다. 주택연금이 서운함과 어색함을 사라지게 하고, 이 모두는 가족의 울타리를 돈독하게 해준다. 주택연금이 자녀 역할을 일정 부분 해주면서 얻게 되는 변화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입자들의 고민은 ‘자녀들의 재산을 가로 막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가입 전에 이 문제 때문에 자녀들과 상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요즘 반대하는 자녀는 많지 않다. 선뜻 허락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 부모 또한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자식 사랑병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장수시대에는 집을 물려 줘도 자녀가 환갑이 훌쩍 넘었을 때여서 효과도 없다. 주택을 연금으로 유동화해서 자녀와 같이 쓰는 게 낫다. 실제로 주택연금 가입 전보다 가족 모임을 더 자주 가진다고 한다.
수기에 스완송(swan song)을 언급한 분이 있다. 백조는 죽기 전에 부르는 노래가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주택연금을 통해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고 했다. 심리학 실험에서도 마지막 실험의 기억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고문을 받았어도 끝에 행복하게 해주면 그 기억이 지배한다. 그래서 골프장도 마지막 홀을 쉽고 예쁘게 만들어놓았다. 18홀의 기억을 간직한 채 계속 방문하게 만들려고.
주택연금 가입자들은 삶의 후반이 주택연금으로 인해 풍요롭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택연금으로 삶과 화해한 셈이다. 작은 선택 하나가 삶 전부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bsta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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