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먹는 우리 아이, 아침식사마다 전쟁”...때론 포기하는 게 정답일수도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8. 1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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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돌이 지난 첫째를 두고 복직했을 때, 나는 식탁 위에 작은 수첩을 하나 올려두었다. 이 수첩은 시터 선생님과 나의 일종의 ‘필담’용 수첩이다. 사실 필담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한데, 그날의 아침과 저녁에 무엇을 먹일지를 적어두는 용도다. 등원을 챙겨주시는 시터 선생님과 바쁜 출근시간에 대화할 시간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근무시간이 아닌데 메시지를 보내기가 죄송해 만든 것이었다. 아침에 먹일 반찬과 국, 저녁에 먹일 반찬과 국을 각각 적어 올려두면 선생님께서 여기에 맞춰 식사를 챙겨주셨다. 반찬과 밥, 국은 미리 준비해두고 선생님께서 데워서 챙겨주실 수 있게 끔 해뒀다.

1년여 필담(!)을 지속하고, 둘째 출산에 맞춰 다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서야 첫째의 아침식사를 먹이는 것이 아주 어려운 미션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아예 몰랐다기보다는, 현실을 조금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이를 잘 먹는 아이와 잘 안 먹는 아이 둘로 나눠봤을 때 내 아이는 안 먹는 아이, 그 중에서도 ‘아주 안 먹는 아이’ 였기 때문이다.

변명 같은 설명을 붙이자면 후기 이유식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가기 직전 복직을 했던 터라, 아이가 일반식을 시작하면 조금 더 잘 먹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일단 내가 아침을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잘 준비는 해두고 가야지 하는 책임감도 한 스푼 더해졌다.

이후 두 살 터울의 둘째를 낳고 출산 휴가에 돌입했다. 첫째가 너무 어려 산후조리원에 가는 병원에 4일 입원 후 대신 집으로 입주 산후도우미를 불렀다. 이 때부터 첫째와 ‘아침 전쟁’이 시작됐다. 갓 태어난 아이는 산후 도우미에게 맡겨두고 과거 시터 선생님께 적어둔 필담처럼 국과 반찬, 밥을 꺼내놓고 아침을 먹이려고 했지만 아이가 제대로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시간 가까이 씨름을 하고 겨우 몇숟가락 떠 먹이면서 큰 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첫째를 챙기고 싶어 ‘마지막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산후조리원을 기꺼이 포기해놓고, 아침부터 아이를 쥐잡듯 잡는 상황이 답답했다.

이를 며칠 지켜보던 산후조리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아침 시중에서 판매하는 누룽지를 시리얼 처럼 우유에 말아서 먹어요. 간편하고 질리지가 않아. 아침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해도 잘 안들어가잖아요. 준비하기도 번거롭고..” 그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 “애기 엄마도 아침에는 입맛이 별로 없지 않아요?”

그렇다. 원래부터 잘 안먹는 나의 딸이 아침이라고 입맛이 더 살아날 리도 없는데, 나는 내 딸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다는 이유로 국과 찬을 분주하게 만들고, 내가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아이의 아침 식사를 간편하게 바꿨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빨리 준비해서 금방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는 음식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보겠다. 어떤 날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백설기를 먹는다. 숭늉을 끓여서 먹기도 하고(심지어 숭늉은 전날 끓여 아침에 데워 먹으면 더 부드럽다), 시리얼을 찾을 때도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넛버터를 발라 토스트를 해 먹기도 한다.

둘째를 낳고 다시 복직을 하면서는 아침에 식사를 집에서 챙길 수가 없어, 아이들의 간단한 아침 식사를 어린이집에 싸가기로 했다. 일찍 출근을 해야하는 워킹맘이 많아, 어린이집에서 아침을 먹는 다른 친구들이 꽤 있다며 먼저 제안해 주신 덕분이었다. 역시 바나나 한 개, 어떤 날은 삶은 계란 한 개, 또 다른 날은 좋아하는 빵 하나 같이 간단한 아침이었다.

그런데 한 학기가 지나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유독 우리 집 아이들이 어린이집 오전 간식이나 점심을 잘 안 먹는 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원에 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가 간식을 먹고, 또 조금 있다가 점심 식사를 하는데 아침 식사와 간식, 점심 식사 간 텀이 짧아 정작 간식과 식사를 잘 안하게 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오전 간식이 우리가 집에서 준비하는 ‘간식같은(?)’ 아침 대용 음식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당분간 아침 식사를 적게 보내거나 보내지 말아보자는 게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그때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일찍 일어날 때는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지만, 늦게 일어날 경우는 우유 한 컵 정도만 마시고 등원을 하게 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클 수록 기상 시간이 일정해지고, 엄마인 나도 요령이 생겨 간단한 아침 식사 후 등원이 가능해졌다.

‘미니멀리스트의 집안일 아이디어 63’이라는 책을 쓴 일본인 작가 미쉘은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큰 아들이 어릴 때 뭐든지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웃음을 잃었고 엄마는 신경질적이 됐다. 그는 둘째를 낳고 나서 무슨 일이든 느긋하게 생각하는 편이 모두에게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며칠 전 나의 첫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아침은 간식같이 먹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저녁은 집에서 밥이랑 반찬을 먹잖아? 그래서 나는 아침이 제일 좋아!”

때로는 무엇을 먹는지 보다 어떤 기분으로 먹는 지가 중요할 수도 있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아침 식사를 좋아한다면 어쨌든 내 전략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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