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이집트 상무관 신설에도 ‘씁쓸한 뒷맛’ 느끼는 산업부 속사정
파견 기회 늘었지만 산업부 직원 “아쉽다”
지난해 제네바·EU 상무관 자리 줄어든 탓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원자력 발전소 수출 지원 강화를 위해 이집트에 상무관을 신설했습니다. 중앙정부 공무원으로선 일할 수 있는 재외공관 자리가 늘어난 겁니다. 일정 기간 외국에서 근무하면 업무 관련 시야를 넓히고 역량을 쌓을 수 있죠. 또 자녀에게는 외국어를 빨리 배우고 더 큰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많은 공무원이 재외공관 파견을 희망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부 공무원들도 일단 이번 이집트 상무관 신설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조직 내부를 좀 더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하는 것만은 또 아닌 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작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당시 행정안전부는 전(全) 부처에 ‘정원 5% 감축’ 내용이 담긴 통합활용정원제 지침을 전달합니다. 이후 외교부는 공관 인원 조정안을 마련해 행안부에 제출했는데요. 이 조정안에는 스위스 제네바 상무관과 주벨기에 유럽연합(EU) 대사관 상무관 자리를 줄인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산업부는 난리가 났습니다. 우선 스위스 제네바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있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세계화 붕괴 추세가 기구 권위를 떨어뜨리긴 했으나, 여전히 WTO는 글로벌 무역 생태계의 중심축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라 WTO와 관계 유지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U는 한국의 핵심 수출 지역 중 하나입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對)EU 수출액은 2000년 248억9080만달러에서 지난해 744억1317만달러로 3배가량 늘었습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EU는 집중 관리 대상입니다. CBAM은 EU로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의 탄소 배출량에 EU 배출권거래제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EU는 2026년 CBAM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환 기간인 올해 10월부터 배출량 의무 보고를 시작합니다. 2026년 1월 1일부터는 수출품 제조 과정에서 EU 기준을 넘는 탄소 배출량만큼 배출권(CBAM 인증서)을 구매해야 하죠. 사실상 추가 관세나 마찬가지인 ‘탄소세’를 부과하는 셈이라 국내 많은 수출 기업이 CBAM 동향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산업부로선 제네바와 EU 상무관 자리를 늘리면 늘렸지 절대로 줄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력 조정의 키를 쥔 행안부·외교부 의견은 달랐네요. 이후 산업부가 두 부처와 논의해 EU에 파견 자리를 하나 만들긴 했으나, 정식 상무관은 아니어서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후문입니다.
공무원 개인 입장에서도 유럽 지역 선호도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 나가 오랜 기간 머물러야 한다면 교육·문화·치안 등 생활 여건을 따져야 해서죠. 이번 이집트 상무관 신설 소식에 반갑다는 반응과 아쉽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온 배경입니다. 산업부 직원들 사이에서 “유럽 2개 내주고 아프리카 1개 얻었다”는 말도 돌았다고 하네요.
산업부 일각에선 우리나라 경제와 밀접하거나 앞으로 긴밀해질 국가를 따져보고, 상무관 자리를 그에 맞춰 최신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현재 산업부 공무원이 나갈 수 있는 재외공관 상무관 자리는 52개입니다. 미국·중국·일본·영국·캐나다·프랑스·인도·베트남·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교역국 대부분에 상무관을 파견합니다.
그런데 일부 공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대만인데요.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동시에 대만과 단교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비(非)수교국이긴 하나 한국과 대만의 실질적 교류는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교역 사이즈만 봐도 우리나라에서 대만을 향하는 수출 규모는 2000년 80억달러에서 지난해 262억달러로 커졌습니다. 대만은 한국의 6위 교역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대만에도 한국은 5위 교역국입니다. 과거 1~2%에 불과했던 현대차·기아의 대만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최근 5%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올해 2월 이은호 전 전략물자관리원장이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로 부임하긴 했으나 노련한 실무진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부 내부에서 나옵니다.
산업부 역시 우리나라 교역 현실에 맞춘 상무관 확충·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관 인력 배치와 관련해선 주도권을 행안부와 외교부가 꽉 쥐고 있어 산업부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여건입니다. 익명의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공급망 교란이 심해지고 경제안보가 국가 생존의 기본 요건이 됐다”며 “통상 관련 공관 보직이 부족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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