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 미세먼지 늘면 항생제 잘 안 듣는다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면 항생제 내성균이 늘어난다는 첫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항생제 내성균의 유전자를 옮기는 주범은 바로 ‘초미세먼지’였다.
중국 저장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대기 중 초미세먼지가 많아지면 항생제 내성균이 널리 퍼진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 7일 국제학술지 ‘랜싯 지구보건’에 발표했다.
항생제 내성균은 그 세균에게 원래 잘 듣는 항생제가 작용하지 못하게 하는 돌연변이를 가진 세균이다. 그래서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되면 항생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매년 전세계에서 130만 명이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다. 인간과 동물이 항생제를 남용하면 그만큼 항생제 내성균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진은 지난 수십 년 간 대기 오염이 심해진 지역에서 항생제 내성 문제 또한 심각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 간 전세계 116개 국가에서 조사한 항생제 내성균 데이터를 분석했다.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된 환자의 혈액이나 뇌척수액에서 얻은 세균의 유전 정보를 이용한 것이다.
카바페넴과 아미노글리코시드, 플루오로퀴놀론 등 항생제 43종에 대해 내성을 가진 세균, 폐렴균(Streptococcus pneumoniae)과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등 9종에 대한 데이터 1150만 여개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같은 기간 동안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 환경청에서 수집한 대기질, 미세먼지 농도, 식수 관리와 식수사용률, 위생 서비스 수준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분석했다.
그 결과 초미세먼지, 즉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μm·백만분의 1미터) 수준인 먼지 입자(PM2.5)가 10% 증가할 때마다 항생제 내성이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매년 4만3654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처럼 대기 오염이 점점 심각해진 지역에서는 항생제 내성 수준이 높아졌다. 반면 유럽과 북미처럼 대기질을 관리해온 지역에서는 항생제 내성 수준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항생제 내성균이 식수나 음식물 또는 단거리에서 공기를 통해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 항생제 내성균은 폐수나 농업용 거름을 뿌릴 때 바깥 환경에 노출되며 대기 중 미세먼지에 붙어 바람을 타고 먼 거리로 확산된다고 분석됐다. 실제로 초미세먼지 입자에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들어 있다. 연구진은 식수로 마시는 것보다 숨 쉴 때 대기 오염 물질과 함께 들어오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기 오염 물질로 인해 항생제 내성을 갖지 않은 세균에게 이 유전자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2050년까지 대기 오염에 대한 현재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한 결과, 전 세계 항생제 내성 수준이 약 17% 늘어나 이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도 56.4% 늘어난다고 예측했다. 연간 84만 명에 해당하는 인구다.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급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2050년까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줄이거나 식수 서비스를 개선하고 항생제 사용을 줄인다고 가정하면 항생제 내성이 16.8% 감소하고, 이로 인한 연간 사망자도 23.4%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에서 효과가 컸다.
연구진은 대기 오염과 항생제 내성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보건 문제이며,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이 두 가지 문제가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최초로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농도 등 대기질을 향상시키고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위생 서비스를 개선하면 전세계 항생제 내성균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The Lancet Planetary Health(2023) DOI: https://doi.org/10.1016/S2542-5196(23)00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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