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전담반 SIU]⑧ ‘시한부 선고’ 前남편 보험금 10억 노리고 現남편과 공모한 여인

진상훈 기자 2023. 8.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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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남편 ‘시한부 선고’ 접한 뒤 몰래 보험 가입
서명 위조하고 現남편도 사기행각 끌어들여
“중병 환자가 매달 450만원 납입?”…SIU 조사에 덜미
일러스트=손민균
“처음에는 피보험자가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해 사망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 관계자를 조사해 보니, 그는 사망하기 훨씬 전부터 병상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종신보험을 가입하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고 했다. 환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시도한 보험사기일 수 있다고 직감했다.”

A생명보험사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는 지난 2020년 보험금 지급 심사팀으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았다. 한 50대 남성이 종신보험에 가입한 후 불과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나 유족이 보험금을 청구했다며, 보험사기 시도가 아닌지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심사팀이 조사해 보니 이 남성은 A생명보험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곳의 보험사에서 총 10억원 규모의 종신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무려 12년간이나 소화기 계통의 질환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보험사에는 이런 병력을 알리는 서류도 제출하지 않았다.

여기까지의 조사 내용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가 남겨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병환을 숨기고 거액의 사망 보험금을 타내려 시도한 전형적인 보험사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SIU의 조사 결과 놀라운 반전이 드러났다. A생명보험의 종신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해 왔던 사람은 사망한 남성이 아닌, 그의 전처(前妻) B씨였던 것이다. B씨는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던 전남편 대신 서류를 위조해 보험에 가입했고, 현 남편 C씨까지 끌어들여 보험사의 본인 확인 연락에 대응했다. 현 남편과 손잡고 사망한 전남편을 이용해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막장 드라마’ 수준의 사기극이었다.

◇ “前남편, 살날 얼마 안 남았다” 소문 접한 후 종신보험 가입

B씨는 지난 2013년 전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이 수년간 소화기 계통의 질환으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 고통이 심해지자,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선 것이다. 이후 B씨는 C씨와 재혼했다.

B씨가 전남편의 이름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2018년이었다. 지인들로부터 전남편의 증세가 악화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 후 B씨는 전남편의 명의로 A생명보험 등 몇 곳의 보험사에서 총 5개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사망 보험금 총액은 10억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이혼한 본인을 사망 보험금 계약자로 할 경우 보험사의 의심을 살 것으로 판단해 전남편과 낳은 자녀들을 계약자로 넣는 치밀함도 보였다.

B씨는 보험설계사 출신으로 주변에 보험을 잘 아는 지인도 많았다. 이 때문에 종신보험 가입 시 허점과 보험사의 추적을 피하는 요령 등에 대해 해박했다고 한다. 그는 서류를 위조해 전남편의 투병 사실을 숨긴 채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고, 전남편의 서명도 거짓으로 했다. 보험사로부터 본인 확인을 위해 걸려 온 전화는 현 남편인 C씨가 받아 전남편 행세를 하도록 떠밀었다.

B씨의 의도대로 종신보험에 가입한 후 1년 만에 전남편은 눈을 감았고, B씨는 자녀들의 이름을 내세워 보험사에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

사망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는 오랜 기간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 장례식장. /조선DB

◇ 중병 환자가 매달 450만원의 보험료를?

그러나 오랜 투병 끝에 사망한 전남편을 이용한 B씨의 사기 행각은 SIU의 조사에서 꼬리가 밟혔다. A생명보험 SIU는 전남편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 그가 12년이나 병원을 오가며 중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특히 보험 가입 시점에는 병세가 크게 악화됐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B씨는 전남편의 이름으로 1년간 매달 450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했다. SIU는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혼에 이를 정도로 궁핍했던 전남편이 제법 큰 액수의 보험료를 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보험료 납부 계좌와 유족 등을 조사해 결국 전처 B씨의 사기 시도를 포착했다.

SIU는 전남편이 남긴 유품과 B씨가 제출한 서류 등을 대조해 서명이 위조됐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그동안 본인 확인을 위해 진행한 통화에서 현 남편 C씨가 전남편인 것처럼 연기를 했던 것도 저장된 녹취 파일을 통해 드러났다.

A생명보험은 1년 넘게 진행한 조사에서 확보한 내용을 모아 B씨와 C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 수사를 통해 부부가 전남편의 동의 없이 종신보험에 가입하고 보험사를 속여 온 사실이 입증됐다. 1심 재판부는 B씨에게 보험사기 미수와 업무 방해,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생명보험 관계자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남편을 떠난 뒤 시한부 삶을 동정하기는커녕 이를 이용해 거액의 돈까지 가로채려 한 매우 질이 안 좋은 보험사기 사례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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