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신질환자=잠재적 범죄자’ 인식, 치료 방해… 외래치료명령제 활성화 돼야”

김태호 기자 2023. 8. 1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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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 인터뷰
“사회적 낙인이 치료 기회 놓치게 해 위험해”
“지역사회서 정신질환자 관리로 치료 도와야”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죽이고 13명을 다치게 한 최원종(22)과 4일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20대 남성은 조현병 직전 단계이거나 조현병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신질환에 따른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관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05년 세운 국내 최초의 광역형 정신건강복지센터인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센터)’의 이해우(49) 센터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질환자는 곧 잠재적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치료를 방해한다”며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치료를 받으면 자해나 남을 해치는 위험성은 낮아진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이 센터장은 2012년부터 중랑구센터장을, 2019년부터 서울시센터장을 맡는 등 10년 넘게 공공의 자리에서 지역 사회의 정신건강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정신질환의 첫 발병 이후 병원치료를 받기까지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길다”며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선) 정신질환이 만성화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 중 2021년 1년 동안 상담 혹은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은 7.2%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43.1%·2015년), 캐나다(46.5%·2014년), 호주(34.9%·2009년)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정신증 미치료기간(정신질환이 발병하고 첫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DUP)에 대한 통계는 연구마다 다르게 나왔는데 국내 사례를 조사한 연구에선 100일가량에서 95주까지의 범위가 나타났다. 해외의 경우, 미국이 45주에서 113주, 영국이 30주에서 61주, 스페인이 9주에서 42주 범위로 나타났다.

이해우(49)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

이 센터장은 “‘지역사회의 정신질환자 발견→의료기관 치료→지역사회 유입’이라는 하나의 절차가 자리 잡게끔 인력·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질환자를 데려갈 병원이 없어 소위 말하는 ‘뺑뺑이를 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서울시에서 현재 공공병상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센터장은 현행 제도 중 외래치료명령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촉구했다. 외래치료명령제란 2008년 도입된 제도로 정신건강복지법 64조를 근거로 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타해 행동을 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외래치료 지원을 지자체에 요청하면 지자체에서 해당 환자가 정신질환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조치하고 비용도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난 2020년 기준 외래치료명령 시행 건수는 28건으로 중증정신질환자 수(3만9927명)에 비해 턱없이 적어 학계에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환자가 자·타해로 입원한 이력이 있어야 하고 보호자의 동의까지 받아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운 탓이다.

이 센터장은 “현재 정신건강복지법 상에서 외래치료지원제 등이 더 활성화되도록 하는 등의 변화로 조기에 정신질환 개입이 이뤄지는 등의 전반적 치료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정신의학회는 지난 6일 보호자에 의한 입원을 폐지하고 사법기관에 의한 입원 도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냈다. 이 센터장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이 10일 오전 경기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최원종은 지난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이후 최근 3년간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

센터는 지난해 10월 서울경찰청과 합작해 서울시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대응센터)를 개소했다. 정신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찰과 전문요원이 현장으로 출동해 정신과 평가를 진행하고 필요시 의료기관에 넘기기도 한다. 이 센터장은 현재 대응센터의 운영 총괄을 맡고 있다. 대응센터는 월 200여건의 전화상담 및 월 50여건의 현장출동 실적이 있다.

이 센터장은 “대응센터가 문을 열기 전에는 평일 주간에만 가능했었던 정신과 전문요원의 응급출동이 이제는 평일 야간과 휴일에도 가능해졌다”며 “치료가 급한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거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이는 등록을 권하는 게 대응센터의 존재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대응센터가 준비하고 있는 단기사례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기사례관리란 대응센터에서 정신질환자를 발견한 뒤 전화·방문 상담 등을 제공해 환자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 관리받도록 돕는 중간 단계를 말한다.

이 센터장은 “대응센터에서 응급출동하면 현장의 환자 대부분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이들이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이 돼 있다는 것은 그 기관이 환자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자·타해의 위험이 무척 낮아지기에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 관리받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단기사례관리 수행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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