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이버폭력 가해자 80% "나도 당한 적 있다"···보복 악순환 [여론속의 여론]
넷플릭스 화제작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린 동은(송혜교)은 전 인생을 걸고 가해자 연진(임지연)을 불러들여 나락으로 끌고 간다. 이처럼 청소년 시기에 겪은 폭력 경험은 문신처럼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삶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
최근의 청소년 대상 폭력은 학교를 넘어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됐다. 시공간을 초월해 내가 모르는 순간에도 발생한다. 가해 방식은 점점 교묘해지고 피해는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청소년의 사이버폭력 가해·피해 경험과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응 방안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412개의 초중고등학교 청소년 9,693명(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초등학생 3,401명, 중학생 3,229명, 고등학생 3,063명 조사)을 대상으로 사이버폭력 가해·피해 경험을 조사했다.
청소년의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률 20.6%, 피해 경험률 37.5%
조사 결과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률은 20.6%, 피해 경험률은 37.5%로 조사됐다. 사이버폭력 가·피해 경험률은 학교급별로 중학교(가해 경험 24.8%, 피해 경험 41.3%), 초등학교(가해 경험 22.1%, 피해 경험 39.3%), 고등학교(가해 경험 14.5%, 피해 경험 31.5%) 순으로 높았다. 피해 경험 횟수는 중학생이 평균 2.37회로 가장 많고 초등학생은 2.09회로 가장 적었다.
그런데 가·피해 경험이 가장 많은 중학생보다 초등학생이 사이버폭력 피해에 더 민감했다. 복수심, 우울·불안, 등교 거부 등 사이버폭력에 의한 심리적 타격이 상대적으로 컸다. 자해·자살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응답도 10%를 상회한다. 이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은 사이버폭력 피해 이후 피해를 준 상대방을 차단하거나 직접 사과를 요구하거나 주변에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등의 사후 조치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사회화가 진행되고 학업 부담이 커진 중고등학생보다 부정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대응에 미숙한 초등학생이 사이버폭력에 취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는 내 자녀가 사이버상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은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사이버폭력 가해 이유 ‘상대방이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 보복하기 위해’
사이버폭력의 8개 유형 중 가·피해 모두 ‘언어폭력’이 다른 유형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가해 경험 19.2%, 피해 경험 33.3%) ‘언어폭력’ 다음으로는 ‘사이버 명예훼손’(16.1%), ‘사이버 스토킹’(7.7%), ‘사이버 성폭력’(6.1%) 등의 피해 경험이 많았다.
피해 후 심리상태는 사이버폭력 유형별로 차이를 보였다. ‘사이버 따돌림’의 피해 경험률은 5%로 낮지만 복수심, 우울·불안, 신체 증상, 자살 충동 등 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다른 피해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어릴 적 겪은 ①심리적 외상 ②정서적 방치 ③신체적 외상 ④왕따 ⑤성폭력 5개의 트라우마 유형 중 성인 이후 발병한 우울증과 가장 큰 연관성을 보인 트라우마는 '왕따'였다. 따돌림이 청소년에게 위험 요인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온라인 공간에서 괴롭히는 행동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들에게 물었다. ‘상대방이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인 피해자 귀인과 ‘보복하기 위해’인 반응적 공격성이 1순위 동기였다. 또한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자 중 79.9%가 사이버폭력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사이버폭력 피해자 절반 이상 "모르는 사람에게 당해"
학교에서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시킨다. 그런데 사이버폭력은 분리 조치가 어렵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 절반 이상(52.7%)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이름·얼굴만 아는 사람 등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가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해를 당하는 경우가 높았다.
청소년 피해자 중 절반 가까이(47.5%)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 피해 경로는 학교급별 차이를 보였는데, 중고등학생은 게시글, 댓글 등을 통해 익명의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SNS, 커뮤니티·동호회에서 피해를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당한 비율이 높은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사이버폭력 가·피해를 경험한 청소년과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온라인 공간에서 위험 활동을 얼마나 하는지 측정한 결과, 사이버폭력 가·피해를 경험한 청소년은 ‘모르는 사람의 친구 신청을 수락’하거나, ‘온라인에서 알게 된 타인의 제안을 수락’하는 등 익명의 타인과의 온라인 활동을 가·피해 경험이 없는 청소년보다 더 많이 한다.
또한 ‘온라인에서 개인 정보보호 및 관리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다’는 부모의 활동에 대해 사이버폭력 가·피해 경험이 없는 청소년이 경험이 있는 청소년보다 응답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다(차이 6.6%p).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의 타인과의 교류는 불가피하다. 사이버 언어폭력, 사이버 성폭력, 사이버 갈취, 사이버 강요 등이 개인 정보를 가볍게라도 노출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봤을 때, 청소년들에게 개인 정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사이버폭력이 익명의 상대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지 점차 교묘해지는 범죄 수법에 대한 사례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관심과 지도가 필요
초중고등학생 모두 사이버폭력 피해 경험은 인터넷 이용 시간에 비례한다. 초등학생은 2시간 이상 사용했을 때, 중학생은 3시간 이상 사용했을 때 피해 경험률이 40%를 상회하며, 5시간 이상 사용하는 경우 초중학생의 피해 경험률은 약 절반에 가깝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청소년 인터넷 이용 시간이 코로나 확산 전과 비교해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시간(8시간)은 수면시간만큼이나 길어서, 인터넷 이용이 일상 그 자체가 됐다.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인터넷 이용 시간과 디지털 역량이 증가한 만큼, 이용 시간의 통제보다는 바른 사용을 위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사이버폭력은 청소년에게 발생 가능성이 높고 심리적 영향력 또한 크다. 반면 빠르게 진화하는 정보통신기술에 따라 메타버스 내 폭력, 우울증 갤러리(SNS)를 통한 폭력 등 상상도 못 했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측하고 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청소년들은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에 긍정적이다. 조사 결과 사이버폭력 예방 교육을 받은 청소년의 83.7%가 교육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고 전체 응답자의 91.1%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청소년 스스로 사이버폭력의 심각성과 예방 교육의 효과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청소년 대상 ‘디지털 윤리 교육’을 매년 확대해 실시한다. 청소년들의 기대에 부응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새로운 사이버폭력의 사례, 발생 요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 대책 및 예방 방안 등에 대한 조사·연구가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종은 한국리서치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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