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난제 첩첩인데… ‘여름 비밀회의’서 사라진 中 원로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80㎞ 떨어진 곳에 ‘여름 궁전(夏宮)’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해안 휴양지인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시 베이다이허(北戴河)구의 별칭이다. 매년 7월 말이나 8월 초 이곳의 대규모 휴양 시설에서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2주간 여름휴가 겸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 회의’를 열고 국가의 향방을 정한다. 현역 지도자뿐 아니라 정치 원로들이 대거 참여해 함께 토론하는 것이 관례다. 외신들은 이달 초 막을 올렸다고 알려진 베이다이허 회의를 “유례없는 형식의 회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처음으로 당내 유력 원로들이 회의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1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40년 동안 중국 지도부를 가까이서 관찰한 중국 인사를 인용해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당내 유력 원로들이 전부 불참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닛케이는 시진핑(70) 중국 국가주석이 정점에 있는 지금의 통치 체제가 확립된 여파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RFI는 “(2012년 말 집권한) 시진핑은 11년 집권기 이래 처음으로 (전임 지도자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됐다”면서 “이제 중국의 중대 정책이나 기조를 수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진핑 스스로 반성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시진핑 집권기가 통상적인 기간(10년)보다 길어지며 전직 지도자들이 노쇠해진 현실도 ‘원로 실종’의 이유로 꼽힌다. 시진핑 시대의 ‘원로 4인방(장쩌민·후진타오·주룽지·원자바오)’ 가운데 장쩌민 전 주석은 지난해 11월 30일 사망했다. 시진핑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힘이 센 원로 집단이었던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유력 인사)’은 핵심이던 장쩌민이 세상을 뜨자 무력화됐다. 후진타오(81) 전 주석은 지난해 10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20차 당 대회 폐막식 도중 수행원에게 끌려나가다시피 퇴장했는데, 이후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가 베이징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주룽지(95)·원자바오(81) 등 두 전 총리는 고령인 데다 건강 이상설도 제기된다. 원로들의 견제가 사라지면서 베이다이허 회의는 당내 파벌 간 치열한 토론이 펼쳐졌던 이전 같은 광경은 사라지고, 시진핑이 주재하는 정제된 회의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과 지도부가 논의한 주요 사안은 크게 넷이다. 대만 문제, 미·중 관계, 경제 위기, 친강 전 외교부장 등 고위직에 대한 처분이다. 가장 시급하게 논의될 문제로는 ‘통제를 벗어나는 대만’이 꼽힌다. 이달 7~9일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아소 다로 부총재(전 총리)가 대만을 방문해 지지를 표명했고, 대만 유력 대선 후보이자 부총통인 라이칭더는 이달 경유 방식으로 미국을 방문하며 친미(親美) 기조를 확실히 하고 있다. 당장 내년 1월인 대만 총통 선거에선 1996년 선거 시행 이후 처음으로 후보 중에 중국 본토 태생이 없다. 대만 내 친중 세력이 크게 약화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이번 회의에선 대만 압박 방안과 대만 통일 계획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수교 이후 최악인 미·중 관계도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지난 6월 고위급 교류를 재개했지만, 미국이 이달 들어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기술의 대중(對中) 투자를 제한하고 대만 무기 지원을 강화하면서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2018년 베이다이허 회의에선 미·중 무역전쟁이 집중적으로 논의되며 당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경 기조가 정해졌다. 이번 회의 직후에도 미국에 대한 반격이 예상된다.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제와 50%에 육박한다고 추정되는 청년 실업률도 주요 의제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0.3%)에 진입하면서 두 경제 엔진인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꺼지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도 민간 부동산 업체 1위 비구이위안이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놓이면서 휘청대고 있다.
한편 지난달 25일 면직된 친강 전 외교부장 처분도 관심사다. 2013년 회의에선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와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2014년 처분 확정)에 대한 사법처리가 논의됐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약 70년 전에 시작됐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마오쩌둥 시절인 1954년부터 여름철엔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인 베이다이허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 전통을 이어 매년 집중 회의를 이곳에서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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