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사과는 자주” 담임에 9가지 요구한 사무관

최은경 기자 2023. 8.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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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갑질 폭로되자 직위해제
일러스트=이철원

‘우리 아이는 왕의 DNA’ 등 내용이 담긴 편지를 자녀 담임에게 보낸 교육부 사무관 A씨가 11일 직위 해제됐다. 전국초등교사노조는 전날 A씨의 ‘갑질’ 행태를 폭로했다.

교사노조는 이날 민주당 강득구 의원과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 사무관의 교사 압박 행태를 추가 공개했다. 노조 등에 따르면 A씨는 작년 11월 자녀 담임을 아동 학대로 신고했고 담임은 직위 해제 처분을 받았다. 자녀가 도서관 이동 수업을 거부해 교실에 남겨둔 것을 ‘방임’이라고 신고했다고 한다. 앞서 담임이 자녀를 비롯한 학급 내 교우 관계를 파악한 정보를 실수로 학부모 열람용 애플리케이션에 올렸다가 지운 일도 “아이에 대한 정서적 아동 학대”라고 주장했다. A씨는 세종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담임의 직위 해제를 요구하며 언론에 폭로하겠다는 등 협박했다고 교사노조 측은 주장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담임교사는 직위 해제된 이후 월급이 본봉의 30%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지난 5월 검찰로부터 아동 학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교권보호위원회는 A씨의 행위를 교권 침해로 판단하고 담임교사에게 서면 사과 등을 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 위원장은 “해당 교사는 지금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우울 장애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데 교육부 직원은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담임이 직위 해제된 이후 새로 온 담임에게 편지를 썼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말해도 알아듣는다” “하지 마, 안 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 “칭찬은 과장해서, 사과는 자주, 진지하게 해달라” “인사를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하게 강요하지 않도록 해달라” 등 9가지 요구 사항을 담았다. A씨는 이런 편지를 학기 초마다 자녀 담임에게 보냈다고 교사노조는 주장했다. 온라인에선 A씨의 편지 내용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자폐·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치료법’의 일부라는 주장도 떠돌고 있다.

A씨는 새로운 담임교사에게도 자녀의 교육 내용 및 행동 변화를 기록해 매일 보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임 담임교사를 ‘아동 학대’라고 진정할 때 사용한 문서도 새 담임에게 보냈다. 교체된 담임교사도 아동 학대로 신고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인 셈이다.

강득구 의원은 “A씨가 이런 민원을 할 때 공무원이 사용하는 ‘공직자 통합 메일’ 계정으로 보냈다”며 “교육부 직원이 이런 편지를 ‘공적’ 메일 주소로 보냈다는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정수경 위원장도 “교사 입장에서는 위압이 아닐 수 없다”며 “(편지 내용은) 전 국민이 공분할 말이었다”고 했다. 교육부 공무원이 보내는 메일 자체가 교사에겐 압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평소에도 교육부 공무원 직위를 언급하며 “담임교사 교체가 가능하다”고 압박하거나, 밤늦게 전화해 “우리 아이를 어떻게 지도했는가”라고 묻는 행위를 반복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A씨가 교사에게 갑질을 한다는 민원이 제기돼 조사를 했지만 구두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이번엔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10일 밤 “철저하게 조사해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A씨에 대한 직위 해제를 결정했다. 교육부가 다음 주 초 ‘교권 보호 종합 대책’ 발표를 앞두고 A씨에 대한 처분을 서두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교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 공무원이 교권을 짓밟으면서 ‘교권 회복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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