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후위기 극복 없이는 경제성장도 없다
사회생활 초년병 시절이던 2000년대 초 어느 휴일, 집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허리케인이 미국 최대 도시이자 세계 경제 중심인 뉴욕을 지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해설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잠시 스쳐 지나간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해설자의 경고가 섬뜩해서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열대성 저기압인 허리케인이라니 공상과학 소설을 써라.’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뒤,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2020년 9월 ‘허리케인 아이다’가 뉴욕을 포함한 미국 북동부를 강타해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것. 당시 소셜미디어에서는 뉴욕 지하철 차량에 물이 들어와 승객들이 좌석 위에 올라선 모습을 담은 동영상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재보험사 스위스리는 관련 보고서에서 아이다로 인한 보험손실 규모가 미국 연방 홍수보험 손실을 제외하고도 최소 280억 달러(약 3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뉴욕을 강타한 허리케인 아이다는 기후변화가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것을 경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에도 과거 잣대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현실이 됐다.
지난 6월에는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연기가 국경을 넘어 미국 동부를 급습하면서 한때 뉴욕시가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의 공기질’ 1위라는 불명예를 쓰기도 했다. 당시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등은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대기가 탁해졌다.
며칠 동안이긴 했지만 세계 최고 경제대국 미국의 대기질이 세계적인 청정국가인 이웃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방글라데시 다카와 인도네시아 인도 뉴델리와 함께 세계 최악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마치 화성을 보는 것 같다”고 했고, 뉴욕시 보건당국 책임자는 “이것이 바로 기후변화의 얼굴”이라고 했다
기후변화는 남반구의 겨울마저 빼앗아 갔다. 보통 남반구의 8월은 북반구의 2월 기온과 비슷하다. 그런데 남미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달 초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면서 8월 기준 117년 만에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24.6도(1942년 8월1일)보다도 훨씬 높았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7월은 지구 표면과 해수면 모두 1940년 관측과 기록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일부 지역은 46.3도까지 치솟았고, 스페인은 카탈루냐 지역을 중심으로 45도를 웃돌았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 끝났다.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개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까지 2주 넘게 전국적인 폭염이 이어졌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 운영도 폭염과 그에 대한 준비 부족이 빌미가 됐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세계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극한 기후’가 전 세계 경작지를 덮치면서 쌀·설탕·카카오·커피 등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최대 면화 산지인 미국과 중국의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으로 옷과 신발 가격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후변화 피해가 농업에 국한된 건 아니다. 베트남 북부 지역에 올들어 이례적인 폭염과 가뭄이 지속되면서 삼성전자와 애플 협력사 폭스콘 공장 등이 지난 6월까지 생산 차질을 겪었다. 극한 기후는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공급 차질을 빚어 물가 상승 압박을 키운다. 이는 결국 국내총생산(GDP)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변화 대응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글로벌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지난해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조사 대상 113개국 중 39위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아랍에미리트(UAE·23위), 카타르(30위) 등 사막 국가보다 순위가 낮았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가 많이 아프다. 기후위기 대응은 먼 미래의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오늘 우리의 문제다. 정치 성향이나 세대에 따라 이해관계가 갈릴 사안도 아니다. 극한기후 현상을 줄이는 유일한 대안은 온실가스 감축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현재의 산업구조와 소비구조는 저탄소 구조로 바꿔가야 한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등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는 등 일상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상의 작은 실천도 모이면 큰 힘이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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