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보호자가 되는 시간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남부럽게 살지는 못해도
우리 가족은 절망하지 않는다
아버지께는 이비인후과 관련 지병이 있다. 얼마 전, 정기 진료를 받다가 10여 년 전에 수술받은 부위가 더쳐 재수술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으셨다고 한다. 콧속에 생긴 종양을 떼어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위해서라도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아버지는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
수술 전 마지막 진료와 검사가 있는 날 병원에 동행했다. 아버지는 이미 해본 수술이니 가볍게 대하려 했지만 나는 봤다. 아빠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당연한 일이다. 10여 년 전에 받은 수술과 지금 받을 수술이 같을 리 없다. 그 사이 아버지는 여든에 가까워졌고, 지나온 세월만큼 몸집이 작아지셨다.
아버지가 다니는 병원은 유난히 어르신 환자가 많다. 함께 올 때마다 정겨운(!) 풍경을 마주하는데, 예를 들면 전화나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방문한 환자와 그를 대하는 직원 모습, “여기서는 예약하실 수 없어요, 선생님!” “그래서 지금, 직접 예약하려고 왔잖아!” 참고로 이 광경은 인물만 바뀌어 하염없이 반복된다. 그다음은 한참 지난 진료 번호표를 들고 안내 창구 앞에서 호소하는 환자와 간호 조무사의 대화. “나 두 시간 전부터 와 있었는데, 대체 순서 언제 오냐고!” “여기는 이비인후과인데요. 예약은 내과로 하셨어요, 선생님.” 금세 자리를 떠난 환자는 잠시 후 같은 번호표를 들고 다시 나타난다. “나 두 시간 전부터 와 있었는데….” 문을 열어둔 채 처치가 진행 중인 진료실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린다. “환자분, 아~ 해보세요.” “에….” “아요, 아!” “에….” 환자는 계속 ‘에’를 했음에도 잠시 후 무사히 진료가 끝난다.
무겁게 침묵을 지키는 아버지 옆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내적 웃음을 참았다. 나 없을 때 우리 아버지도 비슷하시겠지? 근데 분명 불통 소굴인데 이상하게 소통이 되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소통일지 생각하는 사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각종 검사를 받고 나서 수술 날짜가 확정되었다. “일주일 동안 입원하실 거고, 한 달간 통원 치료를 받으실 거예요. 입원에 앞서 코로나 검사도 하셔야 해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의료진의 수술 전 공지에 귀 기울이던 아버지는 중간에 항복을 선언했다. 실제로 항복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봤다. 아버지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언젠가부터 잠잠해져 있음을. 아버지는 마치 명상하는 사람처럼 평온한 얼굴로 모든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했다. “이제껏 나온 얘기들, 다 아시겠어요?” 아버지는 대답했다. “안다.” 분명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후 함께 간 언니와 나는 의료진의 발언을 부리나케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때야 아버지는 나만 들리게 속삭이셨다. “모른다.”
어느 날, 보호자였던 부모를 자식인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처음엔 동요하다가도 차분히 받아들이게 된다. 부모님도 젊은 나이에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엄마 아빠가 된 부모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어느새 보호자가 돼버린 것이다. 부모님께 어린 내가 짐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이 든 부모님도 나에게 짐이 아닐 것이다. 그저 부모님이 해오신 것만큼만 따라 해보자고 다짐한다.
꼬르륵. 촉촉한 생각의 풍선을 톡 터트리는 생리적 소리가 들려왔다. 주린 배를 어루만지니 아버지가 물었다. “배고프냐?” “네, 고프네요.” 검사가 다 끝나면 밥을 먹어야겠다. 몇 개월 전 함께 간 병원 근처 낙지 집이 오늘도 영업하는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밑에 구내식당이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네, 거기서 먹어도 되겠네요. 끝나고 같이 가요.” “아니, 구내식당 근처에 정수기가 있다. 배고프면 가서 물 두 잔 마시고 온나.”
완충된 ‘효녀 모드’를 0으로 방전시키는 말씀에 입을 벌리고 쳐다보니, 새삼스럽게 왜 쳐다보고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는 뜻으로 계속 봤더니 아버지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남부럽게 살진 못해도 우리 가족이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진지할 때도 웃는다. 심각한 순간에도 마냥 심각해지지만은 않는다.
며칠 뒤, 큰 병원에 한번 가보자는 자식들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검소한 아버지는 얼마 나올지 모를 진료비가 미리부터 걱정되시겠지. 하긴, 배고플 때 물 두 잔을 마시는 분이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며칠 뒤, 나는 아버지 팔을 이끌고 큰 병원으로 갈 것이다. 나는 보호자니까. 보호자는 끝까지 애써 봐야 하니까.
그날은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을 것이다. 물은 안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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